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 오타쿠를 통해 본 일본 사회
아즈마 히로키 지음, 이은미 옮김, 선정우 감수 / 문학동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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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과 사랑에 빠진 오타쿠 ; 오타쿠, 너란 사람을 위해

 

 

2010년 1월, <화성인 바이러스>라는 케이블 방송에 게임 캐릭터와 결혼한 일명 십덕후가 등장했다.

 

십덕후란 오타쿠보다 2배 정도 더 오타쿠스럽다는 뜻으로, 오타쿠를 '오덕후'로 재미삼아 바꿔 부르다가 5덕후+5덕후=10덕후로 이어졌다고 한다.(뭐 이런 것보다 내 생각에는 오타쿠를 비하시켜 욕처럼 부르려고 하다 보니 십덕후라는 명칭이 생긴 것 같다)

 

나도 처음에 십덕후를 보았을 때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한동안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그가 자주 재미있는 농담거리로 오르락내리락했다. 정신 나간 또라이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를 조롱하고 욕했고 나또한 그중에 한명이었다.

그러던 중 갑작스레 궁금해졌다. 쟤는 왜 인형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그냥 이상해서?

그도 20년을 살아온 사람인데 인형과 결혼하기까지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

 

오타쿠, 음지에서 양지로 올라오다

 

어림잡아 10년 전부터 인터넷에 언급되기 시작한 오타쿠(우리나라에서 오타쿠를 생각하는 일반인들의 인식은 뚱뚱하고 못생기고 하루 종일 방안에 틀어박혀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는 존재 정도로 여기고 있어 매우 부정적이다)라는 존재가 방송에 출연하며 드디어 수면 위에 올라왔다.

 

방송에 출연했던 일명 ‘십덕후’ 이진규씨는 일본 애니메이션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에 나오는 미소녀 캐릭터 '페이트'와 6년째 열애 중으로 지난 2005년부터 이 캐릭터에 반해 결혼을 결심했다고 했다.

방송출연 후 파급 효과는 컸다. 인터넷상에서 이진규씨는 불특정다수에게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고 우리나라에서 오타쿠는 현실과 동떨어진 집단으로 이미지가 더욱 추락했다.

그런데 이진규씨는 2011년 8월 방송에 한 번 더 출연했다. 이번에는 케이블이 아닌 공중파 KBS2 월요일 예능 프로그램 <안녕하세요>이었다. 이것을 통해 우리나라 중장년층들도 오타쿠라는 젊은 세대에 존재하는 특이한 사회 현상과 마주쳤다.

 

 

인형과 사랑에 빠진 오타쿠를 분석하다

 

오타쿠는 도대체 왜 인형과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일까?

일본의 평론가 아즈마 히로키는 자신이 쓴 책인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오타쿠를 통해 본 일본 사회)』을 통해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1996년부터 1997년에 걸쳐 방영된 아카호리 사토루 원작의 TV 애니메이션 <세이버 마리오네트>는 언뜻 보아 값싼 좌충우돌 SF 코미디인데, 그 때문에 오히려 오타쿠적인 환상의 구조를 잘 반영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이 작품의 무대는 남성밖에 없는 가공의 혹성이다. 거기에는 여성은 안드로이드밖에 없으며, ‘마리오네트’라 불리고 있다. 한편 남성들도 실은 모두 몇 명의 오리지널에서 만들어진 클론에 지나지 않는다. 오리지널을 공유하는 클론 집단은 각각 직계 클론의 통치를 받는 서로 다른 도시국가를 이루고 있다. <세이버J>는 그중에서 에도를 모방해 만든 도시 ‘자포네스’를 무대로, 주인공 남성과 우연한 계기로 ‘마음’을 품고 만 세 대의 특수한 마리오네트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 세 대의 마리오네트의 역할은 처음에는 주인공에게도 시청자에게도 숨겨져 있다. 그러나 이야기 속에서 조금씩 설정이 밝혀진다. 작품세계의 혹성은 지구인의 식민성이며, 원래는 여성도 있었을 것이었다. 여성이 없는 것은 식민선의 컴퓨터 고장이 원인으로, 식민선에 타고 있던 유일한 여성은 지금도 냉동수면으로 보존되어 혹성의 상공을 돌고 있다. 그러나 그 여성을 해동해 혹성에 내려놓기 위해서는 그녀를 독점하고 보호하고 있는 미친 컴퓨터를 어떻게든 속여야만 한다. 그 때문에 인간의 ‘마음’에 한없이 가까운 의사적 프로그램을 성장시켜 여성 대신으로 보낸다는 계획이 세워졌다. 그 ‘마음’은 어디까지나 눈속임이므로 진실한 마음과 교환하려면 세 개가 존재해야 한다. 등장하는 마리오네트들은 그 프로그램을 성장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즉 그녀들은 실은 단순한 대용품이 아니라 오리지널과 교환하기 위해 만들어진 복제, 인간 여성을 다시 강림시키기 위한 희생물이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알면서부터 주인공의 갈등이 시작된다. 즉 이 작품의 주제는 ‘가짜 인격밖에 갖고 있지 않지만 오랫동안 옆에 있었던 마리오네트’와 ‘질실한 인격을 가진 듯하지만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타인’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진짜로 보이는 가짜와 본 적 없는 진짜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양자택일이다.

