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개의 이야기
디노 부차티 지음, 김희정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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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에 이탈리아의 권위있는 문학상인 스트레가상을 수상한 소설집. 작가인 디노 부차티는 1907년생이다. 권위있는 문학상을 수상했지만 거의 60년전의 소설집인만큼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 편씩 읽어나갈때마다 2021년에 쓰였다고 해도 믿을만큼 세련된 작품들이 나타나 놀랄때가 많았다. 장르 또한 다양했는데, 작가의 풍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블랙코미디부터 마치 시처럼 서정적인 작품까지 섞여있어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이 지루하지 않았다. 아마 이것이 단편소설이 가진 매력이 아닐까. 그리고 디노 부차티는 그 매력을 한껏 뽐낸 작가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 책의 띠지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SF, 판타지, 부조리극, 스릴러, 블랙코미디…

독자와 평단을 사로잡은 부차티 소설의 최절정

이상하고 아름다운 60개의 회오리!


정말 이상하고 아름다운 60개의 회오리 속으로 독자를 빨아들인다. 짧은 소설이지만 여운이 길게 남아 각각의 이야기가 끝날때마다 조금씩 읽는 것을 멈추고 생각의 회오리에 빠지게 되기도 한다. 60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 만큼 내용을 요약하기는 어렵지만, 그 중에  3.7층/ 17.무용한 초대/ 23.아인슈타인의 약속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중에 가장 서정적이어서 시를 읽는 것 같았던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p. 215 어느 겨울밤 당신이 내게 오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유리창 뒤에서 둘이 꼭 붙어 어둡고 추운 거리의 고독을 바라봅니다. 그러면서 우리도 모르게 함께 살았던 동화 속 겨울을 떠올립니다. (중략) 어느 봄날 당신과 함께 걷고 싶습니다. 회색빛 하늘 아래, 거리에는 작년의 나뭇잎 몇 장이 아직도 바람에 나부끼는 변두리 지역을 함께 거닐고 싶습니다. 일요일이면 좋겠습니다. (중략) 어느 여름 당신과 함께 한적한 계곡에도 가고 싶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쉼없이 웃어대며 숲과 시골길과 버려진 집들에 깃든 비밀을 탐험하러 갑니다. (중략) 그리고 나는 - 계속 말하렵니다 - 하늘이 수정처럼 맑은 11월에 당신과 팔짱을 끼고 황혼이 깃든 도시의 대로를 걷고 싶습니다. 그 시간 그곳에는 삶의 환영들이 둥근 지붕 위를 날고 불안 가득한 거리의 구덩이로 내달리며 검은 군중을 스쳐지나갑니다. (중략)  하지만 당신은-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멀리, 까마득히 먼 곳에 있습니다. 당신은 내가 모르는 삶 속에 있고, 당신 옆에는 다른 남자들이 있습니다. 당신은 지난날 내게 그랬든 그들에게 미소 짓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나를 금방 잊었습니다. 아마 내 이름도 더는 기억하지 못하겠지요. 이미 나를 당신에게서 떠나와 무수한 그림자 사이로 희미해졌습니다. 하지만 난 당신 생각 뿐이고, 당신에게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좋습니다. 


  -17. 무용한 초대 中 -


*이 글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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