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막스 베버 선집
막스 베버 지음, 박성수 옮김 / 문예출판사 / 199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막스 베버는 사회학을 사회적 행위에 대한 종합적인 과학으로 파악하였다. 따라서 베버가 보기에 뒤르켐의 저작들은 다소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고, 반면 실증주의자들은 사회를 자연과 같이 기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베버는 이 두 경향에 모두 반대하여 탐구자의 가치연관적 문제선택과 가치중립적 사회탐구방법을 강조하였다.

시장관계의 확산이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서 1892년에 출간된 동부 독일의 농업노동에 대한 연구에서 베버는, 엘베강 서부의 일고(日雇)노동자들이 점차 동부의 예속노동자들을 대체해 갈 것이며 그러한 대체 과정은 장원의 전반적인 구조를 변형시킬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일고노동자들은 예속노동자들과는 달리 부차적인 수입이 없으므로 일고노동자화는 예전보다 더욱 열악한 경제적 위치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속노동자들은 연례적인 계약에 대한 그들의 의무가 수반하는 종속적인 지위로부터 탈피하고자 애쓰는 경향이 있음을 베버는 지적한다. 예속노동자들이 그들의 안정을 일고노동자의 불확실한 생활과 바꾸고자 하는 경향에는 ‘독립’에 대한 추구가 나타나는데, 베버는 이것이 단순한 경제적 관계 속에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가부장적인 ‘개인적 종속관계’로부터 벗어나 개인적 ‘자유’를 찾고자 하는 데에서 나타난 결과이다. 따라서 자기 자신의 소규모 경지를 가진 노동자는 그의 ‘독립’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극심한 곤궁도, 아무리 무거운 고리대도 기꺼이 감내하려 한다. 이러한 농업노동자들의 행동을 ‘경제결정론’적 이론이 충분히 설명해 줄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다고 해서 농업노동자들의 행동을 이끄는 관념이 허공에서 저절로 생기는 것 또한 아니었다. 그러한 관념은 다시 중세적인 형태의 공동체 및 노동을 변형시켜 놓은 사회경제적 변동과 관련되어진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베버로 하여금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하 ‘PESC’)과 같은 저작들을 낳게 한 것이다.

PESC의 서두에서 베버는 설명을 위한 통계적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근대 유럽에 있어서 “기업가, 자본가, 고급의 숙련노동자 특히 기술적 · 상업적 훈련을 받은 근대기업의 요원들은 압도적으로 프로테스탄트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의 자본주의 정신과 종교개혁과의 상관성은 그다지 직접적인 것은 아니다. 사실상 가톨릭 교회의 일상생활에 대한 감독은 느슨한 것이었고,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하는 것은 가톨릭이 요구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한 행동의 규제를 받았다. 프로테스탄트는 휴식이나 도락에 대해서 단호하고 엄격한 태도를 취하였다. 따라서 만일 프로테스탄티즘과 경제적인 합리성간의 관계를 설명하고자 한다면 프로테스탄트 신앙의 특유한 성격을 살펴보아야 하고, 왜 하필 다른 종파도 아닌 프로테스탄티즘인가 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우선 후자와 관련해서 베버는 비교의 방법을 통해 프로테스탄티즘 이외의 종파 또는 제도는 ‘경제적 합리성’을 낳을 수 없었음을 실증적으로 밝혔다. 첫째, 가톨릭. 가톨릭에서는 신과 사도를 연결해 주는 사제가 존재하며, 특히 고해성사 제도는 신도들로 하여금 상실된 신의 은총을 매일 매일의 속죄를 통해 회복할 수 있게 하므로 일상생활의 지속적인 긴장과 자기 규제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그리고 가톨릭은 사회를 유기체적인 위계질서로 보았기 때문에, 개인은 이미 정해진 위치가 있고 개인으로서의 활동 또는 창조 재량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즉, 개인주의적인 영역보다는 집단적, 공동체적, 감성적 영역과 연대가 훨씬 강하다. 이런 특성들은 가톨릭이 자본주의 정신을 창출했을 가능성을 극소화한다. 둘째, 가톨릭 수도원제도. 수도원에서의 ‘노동’과 ‘기도’의 일치, 철저한 자기통제력 등 수도승 집단이 준수하던 종교적 계율들과 이에 준거하는 행동양식은 삶과 일에 대한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을 조장하는 성격이 것이었으므로, 가톨릭보다는 훨씬 더 ‘자본주의적’이었다. 그러나 수도원의 계율들은 단지 종교적 ‘대가’들만이 수행할 수 있는 고도의 완전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으며, 수도승들의 금욕주의는 어디까지나 ‘현세 외적 금욕주의’였기 때문에 수도원제도가 자본주의 정신을 창출했을 가능성은 작아진다. 셋째, 루터교. 루터의 기독교 개혁의 정신은 일단 자본주의 정신과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루터는 최초로 근대적 ‘직업’ 또는 ‘소명’ 이념, 즉 ‘소명적 직업관’을 제시하며, 이 직업관을 개개인의 세속적 삶의 윤리적 중심으로 승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명 개념은 베버에게 있어서 종교적 윤리와 세속적 자본주의 정신을 연결시키는 핵심적 고리이다. 그러나 루터의 소명 개념은 아직 중세의 유기체적 전체라는 사회이념에 얽매여 있었는데, 이 이념에 의하면 사회는 위계질서와 전통적 특권 및 의무에 바탕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세속적 직분의 평가절상, 도덕성의 궁극적 원천으로서의 개별적 양심의 강조 등에도 불구하고 루터교는 자본주의 정신의 발전에 적합한 종교적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없었다.