 

이 설정은 커뮤니케이션 일반의 문제뿐 아니라 오타쿠들의 세계관을 아주 잘 우화화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상상력을 통해서일 뿐이지만 충분히 성적이며 또 충분히 감정이입이 가능한 캐릭터가 가까이에 존재한다. 한편 멀리에는 현실의 이성이 있지만, 그것은 인공위성처럼 손이 닿지 않는 것이며 비록 닿는다 해도 그때는 오랫동안 쌓아올린 캐릭터에 대한 감정이입을 교환조건으로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아즈마 히로키, 『동물화 하는 포스트모던』46~48쪽)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세이버 마리오네트>의 남자주인공의 상황이다. 위에 내용을 풀어쓰면 이렇다.

 

<세이버 마리오네트>의 남자주인공은 자신이 살고 있는 혹성 주위를 돌고 있는 위성에 ‘진짜 여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남자주인공은 위성으로 가기가 쉽지 않고 그 위성 안에 있는 ‘진짜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 수 없다. 만나본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이 살고 있는 혹성에는 ‘진짜 여자’하고 똑같은 안드로이드가 있다. 그 안드로이드는 가짜이지만 남자주인공에게 쉽고 충분히 사랑과 성적 욕망을 충족시켜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타쿠는 만화 <세이버 마리오네트>에서 하늘을 떠다녀 볼 수는 있지만 직접 만질 수는 없는 ‘진짜 여자’의 상황처럼 손으로 직접 만질 수 없는, 현실적으로 만나기 쉽지 않은 진짜 여자 대신, 어디까지나 상상력을 통해서일 뿐이지만 충분히 성적이며 또 충분히 감정이입이 가능한, 접근하기도 쉽고, 내가 원할 때 언제든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캐릭터에 자신의 감정을 분출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만나고 만지는 것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큰 인형을 구입하여 그 인형과 밥도 먹고 놀이공원도 가고 결혼식도 올린다.

 

그러니까 역설적으로 오타쿠는 게임 캐릭터와 사귀는 것이 진짜 여자를 사귀는 것보다 더 현실적인 것이다. 실제로 이진규씨는 방송에서 "여자는 사랑해본 적이 없다. 페이트만이 나의 유일한 사랑이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 두꺼운 벽에 갇혀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고 ‘진짜 사람’보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를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어냈다. 이것은 우리가 무엇인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을 의미하며 나는 그것이 두렵다.

 

 

물론 이 개념 하나만으로 다양한 유형의 오타쿠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동물화 하는 포스트모던』에서 제시한 하나의 개념을 통해 인형을 사랑하게 된 이진규씨와 비슷한 유형의 오타쿠가 생겨난 것에 대해 설명해보고 싶었다.

 

아즈마 히로키의 『동물화 하는 포스트모던』-오타쿠를 통해 사회를 분석하다

 

2007년에 한국에서 이 책은 아즈마 히로키라는 걸출한 일본 평론가가 일본 오타쿠를 통해 일본 사회를 분석한 인문사회서이다.

오타쿠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부류가 매우 다양하다. 특히 일본에서는 어떤 일에 매우 몰두해있는 열정적인 사람의 이미지를 갖고 있기도 해서 오타쿠에 대한 정의를 하나로 내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오타쿠를 통해 본 일본 사회)』에서는 만화(이야기)에 집착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들의 의사소통 형태, 소비 형태, 가치관, 정치적 성향 등에 대하여 분석하여 궁극적으로는 책의 소제목처럼 오타쿠를 통해 일본 사회를 바라보고 있다.

 

미이미 1970년대부터 오타쿠가 나타나기 시작한 일본을 분석한 이 책을 통해 나는 대한민국 오타쿠의 형태과 오타쿠가 된 이유, 그들의 가치관과 정치적 성향 등을 가늠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일본 오타쿠는 제국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많고 현재 대한민국도 이와 비슷한 성향이 가진 사람들이 ‘일간베스트’에서 일명 일베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오타쿠.

그들은 단순히 하루 종일 집안에 틀어박혀 만화에 빠져 사는 배나온 사람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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