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크 다큐멘터리 - 다큐멘터리가 아닌 다큐멘터리
제인 로스코 & 크레이그 하이트 지음, 맹수진.목혜정 옮김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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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크 다큐멘터리 : 다큐멘터리가 아닌 다큐멘터리   

(원제 : Faking It: Mock-Documentary and the Subversion of Factuality)
저 : 제인 로스코, 크레이그 하이트 ㅣ 역 : 맹수진, 목혜정 ㅣ 출판사 : 커뮤니케이션북스 ㅣ 발행일 : 2010년 06월30일 

 

새로운 음모론의 등장?: 무너진 다큐멘터리에 대한 신화

바야흐로 다큐멘터리 홍수의 시대이다. 자연다큐멘터리부터 휴먼다큐, 시사 고발프로까지 감성과 이성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TV를 틀기만 하면 쏟아진다. 이는 다큐멘터리라는 범주는 생각하기에 따라 실제세계의 사건과 인물들을 이야기 구성의 틀로 사용하는 팩션(faction)에서부터 리얼리티TV 프로그램까지를 아우르는 폭넓은 개념이기 때문이다.오랜 세월, 다큐멘터리의 교육적, 공적인 기능은 다큐멘터리의 형식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한 믿음을 굳건하게 만드는 토대가 되었다. 두꺼운 개론서 대신 친숙한 목소리의 유명인사의 나레이션, 흥미로운 외국의 사례나 실험들을 통해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트렌드를 새롭고 편안하게 접할 수 있는 최근의 오락적 요소가 강화된 다큐멘터리는 에듀테인먼트의 대표적인 콘텐츠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처음 받아들고 생소한 개념과 부제는 흥미로웠다. 평소에 좋아하던 다큐멘터리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겠다는 순진한 생각으로 책장을 열었을 때, 우리가 지금까지 다큐멘터리에 대해 알고 있었던 모든 것이 한 번에 허물어졌다.

 




Mock(n.조롱, 비웃음, 모조품,가짜) : ‘모크 다큐멘터리‘는 무엇인가?

 

책은 이 낯선 개념을 정의하기 위해 우리에게 익숙한 사실담론으로서의 다큐멘터리를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다큐멘터리와 드라마를 사실과 허구라는 이항대립에 의존하는 기존의 시각은 다큐멘터리를 ‘사실에 대한 가장 정확한 기록’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저자들은 다큐멘터리가 ‘실제’ 세계에 대해 말할 때는 반드시 관점이 매개되므로, 재현된 것을 진실로서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이도록 치밀하게 구성된 다큐멘터리의 구성요소들을 지적한다. 다큐멘터리 특권화된 위상에 대한 도전들을 소개하며 관객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다큐멘터리가 현실을 기록하는 것이라고 보는 관점에서는 날것 상태의 자료가 자연적으로 떠오르고 따라서 의미도 저절로 나오는 것으로 본다. 반면 우리(저자들)의 관점에서 다큐멘터리란 삶의 부분을 주장이나 이야기로 변형시키는 창조적인 작업이다. 이 관점은 리얼리티 재현에서 다큐멘터리의 구성적 특징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 구성되는 것들로 유희하는 모크 다큐멘터리 같은 텍스트의 잠재적 전복성을 인정한다. (p11)

