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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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외출 준비를 하는 시간은 꽤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옷을 골라 입고, 그러는 동안 머릿속으로 가방과 구두를 결정하고, 그날 예정에 맞춰 전철을 타거나 찻집에서 사람을 기다려야 할 것 같으면, 책을 가져가야 하니까 책이 들어갈 수 있는 가방이어야겠네, 하고 생각한다.
향수도 골라 뿌리고, 화장을 하면서 그날 만날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고, 약속 장소와 만남 장면의 단편을 상상하는 한편으로 지갑에 돈이 있는지 확인하다 보면 일상의 잡다한 일이 뇌리를스친다.
아 참, 원두가 떨어졌는데 도중에 어디서 살 수 있으면 좋겠네, 강아지 사료도 사고 싶은데,
하지만 외출하는 건데 그런걸 들고 다니면 무겁기도 하고 주부 냄새가 날 테지, 그래 그건 내일 아침 일찍 사러가지 뭐, 하고. (93~94p <준비>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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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그 자체, 라고 생각하는 먹을거리에 프렌치토스트가 있다. 우유와 계란을 입힌 식빵을 버터를 녹인 프라이팬에 노릇노릇하게 구워 설탕을 살짝 뿌려먹는다. 뜨겁고 부드럽고 곳곳이 향기롭고, 마음까지 달짝지근 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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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토스트가 주는 행복은 그것이 아침을 위한 먹을거리이며, 아침을 함께할 만큼 소중한 사람이 아니면 같이 먹게 되지 않기 때문이리라. (117~119p <프렌치토스트>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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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해가 길어지면 신이 난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다.
밤나들이를 아무리 부지런히 한다 한들, 낮은 활동하는 시간이고 밤은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날 수 없어, 밤의 활동ㅡ일을 하든, 술을 마시러 나가든ㅡ에 알게 모르게 자책감을 느끼기 때문일까.
아니면 더 단순하게, 어둠을 무서워하고 빛에 안도하는 동물적 본능 때문일까. 이제 곧 여름이 온다는, 계절의 변화에 대한 반가움일까.
...
슈퍼마켓에서 저녁 찬거리를 사고 밖으로 나설 때, 아직도 날이 환하면 안도한다. 캄캄하게 어둠이 내려 있으면 마음이 조급해지면서 괜히 혼이라도 난 기분이 든다. 불안한 것이다. 몹시.
참 이상한 일이다. (170~172p <해가 길어진다는 것>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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