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탄생 - 현상과 실재, 인식과 진리, 인간과 자연에 던지는 첫 질문과 첫 깨달음의 현장
콘스탄틴 J. 밤바카스 지음, 이재영 옮김 / 알마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한동안 궁금했던 것들.

왜 서양과 동양에 있어서 사상의 실현은 다른 양태로 나타났을까?

합리적이라고 하는 서양사상은 무엇 때문에 폭력적으로 타 민족 위에 지배하는 것을 종교적 배경으로 포장하여 야만을 인정하였을까?

동양에서는 왜 노장에서 공맹으로 우회하였을까?

뭐 이런 것들.

 

그리고 내 책상 위의 퍼즐그림에 있는 아테네학당 속의 사람들.

그림에 알려진 사람들.

가운데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낮술한잔 걸친 듯한 디오게네스. 상자 위에 지난밤 숙취로 인해 빙빙 도는 마리에 팔을 괴고 만물은 유전한다고 생각하는 헤라클레이토스, 그 뒤에 노숙하여 굳은 몸을 푸는 듯한 아낙사고라스와 파르메니데스, 커다란 책을 들고 열심히 외상 술값 장부를 정리하는 듯한 피타고라스, 그 모습을 커닝하는 데모크리스토스, 파르메니데스 위에서 옆 모습만으로도 무도 F1 포스를 발하는 소크라테스, 그의 말을 콧등으로 듣는 알렉산더 대왕, 그리고 우측 아래의 한 무리 속에 섞여있는 유클리드와 조로아스터, 프톨레마이오스, 그들 틈에 삐죽 얼굴을 내민 라파엘로, 그 외 등등~~

 

그리고 이 그림 속에 없는 것이 당연한 석가모니 (출생 BC 대략 563? ~ BC 483?) 노자(老子)(BC. 대략570? ~ BC. ? (이름은 이이(李耳, 아명은 담())이라 했고 초나라 출생이라 했는데 제자들에게 의하여 가공으로 만들어진 인물이라고 하는 이유는? ()()도 귓바퀴 없음 담()이라고 생김새의 구체적인 인상을 그리면서 그림은 귓바퀴가……) 공자, 맹자, 묵자, 퇴계, 율곡과 같은 동양의 사상가들...... 누가 우리 동양의 학자들도 모아서 한 화면에 그림으로라도 남기지. ~~.

 

그들은 지리적으로 지구의 반대편에 위치해 있었으면서도 거의 비슷한 세기에 살아가면서 거의 비슷한 사상을 만들어낸다. 아니 자연을 탐구하여 그 본말을 밝혀내고자 노력하며 각자의 학문체계를 발전시킨다. 그런데 언제부터 그들의 그 훌륭하면서도 비슷한 사상이 변질되어 달라졌을까?

아니 달라진 것처럼 보이게 되었으며 다양한 사상을 무시한 채 한가지로의 길을 들어서게 되었을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창시한 두 가지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체계들이 이후 2천년동안 유럽의 정신세계를 번갈아 가며 지배했고(12세기가지는 신 플라톤주의가 지배했고, 12세기부터 16세기까지는 아리스토텔레스 주의가 지배했다.) 과학적인 연구와 실험적인 측정은 전혀 허용하지 않았다. 피타고라스 학파가 추구했던 신비주의와 과학의 조화로운 종합은 해체되고 만다. 신 플라톤주의는 신비주의만 강조하면서 과학적 연구를 조롱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주의는 물리학을 신학의 영역에 포함시킴으로써 물리학과 수학 사이의 연관을 끊어버린다. 168P

David Bohm은 이렇게 단언한다. “동양과 서양이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 이유는 측정에 대한 그들의 태도가 달랐던데 있었다. 서양 사회가 주로(측정에 의존하는)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강조 했던 반면, 동양에서는(궁극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것을 대상으로 하는)종교와 철학을 중시했던 것이다. <전체와 그 안의 질서 P23>- 피타고라스Pythagoras (BC 582? ~ BC 497? 177P

보움의 의견대로 척도, 측정에 대한 태도가 달랐다고는 하지만 과연 그랬을까 에 대해서는 단언하기 어려울 것 같다. 표현의 방법에 있어서 은유가 어떻게 사용되었는가가 다를 뿐 아닐까?  

비록 시기가 틀렸을지는 몰라도 만약 그들이 어느 순간에 만났더라면 같은 생각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되었음에 반가워서 밤새 한잔 기울이지 않았을까?