이제 전자와 관련하여 베버는 칼빈주의의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주된 교의를 파악해 내었다. 첫째, 우주가 창조된 것은 신의 영광을 드높이기 위한 것이며, 신의 목적에 관련되는 한에 있어서만 그것은 비로소 의미를 지닌다. “신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의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둘째, 전능하신 신의 의도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신이 그에게 밝히고자 하는 신성한 진리의 단편들밖에는 알 수가 없다. 셋째, 단지 소수의 인간만이 영원한 은총을 입도록 선택되어져 있다[예정설]. 이것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이며, 인간의 행위에 의해 달라질 수도 없다. 이러한 교의는 신자들에게 분명 ‘내부적 고립감’을 주었을 것이라고 베버는 말한다. 교회와 세례를 통한 구원의 가능성이 송두리째 없어졌다는 것이 루터교 및 가톨릭으로부터 칼빈교를 구분시켜 주는 가장 결정적인 차이였다고 베버는 본다. 위의 두 번째와 세 번째 교의 즉 선택받은 자와 저주받는 자간에 외형적인 차이가 없다는 칼빈의 교의는 즉각 교구들로부터 제기되는 압력을 받았다. 이에 대해 두 가지 서로 관련된 반응이 나타났다. 그것은, 각 개인은 자기 자신을 선택받은 사람으로 간주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는 것과 ‘열심히 세속적 활동을 하는 것’이야 말로 필요한 자기확신을 발전시키고 유지시켜 주는 확실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이제 자본주의 정신의 기원은 칼빈교의 종교윤리 속에서 찾을 수 있게 된다. 전통사회 혹은 그 이전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자본취득 형태들의 특징은 규범과는 무관하였으며 오히려 비도덕적이고 권장되지 못할 만한 성격의 것이었다. 그러나 칼빈교에 이르러 자본취득은 종교적 · 도덕적으로 뒷받침되게 되었다. 이것은 초기 자본주의 정신의 탄생에 관한 것이다. 분업이 발전하고 자본주의화가 진전됨에 따라 청교도에게는 신의 섭리에 대한 추종이었던 것이 현재의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점점 더 산업생산의 경제적 · 조직적 사정에 대한 기계적인 복종이 되어지고 있다. 베버는 근대 자본주의가 일단 광범위하게 수립되면, 청교도적 에토스ethos는 더 이상 근대 자본주의의 기능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즉, 승리에 빛나는 자본주의는, 그것이 기계적인 기초 위에 안주한 이래, 그같은 금욕의 정신의 지원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고 있다.

PESC는 칼빈주의 혹은 더 엄밀히 말해서 칼빈주의 신앙의 특정 요소들과 근대 자본주의적 활동의 경제윤리 간에는 일종의 선택적 친화력이 있었음을 시사해 주고 있는 것이다. PESC는, 근대 자본주의 특유의 성격인 경제생활의 합리화는 ‘비합리적인’ 가치개입과 관련되어진다는 점을 보여주려는 데 있다. 이는 인과관계 평가의 서두적인 작업일 뿐 그 자체로는 원인들을 충분히 추출해 낼 수 있는 작업이 되지 못한다. 그를 위해서는 두 가지 폭넓은 작업이 수행되어야 한다고 베버는 보았다. 즉 경제적 영역 이외의 여러 다른 영역(정치, 법, 과학, 예술 등)에 있어서의 합리성의 유래와 그 확산에 대한 분석이 우선 필요하며, 다음으로는 프로테스탄트 금욕주의 그 자체가 사회경제적 힘에 의해 어떻게 영향을 받은 것이었는가를 탐구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버는 PESC에서 분석된 자료들은, 예컨대 칼빈교 신앙에 포함된 관념들이 단순히 경제적 조건들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고 간주하는 기계적 경제결정론을 적절하게 종결지어 준다고 하는 심정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베버는 “우리는 필연적인 역사적 발전으로서의 종교개혁을 경제적 변동으로부터 연역해 낼 수 있다고 하는 견해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베버는 그가 거부하는 이러한 사적 유물론의 개념을 여하한 다른 이론으로 대체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실상 베버가 그의 방법론 논문들에서 보여주려 애썼던 것처럼 그러한 이론을 얻어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PESC에 나타난 이론을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Calvinism

금욕주의적 계시

계산된 행동,

경제적 합리성

부의 축적

재투자

Profit Seeking

Spirit of Capitalis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