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은주 - 진주를 품은 여자
권비영 지음 / 청조사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그녀가 사라졌다……
소설은 주인공인
그녀(은주)가 사라지며 시작된다. 은주는 25살되기까지 주변사람들에게는 착한 친구, 다문화센터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부모님에게는 온순한
딸로 살았다. 그런 은주가 갑자기 사라져버린다. 은주는 국문과
출신으로 동네에서는 학생들을 잘 가르친다고 소문난 논술학원을 1년여전부터 꾸려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은주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 못할 집안 사정이 있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오빠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가장 아닌 가장이었고 어머니는 그런 폭력에 진저리 치지만 그 화풀이를
딸에게 욕설을 하면서 풀고 있었다. 이런 아버지의 구타에 은주뿐만 아니라 오빠 용주 역시 아버지에 대한
분노는 심해져 갔고 용주 역시 집을 나가게 되었다.
은주는
집을 나온 뒤 타인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친구 성희를 보며 자신의 처지와 비교하면서 부러워
혼자서 울기도 하고, 터키인 애인 에민의 나라에 가서는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도 조화롭게 살
수 있도록 서로를 인정하며 교류하는 오스만제국(터키)의 관용정신을
보고 인간이니까 다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또한 에민의 아버지 파샤로부터 “세상은 원망이나 분노를 안고 살기엔 너무 짧다네. 나로 인한 것이든
타인으로 인한 것이든, 이해할 수 있는 아픔이든 이해할 수 없는 아픔이든, 모든 원망은 스스로 이겨 내야 하는 거라네.”라는 말을 듣고 은주는
아버지에게도 지금은 이해할 수 없는 당신의 아픔이 있으리라는 생각에 가슴 언저리가 먹먹해지기도 한다.
작가는
은주를 다문화센터에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될 것을 권한 친구 성희의 엄마 지숙을 통해서도 타인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 한다. 지숙 역시 미국으로 유학 간 피아니스트 동생이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낳아 고국으로 돌아온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동생을 홀대했다. 그런 동생이 다시 미국으로 가 아이와 함께 자살을 한 것이 꼭
자기자신의 잘못 인양 계속해서 자책하였고, 가여운 다민족 여성들을 보듬는답시고 벌였던 그간의 호의적인
행동이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을 씻기 위한 하나의 방어기제였는지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다시
소설은 은주의 가정사를 비춘다. 은주는 자해를 한 아버지와 정신이 혼미한 어머니를 입원시키고 자신은
취직을 하여 부모님을 간병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 간병인을 두지만 예전에 한국어를 가르쳤던 다문화가정의 학생들이 당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간병을
한다며 이사한 은주의 집을 방문한다. 이렇게 소설은 나와 다른 타인이지만 타인의 인생에서 나, 또 다른 타인은 서로 따듯한 보살핌을 주고 받으며 고마워하고 살아가는 것이라는 걸 깨닫게 해준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세상 어느 누구도
외따로운 섬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
각이며 대양의
한 부분이다. 흙 한 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흘러가면
유럽은 그만큼
작아질 것이며, 모래벌이 씻겨도 마찬가지. 그대나
그대 친구들이
땅을 앗기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어떤 사람의 죽음
도 나를 손상시킬지니. 나는 인류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이를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말라.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종이나니.
소설의 마지막엔
‘존 던’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시 전문이 있고 이 시의 제목을 취해 헤밍웨이가 소설을 썼단다. <은주>를 쓴 권비영 작가 역시 이 시를 읽고 소설의
영감을 얻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마지막으로 소설은
처음 ‘그녀가 사라졌다.’로 시작하여 ‘그녀가 돌아왔다.’로 결말을 맺는데.
이것 역시 한 명, 한 명, 타인의 인생은 떨어져있는
외딴 섬인 것 같지만 그 속을 살펴보면 “서로 따듯한 손길로 이어져있는 타인의 사랑을 함축적으로 나타낸
건 아닐까?”라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