 

이 책에 나온 철학자들의 말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동양학자들의 말을 비교해 보았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수를 전적으로 비물질적인 개념과도 연결시킨다. 1은 슬기로움과 본질을, 2는 사유를, 4는 정의(22=4, 자기자신을 두 번 곱한 수)

와 함께 테트락튀스Tetraktys로서는 자연전체를 의미하며, 5는 결혼을, 6은 육화(肉化), 7은 시간과 빛과 건강을, 8은 우정과 사랑을, 그리고 완전함의 수 10수의 모든 본질을 의미한다. 또한 그들은 수 3에 특출한 지위를 부여한다. “우주와 만물은 수 3에 의해 규정되어 있다. 끝과 중간과 시작은 이 만물의 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3은 윤리적 의미도 지니고 있다. “만물은 3이며 이 3보다 많지도, 적지도 않다. 모든 개별적인 우수함도 3가지로 요약된다. 지성과 힘과 행복이 그것이다. 161P

 

온 세계는 조화와 수라고 한다.” “ 1은 만물의 시초다.” 그러나 수 1은 수가 형성되는 원리이기도 하다.” 1은 수의 원리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형이상학

道生一 一生二二生三 三生萬物 萬物負陰而抱陽沖氣以爲和

도생일 일생이 이생삼 삼생만물 만물부음이포양충기이위화:

도가 <하나>를 낳고  <하나> <>을 낳고  <> <>을 낳고  <>이 만물을 낳는다

만물은 <>을 등에 업고 <>을 가슴에 안았다 <>가 서로 합하여 조화를 이룬다.

 

사람들이 지금으로부터 약 3~4천년전에 바라보는 자연은 지금과 달랐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사람들의 시선이 보는 관점이 지금과 달랐을 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종일 흐르는 강을 보고, 산의 나무들과 바위들과, 하늘의 구름과 별과, 바람과 온기와 한기를 느끼며 세상을 이루고 있는 불, , 공기, 흙과 같은 원소들이 분열하고 합하여 테트락튀스를 이룬다고 생각하고 그런 생각을 하는 반대편의 인간은 그것이 라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내고, 그 기를 분석해가며 道와 모든 것을 낳고 기르고, 物과 勢가 형상을 만들고 다진다는 생각을 하였다. 같은 시선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대상의 동기를 증명을 통하여 문자화하려 시도하고, 한쪽의 세상에서는 그 대상을 자연상태대로 인간과 동일화하려는 노력이 증명하려고 하지 않았음이 아닐까 한다.

 (道生之(도생지)德畜之(덕축지)物形之(물형지)勢成之(세성지)

`

또 다른 같은 느낌을 주는 Metaphor?

 

 

"그러므로 옛날이나 지금이나 언제나 탐구 대상이 되고 언제나 의문거리인 것, 즉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실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니......, 우리는 가장 많이, 가장 먼저 그리고 거의 전적으로, 그런 뜻으로 있는 것에 대해 그것이 무엇인지를 이론적으로 탐구해야 한다." -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형이상학

격물치지

致知(치지) 在格物(재격물)

物格而后知至(물격이후지지) 知至而後意誠(지지이후의성) 意誠而後心正(의성이후심정) 心正而後身修(심정이후신수) 身修而後家齊(신수이후가제) 家齊而國治(가제이후국치) 國治而後天下平(국치이후천하평) …… 此爲知本(차위지본) 此爲知之至也(차위지지지야)

앎에 이르게 됨은 사물을 구명함에 있다.

사물을 구명한 뒤에야 앎에 이르게 되고 앎에 이른 뒤에야 뜻이 정성이 되고 뜻이 정성이 된 뒤에야 마음이 바르게 되고 마음이 바르게 된 뒤에야 몸이 닦아지고, 몸이 닦아진 뒤에야 집안이 집안이 가지런해지고, 집안이 가지런해진 뒤에야 나라가 다스려지고, 나라가 다스려진 뒤에야 천하가 화평케 될 것이다. …… 이것을 근본을 앎이라 이르고 이것을 앎의 지극함이라 이르는 것이다.

