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자본 - 1% vs 99% 누가 양극화를 만드는가
KBS <사회적 자본>제작팀 지음 / 문예춘추사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골랐던 책이다. 제목인 사회적 자본이 부제인 ‘1% vs 99% 누가 양극화를 만드는가라는 질문에 어떻게 답할지 궁금했다. 나는 이 책에서 저자들이 사회적 자본의 재생산/공고화를 통해1% 99% 간 양극화가 더욱 강화된다 식의 결론을 도출하리라 기대했다. 책을 펴면서 나는 퍼트남(Robert Putnam)사회적 자본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래서 먹고 살기 바쁜 노동자들보다 부유층이 네트워크나 규범 같은 사회적 자본을 더욱 많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양극화가 더욱 공고화된다는 식의 결론이 나올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완전히 깨졌다. 무엇보다 이 책의 부제는 사실 책 내용과 상관관계가 없다. 책 전체에 걸쳐서 양극화라는 표현이나 뉘앙스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저자들이 궁극적으로는사회적 자본과 양극화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책을 썼을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책 내용을 통해서는 그게 드러나지 않았). 아니면 단순히 책 제목을 결정하는 단계에서 ‘1% 99%’라는 섹시한제목을 달고 싶은 유혹을 떨칠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건 간에 부제를 그렇게 달았으면 어떤 식으로든 관련 내용을 포함시켰어야 옳다.

 

책의 전반적인 구조는 여러 심리실험 에피소드들을 근간으로 하여 거기서 나온 결론의 일반화를 통해 주장을 풀어나가고 거기에 다른 비실험 사례들을 덧붙이는 식이다. 1부는 신뢰, 2부는 소통, 3부는 협력을 테마로 하고 있다. 책에서 소개되는 실험은 대개 KBS 방송에서 소개되었던 것들이며 외국에서 실시된 유명한 실험들도 일부 소개된다. 이 실험들은 거개가 인간이 이기적이지만은 않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한 것들이다. 비록 책 제목에서 받았던 기대를 충족할 수는 없었지만 여기 소개된 의외의 실험 결과들을 접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개인적으로는 심리실험을 일반화하는 데 (매우) 부정적이기 때문에 이러한 실험 결과들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고 싶지는 않다. 따라서 이 책에서 소개됐던 실험 결과들을 제외한 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것들을 꼽자면, 행복감뿐 아니라 신뢰에도 영향을 주는 신뢰 호르몬’ (혹은 윤리 분자’) 옥시토신(pp. 76-85),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캐나다 공감 수업의 내용과 효과(pp. 161-169), 상황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만 해석하여 소통을 가로막는 확증편향(pp. 170-183)에 관한 것 등이다. 특히 사람들이 가진 확증편향은 내가 얼마 전에 리뷰를 쓴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리뷰 보기: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이여 철학을 가져라.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이여 프레임으로 맞서라.)에서 말하는 프레임의 효과와도 맥락이 닿는 것 같아서 흥미로웠다.

 

책 제목에서 주는 기대감을 접는다면 가볍게 읽기에 부담없는 책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들과 개선해야 할 점들이 있다. 우선, 책의 서두에서 사회적 자본이라는 개념에 대한 정의를 좀 더 확실하게 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비록 32-33쪽에서 사회적 자본의 정의에 관한 섹션을 특별히 삽입하기는 했지만, 설명이 부족해서 여전히 그 정의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1] 이 책에서 다루는 신뢰, 소통, 협력이 왜 사회적 자본에서 중요한지 여전히 설명이 미흡하다. 저자들이 사회학 쪽 백그라운드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으나, 한편으로는 사회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사회적 자본을 큰제목으로 하고 다른 한편으로 최근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1% 99%’를 부제로 달았으니 제목만큼은 멋지게 잘 단 셈이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해 이 책 내용을 좀 더 정확하게 대표해줄 만한 제목은 예컨대 인간은 이기적인가?” 정도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저자들의 대답은 아니오이다.

 

썩 잘 쓴 글도 아니다. 이 분야의 전공자들이 아닌 프로듀서들이 쓴 글이라 그럴 것이다. 시사교양 TV 프로그램은 설득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며, 글이 아닌 사례나 인터뷰 등을 통해서 스스로 말하게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그런 식의 구성에 익숙한 PD나 방송작가들에게는 설득을 목적으로 하는 활자화된 매체가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그럭저럭 무난한 글들도 있지만 어떤 글들은 뭔가 결론을 낼 것 같다가도 했던 말만 중언부언하다가 끝내버린다. 어떤 글은 문장이 다소 유치하고 비논리적이다. 심지어 무난한 글들 조차도 논리의 전개방식이나 결론이 매우 상식적으로 당위론적이고 원론적인 수준이어서 설득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덧붙임] 오타 및 오역, 편집 실수, 문법 오류 등이 너무 많아서 솔직히 읽으면서 점점 짜증이 났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읽다 보니 너무 많아서 따로 기록했던 것을 정리해서 따로 포스팅한다. (이런 책들은 편집자의 이름을 꼭 찾아보게 된다. 될 수 있으면 이 사람이 편집한 글은 피하고 싶어서. 트랙백 참조)



[1] 저자들이 사회적 자본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든 예는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트러스트 TRUST-The social virtues and the creation of prosperity』와 2009년 노벨경제학자상을 수상한 엘리너 오스트롬의 설명(그나마 이 경우엔 구체적 저서 등을 인용하지도 않았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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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적 자본』오역 및 오탈자, 편집 실수
    from Rhizomatous Reading 2013-05-19 12:03 
    오타 및 오역, 편집 실수, 문법 오류 등이 너무 많아서 솔직히 읽으면서 점점 짜증이 났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읽다 보니 너무 많아서 따로 기록했던 것을 정리한다. (이런 책들은 편집자의 이름을 꼭 찾아보게 된다. 될 수 있으면 이 사람이 편집한 글은 피하고 싶어서.) p. 26 첫번째 줄. 사람은 생각보다 타인을 믿는다 -> 사람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타인을 믿는다. 저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라는 의미를 표현하고 싶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