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의 역사 - 왜 상식은 포퓰리즘을 낳았는가?
소피아 로젠펠드 지음, 정명진 옮김 / 부글북스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에 원인을 부여하고 각자가 경험하는 환경을 표상화하였으며, 편경으로 위장된 진리라는 사실을 감춘 채 모든 경험을 탐욕과 야망으로 일반화하여 상식이라고 알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그런 행위를 저지르는 소수의 이론가들은 상식 따위는 필요하지 않을 다수에게 이득을 줄 것이라는 유일한 경험법칙이라고 선동하면서 자기들끼리는 그것이 진정한 양식을 갖춘 현사(賢師)라고 서로 주장하며 투쟁을 하는 것. 그것을 정치라고 할 것이다.

때문에 캉디드의 주인공이 세상을 돌고 돌면서 배운 것이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협잡과 투기, 기만과 탐욕이 계획한 결과임을 알게 된 것은 당연하다고 할 것 같다. 캉디드가 경험한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독단적 편견을 위장한 자들이 주장하는 양식이었지만 그가 얻은 것은 보편적인 사람들의 공통의 감각, 상식이었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처럼 세상을 돌고 돌지 않아도 세상은 스스로를 기만하는 자들의 부류가 자신들의 탐욕을 위해 세상을 조작하고 있다는 것을 책상에 앉아서 알 수 있는 세상이며, 위장한 독재자들의 반대편에는 조작되는 결과에 대하여 낙관하도록 선동하는 그들의 편에선 사람들과, 조작되는 결과를 혁신시키고자 현상을 비관적으로 주장하며 각성을 요구하는 논자들로 구성되어있고, 그것이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였으며 역사가 아니었나 라고 말하고 싶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상식은 언제나 반동의 편이라는 것을 말이다. 말하자면 상식은 언제나 반대자의 편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곧 상식이란 것은 민주화의 물결을 지지할 수 있는 만큼이나 그 물결을 억누르는 데도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프랑스 혁명의 초기 몇 년 동안 이런 아이러니가 극명하게 나타났던 때도 달리 없었다. 프랑스 특히 그 나라의 최대의 도시 파리가 몇 세기 동안 내려오던 권력 구조의 해체를 향해 치닫던 그 때 말이다.

상식의 역사. 6; 05 혁명적인 이성을 공격하다. 01 대서양을 다시 건너다.

관점주의(觀點主義).

언제나 반대자의 편이라는 것은 세상을 상대적으로 나누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세상을 다원적인 입장으로 보는 것은 항상 소수이다라는 말과 같아 보인다. 그런데 다수가 그렇다는 것은 통상적으로 공통의 조건을 소수보다는 더 많이 가지고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이 상식적이라는 말과 통한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소수의 무리가 학문적으로 또는 직업적으로 전문화되어 있는 집단이라고 해서 다수의 의견을 비 양식적이라고 정의해버리는 것은 상식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모두에게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정의하는 것과 같아 보인다. 다수가 많다고 해서 그들의 의견이 통일될 리는 없을 터이고 그들 역시 어느 한 순간에 소수로 변환되는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을 테지만 관점이 바뀐다고 해서 상식이 양식으로 변환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양식적인 것이 경험적으로 다수에게 이득을 준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양심을 요구한다고 봐야 한다. 개인의, 소수의, 양심이 실행될 때 다수를 위한 행위가 분명하다면 양식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양식이라는 것이 경험에서 얻어진 것이라고 할 때 실행자가 엘리트주의이거나 소수에게 집중될 권력을 상기하고 있다면 그것은 탐욕이지 양식이라고 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자신들이 겪은 경험만이 다수를 위해 좋다고 단정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권력이 우선해야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착각이든 오만이든 자신이 사회의 엘리트라고 자만하는 사람들을 방관하지 않고 그들에게 관심을 베풀기 때문이 아닐까도 생각한다. 그들은 습성상 다수에게 자신을 알리려고 하고 있으며 그것을 위해 만들어진 양식과 편견으로 왜곡된 진리를 상식이라고 기만하고 있는 것이다.

 


"양식보다 더 급진적이면서도 더 보수적인 것은 없다. 양식이 급진적인 이유는 그것이 모든 남용들을 개혁하고 모든 잘못들을 포기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식이 보수적인 이유는 그것이 기본적으로 사회의 존속과 인민의 안녕과 문화의 발전에 속하는 모든 것들을 지켜나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파리 저널리스트 에밀 드 지라르댕(Emile de Girardin) 달리 말하면 양식은 좌와 우, 진보와 전통, 부와 가난이 서로 만나는 지점이다. 그런 용어들이 무의미해지는 지점인 것이다.
상식의 역사. 6장;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뉴욕까지 02 포풀리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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