 

이렇게 사물을 규명하여 본말(本末)을 알게 되는 사람 중에 자신이 알게 된 바를 글로 남기게 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 지는 알 수 없다. 세상의 모든 것의 근원을 아는 사람이라고 글을 사용할 수 있었는지는 모른다. 당시에 사용하는 단어의 수도 지금보다 적었을 테이고……

그리고 지식이나 지혜의 양을 측정할 수 있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에야 IQ, EQ 등으로 측정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신빙성이 있는 절대치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말할 수 없는 것이라고 침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 자신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거나 자신이 아는지 모르는지 확인하고 싶어서도 말을 하며, 사람들이 말하는 언어의 상징을 알려는 방법에 의하여도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하지 않는다고 왜곡이 전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해진 언어들과 글로 씌어진 단어들이 영혼의 감정들에 대한 상징들이라고 말한다. 그 후 그는 말해진 언어들과 글로 씌어진 단어들이 인습에 의해 가정되기 때문에 모든 인간 존재에 대해 동일하지는 않다고 한다. <움베르토 에코 기호학과 언어철학 50P>

 

 

문장은 하나의 형상일 때 비로서 무언가를 말할 수 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비트겐슈타인 221p 헤라클레이토스ράκλειτος

 

인간은 실제로 영원한 이 로고스Logos를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이는 로고스를 듣기 전에도 그러하고, 듣고 나서도 그러하다. 모든 일이 이 로고스를 따라 일어나지만, 인간들은 무지한자와 다를 바 없다. 로고스가 공통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그를 자신의 독자적인 통찰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238p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

 

知者不言(지자불언) 言者不知(언자불지) 塞其兌(새기태) 閉其門(폐기문) 挫其銳(좌기예) 解其分(해기분) 和其光(화기광) 同其塵(동기진) 是謂玄同(시위현동) 故不可得而親(고불가득이친) 不可得而疏(불가득이소) 不可得而利(불가득이리) 不可得而害(불가득이해) 不可得而貴(불가득이귀) 不可得而賤(불가득이천) 故爲天下貴(고위천하귀)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입을 다물고 문을 꽉 닫는다 날카로운 것을 무디게 하고 얽힌 것을 풀어주고 빛을 부드럽게 하고 티끌과 하나가 된다 이것이 <신비스런 하나됨>이다

그러므로 도를 터득한 사람은 가까이할 수만도 없고 멀리할 수만도 없다 이롭게 할 수도 없고 해롭게 할 수도 없다 귀하게 할 수도 없고 천하게 할 수도 없다 그러기에 세상이 이를 귀하게 여긴다

 

또 이런 은유도 있다.

엠페도클레스는 네 가지의 원소가 파르미네데스의 존재가 지닌 모든 성질을 그대로 갖는다고 했지만, 부동성만은 인정하지 않았다. 이 원소들은 생성되지 않았고, 소멸되지 않으며, 변화하지 않고, 등질적이며, 경고하다. 허공은 있을 수 없다. 허공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실은 공기다. 340P 엠페도클레스Empedocles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옮김>사리자여, 이 모든 법의 공한 모양은 생기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은 것이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은 것이며, 불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은 것이다. <반야심경>

 

色卽是空 空卽是色을 떠오르게도 한다.

기독교의 경전에도 이와 비슷한 말이 많이 있는 줄 안다.

움베르토의 에코의 은유에 대한 설명에서 단어가 주는 무의식적 인식(?)

그렇게 본다면 다르지 않은 글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환경과 지식과 정치적인 이유 등으로 나름의 해석을 하고 가치를 부여하며 경계를 두어 차이를 만들어 내 결국은 자신의 뜻이 우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는 바람에 간극은 더욱 벌어지고 진리는 시간에 의해서가 아닌 관점에 의해서 바뀐다. 과학은 철학에 바탕을 두고 증명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문명으로 답했다. 그것이 인류의 이동공간을 가깝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개인간, 민족간, 문명간의 거리는 더 멀리 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현대의 물리학적 세계관과 동양의 사상 체계 사이의 공통점을 발견해내려는 시도는 이미 여러 번 이루어진 바 있다. 그러나 양자 사이의 공통점은 피상적인 차원에 머무를 것이다. 이에 반해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상은 역사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현대 과학의 관점에 창조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267P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

 

 

 

데모크리토스 직후에 이미 철학은 우주에 비해 인간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오류를 범하기 시작한다. 맨 먼저 소피스트들과 함께 회의주의가 나타난다. 이들은 새로운 인식을 획득하고자 시도하는 대신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는가 하는 문제로 연구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와 함께 윤리학이 강조되기 시작한다. 플라톤은 사유가 스스로 창조해낸 세계를 옹호하면서 감각의 세계를 부정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학문의 근본 개념을 목적으로 삼고, 이목적에 대한 믿음을 강조한다. 후기 48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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