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눈, 동백 문학과지성 시인선 239
송찬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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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 그 한가지 매개물로 18편의 시를 쓰다니 그 끈덕짐이 놀라웠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동백을 처연한 슬픔이나 분노가 아닌 역동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누가 동백을 보고 사자나 붉은 갈기를 연상하겠는가. 그래서 시인을 언어의 연금술사라고 하는가보다. '동백의 등을 타고 오신 그대' '동물원 쇠창살을 찢고' 가 그것이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시는 만들어지기보다는 씌어져야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시 <산경가는 길>에서 마지막 행에 '모두 산경에 나오는 이야기란다' 라고 하는 귀절이 있다. 정말 중국 산해경에는 동백에 관한 그런 얘기들이 있는지 궁금했다. 만약 그렇다면 송찬호 시인은 시를 쓰는 것을 넘어서 만들 줄 아는 시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시집이 산경과 해경중 산경이라면 다음 작품은 해경이나 물에 관한 시가 나오지 않을가 짐작해보았다.

바로 이전 시집 <10년동안의 빈 의자>는 너무나 관념적이어서 몇 번이나 시집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얼음과 달의 이미지가 많았지만 뭔가 확연히 보이지 않아 답답했다. 그러고 보니 송찬호 시인은 동백과 산경 얼음과 달, 어떤 소재나 이미지로 오래 물고 늘어진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계속 변화하고 있는 모습으로 비추어졌다. 특히 이번 시집은 독자와의 거리를 좁혀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붉은 눈, 동백>으로 돌아가본다. 시<봄날>에서 이제 젊은 시절은 갔네/ 아직도 마비되지 않고 흐르는 건 저 냇물뿐이라네/라고 했는데 젊은 날이 갔으므로 부디 우리 더 가까워졌으면 좋겠다. 마비되지 않고 흐르면서도 우리 침 튀기면서 송찬호 시인의 시를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시를 보는 내 눈의 성장까지를 포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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