모크 다큐멘터리란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는 허구의 텍스트’를 의미한다. 모크 다큐멘터리는 사실과 허구사이의 공간을 점유하는 것으로서, 우리에게 익숙한 전형적인 다큐멘터리의 코드와 관습을 뒤집고 자신의 허구성을 스스로 폭로하는 다큐멘터리이다. 관찰적 다큐멘터리가 가진 과학성에의 의존, ‘실제’를 그대로 기록하는 카메라의 권력에 대한 문화적 믿음이 가진 모순을 지적한다. 모크 다큐멘터리는 이처럼 진실의 영역에 공고히 서있던 다큐멘터리의 이면을 전면에 부각하여 허구의 영역에 존재하는 영화와 진실을 대변하는 저널리즘과의 경계선을 모호하게 만든다.  1999년 영화 '블레어윗치 프로젝트'는 모크 다큐멘터리의 성공적인 케이스이다.  영화를 찍던 학생들이 사라지고 필름만 발견되었다는 이야기의 이 영화는 호러 모크다큐멘터리로서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은 첫 사례로 기억된다. 영화의 성공포인트는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의 사실성과 허구성을 헷갈리게 하여 호기심을 자극한 정교한 기획과 배급과정 덕분이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모크 다큐멘터리라는 생소한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니콜스의 다큐멘터리를 정의하는 세 가지 틀(제작자의 의도, 텍스트의 관습, 관객의 위치)을 통해, 우리가 흔히 접해온 ‘드라마 다큐멘터리’에 빗대어 ‘모크 다큐멘터리’의 차이점을 설명한다(p77 표 참조). 이에 따르면 사실과 허구의 연속체 속에 존재하는 양 자가 구분되는 지점은 다음과 같다. 영화 ‘쉰들러리스트’ 로 대표되는 드라마 다큐멘터리가 다큐멘터리와의 연관성을 환기하여 절대적인 진실을 강화한다면, 모크 다큐멘터리는 다큐멘터리의 미학을 ‘사용’하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다큐멘터리의 사실담론을 ‘조롱’한다는 점에서 대비된다. 즉, 모크 다큐멘터리는 드라마다큐처럼 역사적 재현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실성 담론과의 전복적인 관계에 다큐멘터리의 전형적인 코드나 관습(실제사건의 사진 및 뉴스자료의 사용, 자막과 연속편집 기술, 배경음악, 감정을 자제하는 연기법 등)을 차용한다는 것이다.


모크 다큐멘터리와 드라마 다큐멘터리를 구별하게 하는 것은 사실담론에 대한 모크 다큐멘터리의 잠재적인 비판적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모크 다큐멘터리멘터리가 ‘잠재적 성찰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잠재적’이라는 용어를 쓰는 이유는 관객이 이들 텍스트를 어떻게 해석할지 예측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중략) 결과적으로 그들은 ‘우리가 보는 것을 진짜 믿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P76)

 

 

 (영화 '쉰들러리스트' 중/ 이 영화가 사실과 허구를 뒤섞은 것은 많은 비평가들의 논쟁을 유발했다. 또 집단기억을 구성하는 데 기여하는 대중문화의 역할에 관한 열띤 논쟁을 이끌어냈다. /본문 p81 )

 

진화하는 모크 다큐멘터리의 범주:기꺼이 이 공모에 동참하시겠습니까?

 1~3장까지 변화된 다큐멘터리의 위상을 통해 다른 다큐멘터리와 모크 다큐멘터리의 차이점을 밝혔던 저자는 모크 다큐멘터리 내에서 서로를 구분하고 5장에서 모크 다큐멘터리의 계보를 설명하기 위해 4장에서 모크 다큐멘터리끼리의 분석틀을 제시한다. 이에 따라 모크 다큐멘터리의 세 가지 주요 ‘범주’로서 패러디, 비판, 해체를 제안하고 이를 통해 제작자의 의도(다큐멘터리의 코드와 관습의 사용 정도)와 관객에게 권유된 성찰성의 지속성을 검토한다(표 105 참조).

이에 따르면 현재까지 대부분의 모크 다큐멘터리들은 범주 1,2로 묶을 수 있으며, 모크 다큐멘터리에 공통적으로 내재된 다큐멘터리의 사실 담론에 대한 잠재적 전복성은 범주 3에서 뚜렷해진다. 전통적인 다큐멘터리형식에 대한 성찰보다는 호의적인 전유를 통해 대중문화의 특정한 양상을 패러디하여 관객들이 텍스트 안과 밖에서 자신의 위상을 코멘트하는데 참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범주1‘패러디’(대표적인 예: 허구밴드의 콘서트 리바이벌을 극화한 영화 ‘스파이널탭의 귀환’)와 다큐멘터리형식에 대한 애매모호한 전유를 통해 풍자와 사실담론에 대한 다양한 성찰을 꾀하는 범주2‘비판’(예: 미국의 정치인 후보자 선출과정에 대한 풍자물 영화 ‘밥 로버츠’)은 사실 현실을 패러디하고 풍자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고전적 다큐멘터리 미학에 대한 일관된 비평 자체가 목표인 범주3(해체)‘이 ’적대적‘으로 그 형식을 전유하는 것과는 질적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모크 다큐멘터리 범주 3 ’해체‘에서는 관객이 다큐멘터리의 비판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능력이 있다고 전제한다. 따라서 관객들이 이 형식에 대한 비판적인 논평에 기꺼이 참여할 수 있도록 다큐멘터리의 위상을 가지고 유희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을 단순히 속이는 ’가짜‘ 모크 다큐멘터리가 점점 흔해지는 상황에서 관객의 능동적 참여를 배제하는 모크 다큐멘터리의 일부 경향에 대해 비판한다.


