전출처 : 밥헬퍼 > 0-3세 어린이 그림책을 고르는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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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그림책의 세계
마쓰이 다다시 지음, 이상금 엮음 / 한림출판사 / 1996년 7월
평점 :
아이들의 성장에 제대로 들어맞는 책을 고르고 읽히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고민되는 것은 과연 어떤 책을 고를까?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서점에 갔다오면 후회하기가 다반사입니다. 분명 잘 고를 수 있을 것 같은데 고르고 보면 '바꿀 수 없을까? 도서관에서 빌려볼 걸.' 이라는 후회가 먼저 드는 것이지요. 인지발달을 고민하던 심리학자 피아제의 견해가 이제는 업데이트되어야 한다고 해도 아이들의 성장단계에 맞는 책을 선정하는 것은 실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하긴 대충 눈에 띄는 대로 골라서 아무 책이나 갖다주고 읽으라는 것도 그리 썩 내키는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 집 근처의 삼림욕장을 갔다가 특이한 외형의 유치원을 알게 되었습니다. 겉으로는 평범한 유치원인 듯한 이 유치원은 특이하게도 어린이 전용서점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유치원 한쪽에 아주 그럴듯하게 자리잡은 어린이 그림책 전용 서점이 참 신기했습니다. 모든 것이 작았고, 글보다는 그림이 많은 책들로 가득한 서점이었습니다. 이 곳에서 몇 바퀴를 서성이다가 고른 책 한 권이 바로 이 책입니다. 알고보니 이 책은 본래 한 권이 아니라 마쓰이 다사시가 쓴 서로 다른 3권의 책을 한 권으로 다시 엮어, 3부로 재구성해 놓은 것이었습니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자유와 자발성이라는 교육 철학을 배경으로 하는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부모와 아이의 교육적 역할이 강요나 강제가 아닌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1부에서는 그림책을 읽어주는 기쁨에 대해서, 2부는 어린이 성장에 따른 그림책의 사용, 3부에서는 추천할만한 그림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지은이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말은 다음의 내용에 담겨 있습니다.
"그림책은 어린이가 읽는 책이 아닙니다. 그림책은 어른이 어린이에게 '읽어주는 책'입니다. 그림책은 어린이에게 기쁨과 즐거움 그 자체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어머니, 아버지가 어린이에게 책을 읽어주어야 합니다. 그랬을 때 그림책은 부모와 자녀를 단단히 묶어주는 고리가 되는 것이지요.(14쪽)"
"아버지, 어머니가 소리내어 읽어 주고 이야기해 주는 그림책 체험은 다른 사람의 말에 귀기울여 듣는 힘을 자연스럽게 길러주게 됩니다. 부모가 읽어 주는 그림책을 기쁘게 귀를 기울여 듣는 체험을 쌓지 않으면 어린이의 듣는 힘은 길러지지 않습니다. 듣는 힘을 갖지 못한 어린이는 학교 수업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부족해지고 결국 낙오자가될 수도 있습니다.(20쪽)"
그는 그림책을 읽어주는 일을 1년간 계속했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주장, 즉 그림책은 읽히는 책이 아니라 읽어주는 책이라고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그림이 한눈에 어린이의 마음을 사로잡고 귀로 들리는 문장이 그림에서 받은 이미지를 생생하게 되살려 주면 어린이는 한층 더 문장의 언어에 귀를 기울이고 이야기를 깊이 받아들이게 된다는 사실을 그림책 체험의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부에서는 아이의 성장단계에 따른 그림책의 선정기준을 소개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그림책을 고르고 보여주는 지적활동에 앞서 더욱 중요한 것은 아이와 부모의 친밀감이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오히려 생후 7개월 이전에 누군가가 자신을 사랑해 주고 있다는 것을 제대로 느끼기만 한다면 전 생애에 걸쳐 아주 중요한 성장요인을 획득한 셈이라고 설명하면서 한 예로 모유수유를 권장합니다.
결국 0세 이전의 그림책은 지적 활동보다는 아이와 부모간의 친밀한 관계를 위한 매개체로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자는 이 시기에는 어떤 책을 선정하기보다는 아이가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책이 훌륭한 도구가 된다고 권면합니다. 또한 딕 부르너 '아기토끼 토순이'와 같이 이야기의 내용보다도 정면을 똑바로 보는 그림의 안정된 디자인이 있는 책이 아기에게 유익하다고 소개합니다.
다음으로 2세 무렵의 그림책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어 일반화하기가 어렵다는 전제아래 저자는 일상 생활 체험을 잘 적용한 '생활 그림책'이나 '생활 경험 그림책'등과 '사물 그림책', 그리고 동요나 동시가 있는 그림책 등을 읽는 것이 좋겠다고 권면합니다. 예를 들어 '어떻게 하면 좋지?'라든지 '아기곰 안녕' 과 같은 곰돌이 생활시리즈 등을 활용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그 밖에도 리듬감을 살리는 언어(예;잘자요, 안녕 등)를 사용하는 책이라든지, 스며들 듯이 읽혀지는 책들을 고르는 것(와이즈 브라운 등의 '잘자요, 달님')도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끝으로 3세 무렵의 그림책을 선택하는 기준이라면 책 읽는 재미, 성취감을 만끽하게 하는 책을 선정하는 것입니다. 즉 책을 접하는 아이로 하여금 감동과 충실감, 마음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감동을 주는 이야기들을 고르는 것입니다. 이 시기는 아이가 접하게 된 책의 내용을 실제 생활에서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촉구합니다. 덧붙여 3살 정도가 되면 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기쁨을 발견할 수 있는 상상력과 호기심, 그리고 언어 능력이 놀랄 정도로 발달하게 되는 나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 책의 마지막 제3부에서는 0세부터 3세의 아이들과 함께 읽을 수 있는 그림책 21종류를 소개합니다. 일종의 그림책에 관한 작은 평론에 해당하는 글들입니다. 책을 고르는데 실제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물량으로 치자면 감히 어떤 책을 골라야 할 것인지 엄두가 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책을 제대로 접하도록 돕고 싶은 마음도 작지 않습니다. 어쩌면 혼란한 시대에 살고 있기에 더 유익하고 올바른 책을 잘 고르는 것도 한 책임이라고 여기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비록 출판된 지 오래 되어 철지난 감상일 수 있고, 일본의 책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다는 한계가 있지만 한번쯤 아이들의 그림책을 제대로 고르기 위한 작은 노력으로 접할 수 있는 책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