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복지국가의 전망 (양장)
김윤태 엮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는 사회투자(social investment)’로서의 복지이다. 이것은 복지지출을 경제에 부담이 되는 사회지출이 아니라 경제에 도움이 되는 사회투자로 보는 관점이다. 1970년대 중반 이후 복지가 사람들을 게으르게 만든다는 신우파의 비판에 직면하여 기존의 복지국가를 수정한 것이 사회투자국가이다. 현대사회는 전통적인 구사회위험(실직, 질병, 노령, 장애 , 사망, 빈곤 등)에 더하여 지식기반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신사회위험(가족해체로 인한 돌봄노동 위기, 기술발전에 따른 작업 불안정)에 노출되어 있다. 이제 평생직장은 옛말이 되었고 누구에게나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위험이 상존한다. 예전과 달리 맞벌이 가정과 한부모 가정이 늘어났고 노인 돌봄 서비스 필요성도 증대되었다. 과거와 같은 남성 가장 중심의 소득보전형 복지로는 사람들을 효율적으로 보호할 수 없다. 이제 복지는 질병이나 실업 등에 대처하는 단순한 보험의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 자본과 인적 자본에 투자하는 적극적 복지(positive welfare)’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 사회투자국가의 요지이다.

실제로 유럽 국가들과 미국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초하여 복지정책을 바꿔가고 있다. 클린턴 정부의 노동연계복지, 블레어 정부의 일을 향한 복지등이 그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 노무현 정부의 참여복지’, 이명박 정부의 능동적 복지또한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초하고 있다. 물론 한국의 각 정부에서 새로운 복지정책을 얼마나 시행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김대중 정부의 4대 보험 도입 이후 노무현 정부는 재정 압박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구태의연한 토건국가 담론이 복지국가 담론을 압도해 버려 복지가 오히려 퇴행했기 때문이다.

유럽, 영미권과 한국은 매우 다른 역사적 배경과 재정구조를 가지고 있다. 유럽, 그 중에서도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 20세기 전반기를 거쳐오면서 강력한 노동조합, 사회민주당 통치, 비교적 낮은 소득불평등 정도, 초당파적 복지 지지, 높은 조세부담률(개인, 기업 모두)에 대한 국민적 합의 등이 있었다. 우려와 달리 지난 1980, 90년대에  이들 국가들에서는 다른 유럽국가들이나 영미권 국가들에 비해 경제성장률, 노동생산성 증가율, 실질임금 상승률이 높게 더 나타났다. 한국에서는 복지가 사회적 합의로 도출되기보다는 정부의 정치적 결정에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의 국가재정이 취약한 것도 문제이다. 한국은 조세부담률이 OECD 국가들 중 가장 낮은 약 20%이고, 복지재정이 정부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25%이다. 스웨덴의 경우는 각각 약 50%, 59%이다. 예컨대 한국에서는 국민이 낸 직접세 총액보다 민간 생명보험사에 지불한 보험료 총액이 더 많다. (한국의 복지재정에 관한 비판적인 분석은 오건호의 <대한민국 금고를 열다>을 참조하면 좋을 것이다. 리뷰 보기: 진보의 눈으로 국가재정 들여다보기)

유럽에서 사회투자는 주로 아동이나 청소년, 한부모 가정에 집중된다. 전통적인 복지에서 소외되었던 이들에게 능력을 주는(enabling) 복지가 사회투자인 것이다. 한국에서도 소외된 계층에 대한 사회투자가 중요하다. 그렇지만 사회투자가 가장 소외된 계층에게선별적으로 복지를 제공하자는 신자유주의적 방식을 답습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한국에서는 사회투자와 더불어 교육과 의료 등에서 보편적 복지를 병행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한국에서는 전국민 의료보험이 보편적 복지를 제공한다지만 그 보장성이 너무 낮고 영리병원이 거의 없다지만 사실상 거의 모든 병원이 영리병원이다. 건강보험을 강화하고 병원의 공공성을 개선해야 한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복지의 양 자체를 크게 늘려야 한다. OECD 최하위 수준의 복지재정으로는 복지를 논한다는 것이 아이러니이다. 세금과 건강보험료를 높일 필요가 있다. 부유세를 신설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이 책은 2008-2010년 고려대 대학원 사회복지학과와 인문정보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콜로키엄에서 발표한 각기 다른 저자들이 쓴 11편의 논문을 모은 것인데, 사회복지학뿐 아니라 의학과 행정학을 전공한 교수들의 논문도 실었다. 핵심이 되는 사회투자담론에 관한 글 외에도 의료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한 글, ‘워킹푸어working poor’의 자산형성을 도와 빈곤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 글, 복지 발전과 관련하여 위임민주주의가 지닌 의의와 한계를 설명한 글, 사회민주주의적 복지의 활성화를 위한 복지동맹을 제안한 글 등은 흥미롭다.

각기 다른 저자들이 썼기 때문에 문체, 분석력과 분석 수준이 다르다. 어떤 글은 다소 산만하고, 어떤 글은 중언부언하며, 또 어떤 글은 개조식(個條式)에 가깝다. 매우 구체적인 소재와 대안을 이야기하는 글도 있고, 다소 이론적인 분석이 부각되는 글도 있다. 글 자체로는 저자마다 정치적 지향의 차이가 크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복지 강화를 이야기하면서 보수적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마지막 장에서 설명하듯이 복지를 이야기하면서 아주 진보적이기도 어려울 것이다. 복지 역사가 일천한 한국에서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국가들 수준의 복지를 이루려면 단순히 정책을 논하는 것만으로는 안 될 것이다. 복지를 필요로하는 계급, 계층과 집단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