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코너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1
존 치버 지음, 박영원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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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코너』는 교도소 팔코너를 배경으로 한다. 낡은 교도소 팔코너에는 누군가를 죽였거나 보석을 훔쳤거나 사기를 친 인간 군상들이 있다. 주인공 패러것은 교수라는 그럴듯한 직책을 가진 중년의 인물이지만 형을 살해한 죄로 팔코너에 들어온다. 그는 번번이 치료에 실패한, 고질적인 마약중독자이기도 하다. 패러것의 삶에서 마약은 절대적이다. 마약이 없는 삶은 그에게 죽음과 같기에, 마약이 끊어진 극심한 금단 현상 속에서 그는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패러것은 어쩌다 마약중독자가 되었을까? 패러것은 왜 형을 죽이게 된 것일까?

서술자는 패러것을 중심으로 감옥 속의 일상과 죄수들의 모습을 담담히 서술한다. 서술자에 의해 형상화되는 죄수들의 모습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감옥 바깥의 사람들은 무심결에 감옥 속 수감자들을 특별한 사람들로 여긴다. 태어날 때부터 살인자나 강간범이라는 낙인이 찍혀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인간이다. 그들도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홀로됨을 두려워하고 외로워한다. 패러것의 동료 죄수들 가운데 가장 매력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치킨 넘버 투는 - 그는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 주지 않는 세상에 맞추어 자신의 이름을 버렸다. - 감옥에 처음 온 패러것에게 모든 것은 끔찍한 실수일 뿐이라고 말한다. 죄수가 되는 것도 죄수로 취급받는 것도 실수라는 것이다. 그는 외로운 사람이다. 12년 간 감옥에 있으면서 그를 찾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크리스마스 트리 옆에서 찍은 사진을 장엄한 표정을 한 채 “북극, 고드름 가, 산타클로스 부부 앞”으로 보내 달라고 한다. 그는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려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른다. 치킨은 패러것의 품에서 쓸쓸히 죽어가면서 다음 생의 기대를 품고 죽기에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 패러것은 맞잡은 치킨의 손에서 심오한 자유의 기운이 전해지는 것을 느낀다. 치킨은 패러것을 구원하는 존재처럼 보인다. 영적인 면에서도 그렇고 패러것의 탈옥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점에서도 그렇다. 패러것은 치킨의 시체 대신 자신이 자루에 들어가서 감옥을 빠져 나올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치킨의 죽음이 패러것을 자유로 인도하는 것이다.

『팔코너』는 종교적이고 영적인 구원에 대해 전달하고자 한다. 패러것은 마약에 빠져 있으면서 마약이 종교적 구원과 흡사하다고 말하며, 주교에게 편지를 보내 영혼의 구원을 언급하기도 하고, 추기경이 직접 와서 미사를 할 때 진심에 우러나온 기도를 드리기도 한다. 패러것은 치킨이 죽기 전날 밤 갑작스런 성직자의 방문을 받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강복을 받는다. 꿈에서는 관이 왜건에 실려 빠져 나가는 장면을 본다.(다음 날 패러것은 치킨의 시체 대신에 교도소를 빠져 나가게 되며 시신을 옮기는 왜건이 고장 난 덕분에 도망칠 시간을 벌게 된다.) 계속되는 행운에 의해 패러것이 탈옥하게 되는 과정은 패러것이 신의 도움을 받아 영적인 자유를 얻게 되는 과정의 메타포로 읽힌다.

패러것이 열렬히 사랑했던 조디도 종교적 구원을 받았다. 패러것은 동성애자가 아니었음에도 조디에게 빠져들고 그들은 일주일에 두세 번씩 만나서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패러것은 조디의 농구화가 찍찍 끄는 소리를 애타게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조디는 패러것에게 추기경이 미사를 하러 올 때 복사 차림으로 탈출하겠다는 계획을 말하고 그 계획은 멋지게 성공한다. 사실은 추기경이 알고 있으면서도 묵인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추기경은 조디의 바깥 삶을 도와주어 그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잘못된 것처럼 보인다. 탈옥은 범법이고 죄수라면 정해진 형기를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기를 마치는 것이 교도소의 목적은 아닐 것이다. 교도소의 목적은 사람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이고 그 변화라 함은 올바른 삶으로의 인도이며 구원을 말한다. 형기를 마친 죄수가 또 다시 죄를 저지르는 것보다 탈옥이든 무엇이든 사람이 구원받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영적인 인도자인 추기경은 그 사실을 알았기에 묵인한 것이 아닐까. 『팔코너』는 합법과 상식의 유지보다는 실수 많고 죄 많은 인간의 구원이 더 근원적이고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듯하다.

치킨은 죽기 전에 패러것에게 왜 형을 죽였느냐고 물어본다. 패러것은 그 물음을 듣고 “세상 사람들이 살인이라고 부르는 그 사건이 일어난 것은 가족에 관한 기억을 떠올리거나 가족에 관한 꿈을 꿀 때마다 항상 가족의 등부터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하고 생각했다. 패러것의 삶은 겉보기와 달리 고독한 삶이었다. 아내인 마샤는 자신의 아름다운 외모에 도취되어 그녀의 모든 불행이 남편 때문이라고 여겼다. 패러것의 아버지는 패러것이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 낙태시술자를 초대하여 패러것을 떼고자 했고 형 에벤은 아버지의 적의를 물려받아 어린 시절에는 패러것을 상어가 있는 곳에서 수영하도록 유도했고 커서는 창 밖으로 밀어버리고 모른 척 하기도 했다. 패러것이 형 에벤을 죽인 것도 일종의 사고로, 에벤이 말다툼 끝에 아버지는 네가 죽길 원했다며 패러것의 나쁜 기억을 떠올리게 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의 인간관계들은 정상적인 것이 없었고 그럼으로 그는 마음을 소통할 대상이 없었다. 마약을 시작하게 된 것은 군대의 경험 때문이지만 마약에 탐닉하게 된 것은 소통할 대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팔코너’에서 패러것은 남자인 조디와 깊은 사랑의 감정으로 소통하고 죽음 앞에서 의연한 치킨에게서는 영적인 자유의 힘을 얻는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약도 깨끗이 끊게 된다. 언뜻 보면 죄인들의 공간 ‘팔코너’에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은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구원의 시작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부터가 아닐까. 그래서 팔코너는 오히려 구원받기 쉬운 공간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모든 인간은 죄인이고 우리가 사는 곳은 교도소 팔코너와 다르지 않다는 함의가 있는 것일까. 작가의 의도가 무엇이든 ‘팔코너’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과 패러것이 그곳에서 보고 듣는 것들과 패러것이 탈옥해서 느끼는 감회는 우리의 가슴을 지그시 누르는 그 무언가가 있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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