다큐멘터리에 대한 모크 다큐멘터리의 잠재적 도전이 그저 ‘허구적인 것으로 수용되면서 의미가 약해지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략) 다큐멘터리에 대한 모크 다큐멘터리의 전복성은 관객이 그것을 단지 허구로 받아들이며 외면할 때 무효화될 수 있다. (pp.257-258)

저자는 각 범주에 따른 모크 다큐멘터리의 형식의 발전과정은 다큐멘터리가 가진 편파적, 재현적 성질을 분명히 제시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모크 다큐멘터리의 미래와 관련하여, 사실담론을 전복하는데 얼마나 기꺼이 공모할 수 있는가 하는 관객의 역할과 선택에 맡긴 것이다. 예시로서 제시된 영화 ’개를 문 사나이‘와 ’데이비드 홀츠먼의 일기‘같은 범주 3의 작품들이 미래의 모크 다큐멘터리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덧붙인다.

포기하기에는 아쉬운: 다큐멘터리의 재구성

이 책의 저자인 제인 로스와 크레이그 하이트는 각각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영화와 미디어를 연구하는 교수로서 TV프로그램의 신흥 하이브리드형 장르에 대해 공통된 관심을 가지고, 모크 다큐멘터리에 대한 책을 내게 되었다고 한다. 책의 역자중 한 분인 맹수진씨는 영화주간지 등에서 영화평론을 통해 익숙한 이름이어서 반가웠다. 원저를 보지는 못했지만, 접해보지 못한 영미권의 다큐멘터리의 사례와 역사를 보다 쉽게 전달하기 위해 역자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컸으리라 짐작이 간다. 실제로 책에서는 포레스트 검프부터 포가튼 실버까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작품과 잘 몰랐지만 다큐멘터리의 역사에서 이정표역할을 한 문제작에 이르기까지 범주별로 다양한 외국 영화와 다큐멘터리들이 사례로 제시된다. 다큐멘터리를  직접 보지 못한 작품들의 경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자세한 설명이 제시되어 있어서 꼭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영화 '포레스트검프' 중 게스트로 존 레논이 출연한 쇼에 포레스트가 등장하는 시퀀스에서 드러나는 모호성: 과거와 현재의 경계선을 지우고, 사회적 인물과 허구적 캐릭터의 경계를 지움으로써 이 시퀀스들은 다큐멘터리 이미지를 다루는 데 의미있는 모호함(양가성)을 드러낸다/본문p138-139)

다수의 작품에서 다큐멘터리 기법을 통해 영화에 당위적 설득력을 영리하게 부여한 자칭 '저널리스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초기작부터 최근작 '디스트릭트9'까지 꾸준히 다큐멘터리 기법을 활용해 온 '피터잭슨 감독 등 세계적 감독들이 다큐멘터리를 자신의 영화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처음에는 이 책을 두껍고 어렵다고 생각해서 한 줄, 한 줄 이해가 갈 때까지 곱씹느라 책이 영 진도가 나가지 않았고, 결국 두 달을 품고 있었다. 집중해서 읽어보니 생각처럼 어렵지 않다. 단지 전공자가 아니라면 다큐멘터리의 구성요소와 모크다큐멘터리의 범주가 씨줄과 날줄처럼 엮이는 큰 그림을 쉽게 그릴 수 없어서(나중에 보니 각 페이지에 표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사례로 제시된 영화들이 낯설어서 처음에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책의 서술이 점강법에 가까워서 처음에는 개념의 대략적인 틀을 설명하고 이를 보다 상세하게 풀어내는 구성이기 때문에 약간의 인내심을 준비한다면 놓치기 아까운 책이다. 미디어와 다큐멘터리를 연구하는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평소에 다큐멘터리와 영화, 저널리즘 등에서 나타나는 사실과 허구에 대한 미디어의 새로운 흐름을 깔끔하게 정리하여 호기심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책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다큐멘터리에 대한 형식과 사회적 함의에 대한 재조명과 연구가 함께 병행되어, 현재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TV와 영화 속의 다양한 다큐멘터리의 사례를 통해 읽을 수 있는 책도 곧 탄생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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