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과 실 - 잡아라, 그 실을. 글이 다 날아가 버리기 전에
앨리스 매티슨 지음, 허진 옮김 / 엑스북스(xbooks)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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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을 '누구나 쓸 수 있다'는 사실이 용기를 줄 때도 있지만 그 말이 마치 습작생을 후려 패는 무기 같이 쓰일 때가 있다.


 모든 사람이, 심지어 글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근원적으로 머금게 되는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하는 욕망에 본인이 탐구심을 가진다면 아무도 그 한계를 지정하거나 감히 자격을 부여할 수 없다는 의미가 때로는

 글에 전문성을 가진다는 걸 부정하는 뜻이기도 한 것처럼 오해받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가 되고자 자처한 이들이 본인의 글에 책임을 지기 위해 겪는 일들, 보내야 하는 시간이 부정당하기도 한다.




 「연과 실」의 저자인 앨리스 매티슨은 영문과를 나와 하버드에서 문예창작 박사 학위를 또 따고 시인으로 활동하다 후엔 소설가로 전향하여 다수의 문학상을 휩쓸고 창작을 가르치는 교단에 서온지 20년이 넘었다.


 배움의 정도나 학력, 수상경력이 본질적인 글쓰기 자체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해도, 글을 전문적으로 쓴다는 것 혹은 쓸 거라는 것에 대한 세간의 인정을 얻어내기에 조금이나마 나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그 인정이 '왜 그런 걸 한다고 그래'에서 '그래 그거 아니면 네가 뭘 하겠어' 정도로 나아질 뿐이라 하더라도)


 문예창작 소나무길을 걸어온(누가봐도 작가가 되기로 작정한) 우직한 저자 같은 이조차도 대학원 졸업 후 글쓰기를 중단했다가 새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게으르다고 오해받거나 육아를 미루는 사람으로 보이기도 했다고 하니 글을 '잘' 쓰기 위해 노력하며 시간을 할애하는 일이 무위한 것이 아니라 주변을 설득하는 일이 얼마나 빡센지 알 수 있다.



 글을 쓰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면 습작생들은 자신이 반드시 글을 써야만 하는 것인지 스스로조차 헷갈리는 마당에 주변을 설득하는 일에 부딪히게 된다.


 직장도 성실히 다녀야 하고 좋은 자식도 좋은 부모도 좋은 배우자도 되어야하는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자기만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주변의 사람들에게 지지받기 위해서, 어떤 당위성을 얻기 위해서나 혹은 소중한 사람들에게 내가 중요히 생각하는 일을 공유함으로써 유대감을 견고히 하기 위해서 등등의 이유로 글을 쓴다고 주변에 선포했다가 돌아오는 반응에 상처를 입는 습작생들도 있다.



 「연과 실」의 저자는 이 지난한 과정을 거쳐온 경험자로서 습작생들에게 용기를 잃지 말 것을 당부한다.

 또한 너무 주눅들지도 원한에 차지도 말 것도. (이 책을 더 빨리 읽었더라면..)


 하늘에서 뚝 떨어진 호감형의 천재 예술가 혹은 자신의 모든 삶을 희생해서 예술에 바치는 예술광인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으면서도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이 양립가능하다는 걸 깨닫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조곤조곤 이야기해주는 저자에게 나는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렇다고 이 책이 작가가 되기 위해 겪었던 저자의 어떤 투쟁의 기록 같은 것은 아니다. 그냥 태도나 마음가짐에 대한 조언만으로 이루어진 책도 아니다.


 저자가 창작을 하며 고민했던 구간, 저자가 가르친 습작생들이 어려움을 겪었던 지점에 대해 어떻게 해답을 찾아냈는지 

 그 과정에 대한 팁이 여러 예시들로 담긴 책에 가깝다.

 딱딱한 작법서라기엔 자유롭게 저자가 작가로서 경험한 이야기들로 수다를 떨고 있고

 글쓰기에 대한 에세이라기엔 소설구상과 전개에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 예시들이 곱씹을수록 도움이 되는 그런 책이었다.


 이 책을 읽었다고 소설쓰기에 대한 알쏭달쏭한 것들, 이를테면 글로 표현한 내적 삶-저자가 말하는 내러티브-이 그래서 결국 무엇인지 등

 아마 죽을 때까지 명쾌하게 알지 못할지도 모르는 것들에 대한 의문이 해결되거나 개안한 듯 글이 갑자기 뚝딱 쓰이지는 않았지만

 나 같은 사람이 굳이 글을 써도 될까, 와 같이 계속 되뇌이던 답답한 생각들이 많이 정화되고 환기됐다.

 

 

 글을 쓰다가 또 다시 쭈구리가 될 때마다 펴볼 것 같은 책이다.


마음 깊은 곳 어둠 속에 가려져 있는, 작품에 필요한 것을 분간해 내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시간에 무엇을 이루었냐고 질문을 받으면 딱히 답할 말이 없을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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