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동쪽 작은 역사 4
전우용 지음, 이광익 그림 / 보림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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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봄, 아이들과 서울성곽길 1코스에서 4코스까지를 돈 적이 있다.

한 주에 한 코스씩 4코스를 돌며, 아이들은 스탬프 찍기에 열을 올리며 신나 했다.

아이들이 산길을 오르내리며 뛰는 것도 보기 좋았고 열심히 지도 들여다보며 길 찾기를 하는 모습도 꽤나 흐뭇했다.

그런데 성곽길 걷기가 내게 준 선물은 그런 엄마로서의 뿌듯함만이 아니었다. 서울에 산 지 25년이 넘지만 내게 서울은 항상 공부와 직장을 위해 꾸역꾸역 사람들 모여드는 숨찬 도시일 뿐이었다. 반면 채 20년도 살지 않고 떠나온 고향은 늘 따듯한 어떤 곳이었다.

그런데 성곽길을 걸으며 종로와 동대문, 남산의 과거를 읽고 내려다보니 아하~ 서울이, 경성이, 한양이 참으로 긴 이야기와 역사를 가지고 있는, 그 어떤 고향보다 유서 깊은 곳이었다. 내게 그런 생각을 하게 해준 성곽길이 너무 고마워서, 서울 시장님께 메일이라도 보낼까 생각하기까지 했다.

<서울의 동쪽>은 서울에 대한 그런 막연한 내 느낌에 분명한 이유를 쥐어주는 책이다. 지금 DDP라는 별로 익숙해지지 않는 이름을 달고 있는 곳이 전에는 동대문운동장이었음은 알았지만, 그 이전에는 서울운동장이라고 불렸고, 또 그 이전에는 경성운동장이었음은 몰랐다. 복싱선수 같은 단단한 체격과 포즈로 스포츠잡지 모델로 선 여운형의 모습은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배우개장으로부터 시작된 광장시장의 역사를 읽으면서는, 앞으로는 광장시장 가서 아이에게 빈대떡만 사줄 게 아니라 조선시대와 바로 닿아 있는 광장시장의 유래를 이야기해주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서울의 동쪽>이 반가웠던 또 한 가지 이유는, 이 책을 통해 전우용이라는 필자를 처음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니, 팬이 되었다고 고백해야 맞을 것이다.

땅에도 기록이 남습니다. 땅에 새겨진 기록은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또한 땅에 새겨진 기록은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든 것입니다. 아무리 힘이 센 사람도, 아무리 지위가 높은 사람도, 혼자서는 땅에 기록을 남기지 못합니다.....” 같은 문장은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으니 말이다. 특히 책을 닫는 맨 마지막 문장에서는 울컥, 감동이 밀려오기도 했다. “역사 앞에서는 큰일도 별일이 아니고 작은 일도 가볍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를 달래주는 가장 큰 위로의 말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이리 밑줄 그어가며 읽고, 읽어주고 싶은 이 책을 아이에게 내밀자 한 페이지를 좌악 읽어본 아이 왈, “으악~! 글씨도 너무 많고 너무 어려워~ 걍 엄마가 읽고 얘기해줘요~!!” 한다.

그래, 그러자. 오늘은 엄마가 읽고 얘기해 주마. 하지만 네가 고학년 되고 중학생 되면 그때는 너도 밑줄 치며 읽게 되었으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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