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스와 코스모스와 스페이스의 차이점이라니...유니버스와 스페이스에 대해선 알고 있었는데, 코스모스의 개념에 대해 알게되어 흥미롭고 재미있다..
유니버스 universe : 별과 먼지와 행성과 우리 생명체를 포함한 모든것이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과 상황과 환경이다. 유니버스는 우리에게 주어진 자연 그 자체로서의 우주다. 코스모스 cosmos ; 질서와 조화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우주다.우주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에는 질서와 조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모든 것이 뒤죽박죽되어버릴 텐데, 다행히도 우주의 먼지는 모이면 구름이 되고, 구름이 꼭꼭 뭉쳐 별과 행성을 만들어내고, 별은 제 안의 연료가 소진되면 남은 것을 폭발적으로 내어놓으며 다시 우주에 먼지를 공급한다. 별이모이고 모여 성단을 이루고, 은하를 이루고, 은하단을 이룬다. 밤하늘의 별은 흘러가고 행성은 때때로 역행했다 다시순행한다. 일식과 월식은 예측에 맞게 일어난다. 빅뱅 이론처럼 우주가 어떻게 생겨나고 진화했는가 살펴보는 분야를 ‘우주론cosmology‘이라고 한다. 칼 세이건의 대표작인 그 책이름이 『코스모스』인 것도 우주의 질서와 조화, 우주라는대자연의 작동 원리를 논하는 책이기 때문이다.스페이스 space : ‘ 공간‘으로서의 우주다. 특히, 인류가 인공위성이나 우주선과 같은 인공물체를 보내 탐사하는 공간을 칭한다. 지구 주변의 환경과 그곳에 존재하는 플라즈마 등의 입자를연구하는 분야가 ‘우주과학 space science‘이다. - P4041
아직도 신문은 모든 의견을 공평하게 싣지 않고.아직도 어떤이들은 편견 속에 살고 있고,아직도 누군가의 목소리는 크게 전해지지 않는다.
여성 공동체SISTERHOOD"당신이 여성 공동체에 합류했고, 우리의 함성에 목소리를 더할 거라니 기뻐요."- 틸다 테일러, 1912년나는 분책들을 뒤졌다. 여성 공동체‘는 이미 출간된 단어였다. 그 단어의 첫 번째 의미는 어떤 식으로든 수녀들이 경험하는 자매애를 언급하는 것이었다. 틸다의 인용문은 두 번째 의미에 해당했다. 공통의 목표,특질, 혹은 소명을 지닌 다수의 여성들을 가리키기 위해 두루 사용됨, 나쁜의미로 자주쓰임.나는 분류함으로 가서 원본 쪽지들을 찾아냈다. 인용문 대부분은 신문 기사에서 발췌한 문장이었다. 모르는 것에 대해 계속 질문하는 여성들에 관한 어느 기사에는 자원봉사자가 "그 꺽꺽거리는 여성 공동체"라는 구절에 밑줄을 그어놓았다. 1909년에 나온 어느 기사를 인용한 가장최근의 쪽지에는 서프러제트들이 "교육 수준이 높고, 시끄럽게 떠들어대며, 아이가 없고, 남편도 없는 여성 공동체"라고 묘사되어 있었다.한결같이 모욕하는 투였다. 나는 머리 박사님이 그 문장들을 거절했다는 사실에 감동했다. 그렇긴 했지만, 나는 출간된 그 정의를 "나쁜 의미로 자주 쓰임" 부분만 빼고 새 쪽지에 옮겨 썼고, 그 앞에는 틸다의 인용문을 옮겨 쓴 종이를 핀으로 꽂았다. 그런 다음 그것을 증보판에 들어갈 단어들을 넣어두는 분류함 칸에 넣어두었다.선반에서 몸을 돌리자 아빠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신문 기사를 의미의 출처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너는 어떻게 생각하디?‘ 아빠가 물었다.또 뭘 보신 거예요?"아빠는 미소를 지었지만, 그 미소는 애써 만들어낸 것처럼 보였다."네가 분류함에 뭘 넣든 난 상관 안 한다. 에시. 네 인용문들이 문서에서 이용된 게 아니라고 해도, 비슷한 무언가를 찾아보도록 이끌어줄 테니까. 우리가 새로운 단어를 가장 근사치에 가깝게 이해할 수 있는 게 신문 기사야. 제임스는 요즘 신문 기사를 출처로 쓰는 일이 정당하다고 지지를 표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단다."나는 내가 방금 읽은 기사들을 생각해보았다. "잘 모르겠어요." 내가말했다. 의견보다 나아 보이지 않을 때가 많던데요. 그리고 단어의 뜻을 정의하는 데 의견을 사용하려면 최소한 모든 사람의 의견을 검토해야 되잖아요. 모든 사람한테 자신을 대변해줄 신문이 있는 건 아니죠.""그렇다면, 어떤 사람들한테는 네가 있는 게 다행이겠구나." - P396397
관성.바위는 웬만해선 제자리에서 꿈쩍하지 않는다. 흐르는물은 웬만해선 멈추지 않는다. 바위는 머물기를 원하고, 물은흘러가기를 원한다. 바위도 물도 지금의 상태가 이대로 계속되기를 바란다. 이것을 우리는 사물의 관성이라고 부른다. 관성 뒤에는 중력이 있다. 사물을 관성에서 벗어나게하려면, 중력을 설득해야 하고, 사물이 갖고 있는 질량이나 운동량보다 더 큰 힘이 필요하다. 흐르는 물을 막으려면 거대한 콘크리트댐이 필요하고, 바위를 옮기려면 바위보다 훨씬 더 무거운 크레인이 필요하다.일상의 사소한 습관도,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시대의 흐름도 바위와 물처럼 관성의 지배를 받는다. 세계를 그 관성으로부터 떼어내 옮기고 변화시키는 것이 인간의 일이라면, 그 일의 성패는 우리에게 그 관성을 능가하는 더 큰 힘이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나를 지배하는 관성은 무엇인가. 정체성이란 이름으로 내 안에 들어앉은 타성과 편견의 바위들을 끌어내고, 익숙한 방향으로만 흐르려는 생각의 물길을 다른 곳으로 돌릴 힘이 나에게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