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란의 오를란도 1 아카넷 한국연구재단총서 학술명저번역 551
루도비코 아리오스토 지음, 김운찬 옮김 / 아카넷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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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보이아드로의 서사시 <사랑에 빠진 오를란도>가 미완성 상태로 남자 루도비코 아리오스토가 이어 완성한 작품. 현재 국내 완역판은 전체 다섯 권 중 일부 권이 절판된 데다 중고 서점이나 도서관에서도 거의 찾아볼 수 없어 구하기까지 꽤 애를 먹었던 책이다. 운 좋게도 소장하고 있던 곳을 찾아 읽을 수 있게 되어서 기뻤다.  


 <광란의 오를란도>는 그리스도교 진영과 이도교라 불리는 사라센 진영의 대립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벌어지는 기사들의 모험담이다. 이 중에서 사랑하는 여인 안젤리카를 쫒는 기사 오를란도의 여정과 더불어 사라센 기사 루지에로와 그리스도교 진영 기사 브라다만테 사이의 사랑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 전체 서사의 큰 줄기가 된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여행지에서 마주친 새로운 인물과 사건이 끊임없이 추가되고 화자가 따라가는 중심 인물은 종종 전환된다. 이렇게 수많은 사건들이 얽히며 방대한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이 와중에 자칫 소홀해질 수 있는 중심 이야기들도 잊히지 않고 충실히 진행되어 결말을 맞이했다. 


 이렇게 자유분방한 시점 처리를 하면 읽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는 읽기 힘들진 않았다. 각 에피소드가 흥미로웠고 잊힐 만 하면 다른 인물의 이야기를 언급하기 시작하는 작가의 완급 조절 때문인 듯 하다. 다만 초반에는 '사랑에 빠진 오를란도'의 상세한 내용을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에 바로 이어 시작하는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었으며, 방대한 이야기에 걸맞게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탓에 가끔은 각 인물의 이름과 배경이 헷갈렸다. (여담이지만 역자도 이런 이유 때문에 잠시 헷갈렸던 건지 5권에서 맥락상 브란디마르테의 이름이 쓰여야 할 자리에 브라다만테의 이름이 적힌 부분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런 초반의 진입 장벽만 극복하면 흥미로운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다. 


 <광란의 오를란도>에서 강인한 기사들의 모험은 세계를 배경으로 펼쳐지며 마법과 특별한 힘이 있는 장비들도 존재한다. 그런데 이런 초현실적인 설정 속에서도 등장인물들은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에 휘둘렸다. 이들은 강하고 용맹한 영웅이면서도 사랑이나 질투와 같은 감정에 사로잡혀 비이성적으로 행동하기도 한다. 심지어 안젤리카를 사랑하는 오를란도는 실의에 빠져 미쳐버리기도 했다. 이러한 인물들의 인간적인 감정은 그들의 초월적인 힘과 무훈에 대비되어 더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기사문학을 거의 처음 접하는 개인으로서 흥미 위주로 생각해보면 실력 있는 전사인 마르피사의 이야기와 여러 장비를 이용하여 위기를 넘기며 모험하는 아스톨포의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초심자로서 종종 헤매면서도 흥미롭게 읽었지만 결국 나는 기사문학에 문외한이라 배경지식을 잘 알았다면 더 잘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 아쉽다. 그래도 인명, 지명, <사랑에 빠진 오를란도>에서 언급된 내용 등에 역자의 주석이 자세히 달려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상업적인 성공을 목적으로 하는 번역 작품은 아닌 듯 하여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가능하다면 <사랑에 빠진 오를란도>의 완역이나 <광란의 오를란도>의 재판을 기다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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