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탄생 - 해방 한국전쟁기 한국인의 질병과 위생 의료
전우용 지음 / 이순(웅진)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제목만 봐서는 어떤 책인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이 책의 부제는 해방-한국전쟁기 한국인의 질병과 위생, 의료 라고  적혀있다. 책이 서술하고 있는 시간대는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해방을 맞이하는 혼란기이다. 이때 한국인들에게 주어졌던 삶의 환경과 의료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현대의학 자체보다는 한국인이 현대의학을 수용한 방식과 과정이었다고 머리말에 적고 있다. 그래서 현대인은 의학의 시선으로 자기 몸과 생활습관, 주변 환경을 살피고 교정하는데 익숙한 사람들이므로 해방이후 한국전쟁기까지의 보건의료사는 현대 한국인의 탄생이라 할 만하다고 적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확실히 그 당시의 보건의료사와 관련된 내용을 접할 수 있었다. 국가행정력이 전무한 상태의 해방기에 도시의 상황은 어떠했을까? 전재민과 이재민이 몰려 들어오고 집과 음식은 없는데 사람들만 많아지니 위생상태의 의식주 문제는 엄청난 사회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전염병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질병은 범죄처럼 다루어지기도 해서 환자를 격리 차단하기 급급했다고 한다. 그런 해방기부터 한국전쟁까지의 시기의 질병과 위생상태, 의료체계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사회의 안정에 위해를 끼치는 범좌자와 개인의 건강에 해악을 끼치는 세균은 모두 불순, 불량, 불온, 부정한 것으로 파악된다. 치안과 위생 행정의 근본목적은 이들 요소를 적발, 차단, 격리, 제거하는 것이다. 다만 서양 근대의학이 병자로서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몸에 침투하는 병원체에 관심을 집중한 반면 식민지 치안 행적은 식민통치의 기반을 동요시킬 우려가 있는 사람들을 병원체 처럼 취급했다.” 위에 인용된 단락이 저자가 이 책을 바라보는 관점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국가권력이 경찰과 군인을 통해서 시민들을 관리한 것 처럼 현대의학도 질병을 그런 식으로 다루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것을 비슷하게 등치시켜서 그 당시 사회상을 보게끔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에서 다루어지는 사료들이 저자의 의도대로 편집되기는 했지만 몇 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현대의학을 수용하는 방식과 과정을 다루고 있다고 했지만 지금의 서양의학은 해방이후에 들어온 것이 아니다. 19세기 중후반부터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정도는 당연히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 책에서도 조선후기의 역사도 서술 되어 있다. 하지만 저자가 말한 전제라는 부분에 있어 현대의학을 수용한 방식과 과정이라고 하기에는 시기가 맞지 않는다. 저자는 해방이후 한국전쟁기까지의 사료를 중심으로 이 책을 썼기 때문이다. 현대의학의 수용과정이라는 관점이라면 책을 쓰는 전체 테마가 달라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해방과 한국전쟁에 시기를 국한한다면 ‘해방이후 어지러웠던 위생과 보건의료환경에서 현대의학이 한국사람들에게 어떤 선입관을 남겼는가?’ 한국인이 약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또는 ‘해방이후 보건의료사’ 이런 주제가 더 낫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 책이 조선인이 미군정과 국가통제를 통해서 현대적 한국 시민으로 만들어져 갔던 것을 마찬가지로 현대의학도 시민들을 의학의 시선으로 몸을 그렇케 생각하게끔 만들었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 쓰여졌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 스스로도 깔끔하지 않은 거친 스케치였다고 표현한 것 처럼 개인적으로는 그런 부분이 아쉽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다루어진 사료의 팩트만을 생각해본다면 접할 수 없었던 해방이후의 보건의료사를 볼 수 있었던 것 같다.해방공간의 무정부상태, 행정력이 부재한 상황에서 도시를 밀려드는 전재민과 이재민은 어떤 최악의 상황을 연출할 수 있는지. 그것이 얼마나 재앙처럼 다가오는지.. 그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의 고충을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었다. 일부의 내용은 소설 한강에서도 묘사되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 유행했던 전염병들 말라리아, 페스트, 콜레라 티푸스, 두창, 장티부스, 드프테리아, 재귀열, 유행성 뇌염, 유행성 독감, 폐렴, 성홍열등이 인구이동이 잦은 도시지역을 강타했던 내용을 접할 수 있었다.
 
1949년 3대 망국병으로 나병, 폐결핵, 성병을 지목하고 실태를 발표했다. + 기생충감염 그리고 해방이후에는 나병 대신에 마약중독이 3대 망국병이였다고 한다.

대학자치에 대해서 미군정의 통제권이 들어가면서 이사회가 만들어지는 과정도 자세하게 서술되어있다. 아마도 이 책 챕터중에서 가장 길고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평균적으로 챕터가 10페이지정도로 편집되어 있는데 이 부분은 무려 30페이지에 걸쳐 설명하고 있다.

 MASH 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다. 이동외과병원을 말한다. 한국전쟁 당시에 응급수술을 제때 잘하기 위해서 미군이 군부대 단위에 설치운영했던 것을 한다. 무조건 자르고 볼 수 밖에 없는 현실? 절단의 천재들 외과의사들에 대한 안타까운 이야기들도 있다.


 전쟁, 홍수, 지진등 자연재앙은 삽시간에 그 주변의 위생상태를 악화시킨다. 지금도 세계적인 구호단체들의 신속한 도움없이는 전염병이 생겨나고 많은 사람들이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해서 죽어간다. 1950년이라는 시간대로 거슬러 올라가 정부가 제대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 그리고 50만명씩이나 몰려드는 서울과 기타도시들은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상황을 의료환경이라는 시각으로 볼 수 있어서 그 시간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한국전쟁상황은 이전에 폭격이라는 책을 통해서 그 피해상황을 많이 접할 수 있었는데 이책에서는 UN으로 참전했던 나라들이 어떻케 다른 방식으로 구호를 하고 환자치료를 해줬는지에 대한 내용들이 있어서 새롭게 다가왔다. 그리고 해방이후의 보건의료사에 한의학의 역할에 대해 충분히 다루지 않았던 점은 아쉬움으로 생각되었다. 그나마도 조금 언급하고 넘어가는 수준이다. 균형잡힌 시각을 통해서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게 독자에게 신뢰를 받는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애초에 전공자가 아니다 하더라도 결국 자신의 편견을 고스란히 책에 남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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