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류의 평화 만들기
프란스 드 발 지음, 김희정 옮김 / 새물결 / 200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기적 유전자”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어느새 현대사회의 고전이라는 소리까지 듣게 된 이 책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인간에겐 이기적 유전자가 존재하며, 인간은 이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기계에 불과하다. 또한 이타적인 행위는 까보면 결국 이기적인 행위이며, 인간의 선이란 위선에 지나지 않는다. 이 말을 보면 아담 스미스의 저 유명한 말이 떠오른다. “오늘 저녁으로 빵을 먹을 수 있는 건 농민, 도매상, 소매상, 판매자의 봉사정신(benevolence)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이기심 때문이다.” 경제학은 말한다. 주체들이여, 이기적으로 행동할 지어다. 그러면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가장 효율적인 결과가 나올지어다. 또한 멀쩡한 사람들에게 가상 간수와 가상 수감자의 역할을 맡겨봤더니 가상 간수는 정말로 잔인, 흉포해져서 가상 수감자들에게 신체적, 정신적 위해를 가했고, 가상 수감자는 무기력하게 그를 받아들일 뿐이었다는 필립 짐바르도의 “루시퍼 이펙트”나, 사람들이 고작 공부 좀 잘하라고 치명적인 전기충격을 줄 수도 있다는 저 악명높은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에의 복종”실험은 상황에 따라 개인이 얼마나 이기적으로 ‘악’, 혹은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의미심장하게 보여준다.

『영장류의 평화 만들기』는 이에 대해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이 책은 침팬지, 붉은 원숭이, 붉은 얼굴 원숭이, 보노보, 인간을 다룬다. 이 영장류들은 적어도 두 가지 면에선 분명히 공통점을 갖는데, 이들이 집단을 이루어 생활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특히 보노보나 침팬지는, 자의식을 갖고 서로 다른 개체들을 구분할 줄 안다. 즉, 함께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남과 ‘함께’ 사는 것이다. 책은 다른 개체와 함께 생활, 생존하는 능력, 즉 그들의 집단, 혹은 사회를 유지하는 능력에 대해 묘사한다. 예를 들자면 많다. 침팬지의 정치적 동맹, 대결을 통한 해결, 힘의 과시와 서열관계 확인을 통한 예방, 보노보의 섹스, 그루밍, 키스를 통한 갈등의 제거 혹은 완화, 공격하거나 문 다음 다가가 다친 상처를 살피는 행위(화해), 중재행위, 공동의 적, 희생양을 찾는 행위 등등. 그리고 진화의 연속선상에서 유달리 크게 성공한 우리 털 없는 원숭이들에게도 그러한 능력이 존재함을 강조한다. 폭력성과 이기심의 발로라고 설명할 수 있을 전쟁, 살인, 강간, 절도, 사기 등과 같은 이상행동을 할 뛰어난 능력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우리의 동물친적들처럼 그 반대행위를 할 능력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사회, 이 세계는 진작 붕괴해버렸을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강조하는 많은 이론 속에서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동물행동학의 대가인 저자는 인간에게는 증오와 사랑, 경쟁과 협력, 폭력과 평화의 양극단이 다 있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의 경쟁적인 측면을 사회적인 측면에 비해 지나치게 강조해 왔다고 주장한다. 사실 3일만 9시 뉴스를 시청하면 그러한 그들의 사상에 수긍이 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우리는 인간성의 황폐화 가능성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들을 접하며 살고 있다. 더욱이 요즘은 그 도가 점점 강해지면서, 어지간히 악랄한 사건이 아니라면 이슈조차 되지 않는 감마저도 있다. 성폭행, 납치, 살인, 전쟁 등의 뉴스를 보고서 비관론자가 되거나, 타고난 종자를 구분하여 열등인간은 저럴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자신은 그렇지 않음을 합리화 하지 않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인 듯하다.

이러한 사건들이 벌어지고, 우리가 그런 사건에 대해 알게 되는 것조차도 우리가 그쪽만을 부각하고 있기 때문일까? 우리와 동물친구들은 이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심지어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는 계산에 따라 화해하는 것일까? 어릴 적 또래 집단의 놀랄만한 권력중심적인 구조-성인이 되어서도 더욱 교묘한 형태로 계속해서 존재하는-를 생각해보면 인간성의 이러한 모습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더욱이 인간의 본성을 하나의 순수한 형태로 설명하는 것은 무엇보다 간결해서 더욱 수긍이 간다. 그렇지만 “이기적 유전자”라고 하는 순간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합리화, 정당화되는 느낌이다. 경제학의 발전이 오히려 사람을 경제학적으로 행동하게 만들고 그렇게만 이해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저자의 주장대로 우리에게는 그 정반대의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상대에게 폭력을 행사함에 날뛰는 붉은 심장과 고된 상황에 처한 타인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심장은 같은 것일까?

저자는 바로 그렇다고 주장한다. 다윈 이후 생물학은 공격적인 본능과 무자비한 투쟁만을 강조해왔으나, 실제로는 “공격적 행동과 함께 진화해온 적절한 대처법”이 존재하며, 우리와 영장류 친구들은 이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한다는 것이다. 직접 관찰한 수많은 사실들을 바탕으로, 인간 본성에 대해 안락의자에 앉아 두뇌 노동만을 통해 만든 것 같은 추상적인 기존의 논의들을 비판하기에 그의 주장은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저자는 인간과 영장류 사이의 연속성을 인정한다. 인간 아닌 네 종의 영장류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방식으로 “평화를 만들”고 있고, 가까운 친척인 인간의 행동도 비슷한 기원을 가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만물의 영장”, “창조의 정점”이라는 식으로 인간을 높이고, 여타 동물과 구분 지으려 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섬세하면서도 유머 있는 필치로 그렇지 않음을 풍부한 연구 자료를 재료삼아 제시한다. 당연하게 생각하던 기존의 관념을 깨는 새로운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책읽기는 즐겁다. 거기에 그 새로운 사실이 인간은 못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착하기’도 하다는 유쾌한 사실이기에 이 책은, 그리고 독자가 된 필자는 더욱 즐겁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