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교양 강의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가수로서 파격적인 무대 퍼포먼스와 두 번의 입대로 인한 부정적 이미지와는 달리 두툼하고 후덕하게 생겼다고 최근 들어서 평가 받는 한 가수가 부른 노래가, 아니 노래라기보다는 퍼포먼스가 한 달여 만에 세계곳곳에서 큰 이슈를 만들어 낼 정도로 이제 지구는 적어도 인터넷상에서만큼은 같은 공간에 산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 같다.

그런 세상을 살면서도 인터넷 Google의 지도가 보여주는 지구의 곳곳에 그려져 있는 국가의 경계를 나타내는 선! YouTube를 통하여 같은 공간이라는 착각의 세상과 지도상의 선 하나도 쉽게 넘어갈 수 없는 현실을 동시에 살고 있다.

그런 세상이 되면서 국가에서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정권을 행하는 사람들과 세상과 더 많은 장사를 하고 싶어하는 집단은 지구화를 외치며 지구는 하나라고 선동한다.

 

지구는 자기들이 그렇게 주장하지 않아도 태양계에서 수십억 년 전부터 하나였고, 지구의 대륙이 지금처럼 형성되어 살아 온지도 2억년이나 지났는데 그 땅에 선을 그은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저 때나 지금이나 생물은 살고 있었는데 그 후에 대지가 지금까지 미세하게 움직이는 탓에 땅의

주인이 누구이던 관심 없는 다른 생물을 인류가 정복할 수 있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아마 집단 내에서 폐쇄성이 강한 주술사였거나, 집단의 불안을 단속하려는 누군가가 집단을 대표하면서 내 종족과 다른 종족을 구분 지운 폭력적인 권력자이거나, 그런 집단들의 모임이 많아져서 상호간의 교류를 통한 생활이 이루어질 때 내 종족과 타민족을 구분 지어 교류를 잉여자산의 수단으로 삼고자 했던 자본가들 아니었을까?

<초기 바빌로니아와 중국 문명 때부터 인간의 일은 몇 사람의 손에 집중된, 조직화된 권력에 의존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중략- 국가들 사이의 경계는 불평등을 보존, 심화시키고 있으며, 사람들의 자유로운 이동을 방해하고 있다.- 국가가 소멸하고 국가의 인위적인 규제와 방해가 사라진다면, 가장 큰 불안정을 겪게 될 나라는 어디일까? 이런 현상이 빨리 일어나면 날수록, 미국이 가장 먼저 변화를 맞게 될 것이다.

(James O’Donnell-마르크스가 옳았다. /위험한 생각들)>

 그랬거나 어쨌거나 이제는 본의 아니게라도 역사적으로 접촉과 교류가 많아 한 종족이 된 것 같은 유럽처럼 세상이 하나의 체계로 이루어지도록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이처럼 시간이 흐르며 변화를 거듭한, 지구에 사는 종 전체가 만들어낸 지구사가 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 아득한 행성에 사는 인간은 비교적 최근까지도 여러 공동체에 따로 떨어져 살면서, 저마다의 예술과 기술, 종교와 정치체계, 재산 개념과 노동과 교환체계, 여러 세대를 부양하고 문화에 적응하도록 하는 제도를 키워왔다. 공동체는 저마다 역사가 있고 이 역사는 종종 외부 영향을 크게 받으면서도 내부에서 꾸준히 성장했다. (중략) 그러나 다 알다시피, 현재 구름 덮개 아래에서 끊임없이 접촉하며 사는 사람들도 과거에는 서로 모르던 사이였다. (중략) 지구의 여러 공동체가 수 세기 동안 서로 떨어져 상대를 모르고 살 때도 지구사는 존재할 수 있을까? (중략)

 또 과학의 발달로 인해 훗날 인간의 모습은 지금처럼 피부색으로 구분 짓게 되는 세상에서 변화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때의 인간의 모습은 심리학자 Victor Johnston이 자원자 수 천명의 도움을 받아 컴퓨터로 모의 진화과정을 거쳐  만든 형상’(인간 정신/Steven Pinker)처럼 하나의 비슷한 모습(모두가 매력적으로 생각하는)으로 될지도 모른단다

지난 몇 십 년처럼 계속해서 의학과 과학이 발달한다면 언젠가는 변화에 대하여 둔감해지는 시기(가령 지금처럼 성형이 지극히 당연한 인간 본연의 욕망이라는 식으로 미화한다면 언젠가는 그 성형의 범위가 신체의 전체부위로 늘어나듯이 과학의 발달과 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유전자를 수정하는 시기가 된다고 할 때) 가 도래할 것이고 그때 우생학의 위험성에 대하여도 둔감해져 Designer baby가 당연한 부모들의 희망사항이 될지도 모르는 그 결과로 인류의 모습은 SF영화에서 외계인을 볼 때 느끼는 동일해 보이는 모습으로 진화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기술적 진화로 인한 것이건 학술적 발전으로 인한 결과이건 인류가 스스로 제3의 인간을 만들어내는 시기가 온다면 그것으로써 인간의 지구화는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

인본주의를 생각하지 않는 극단적으로 진보된 이념을 가지고 있는 과학자나 의학자의 경우

그런다고 인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므로 달라질게 없다고 하며, 인간의 뇌에 칩을 심어 리모컨으로 움직이는(마치 영화 써로게이트(Surrogate/2009),’처럼 와이어드헤드(Wired Head)인간을 만드는 것이 과학적으로 가능하다고 한다. 미국에는 그런 신 인류(?)를 추종하는 단체(humanity+)도 있는 것으로 봐서는 다양성의 극단은 인간성의 종말을 예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어쩌면 그런 생각, 즉 인간의 모습이 뇌를 빼고는 모두 인공물인 사이보그로 바뀐다고 해서 자아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거나 인간이라는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근원은 그들의 종교에 의한 세계관 때문이 아닐까? ( 18:8~9, 12:24~25, 20:35~36). 문자로서가-“종교문서자체에는 의미가 없다는 사실이다. 문서는 그것을 추앙하고, 숭배하고, 그 권위를 인정하는 신자들이 의미를 부여할 뿐이다. 신자가 없다면 경전은 의미 없는 하찮은 문서일 뿐이다.”(종교문맹 극복하기/Ali S. Asani/하버드 교양강의)-아닌 다른 의미로서 내가 이해하는 편은 개념으로 말하는 것 같은데 형태로써 이해한다면 영혼이 들어있다는 데카르트의 송과선만 남아있다면 모두 인간으로 보아도 무관하다는 생각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어쨌거나 세상에는 그렇게 정치적 목적과 경제적 이유로 지구화를 외치는 사람들도 있고

정치적 욕망에 의하여 강제로 제국에 포함되었던 민족의 독립을 외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언젠가는 세상이 인터넷에서 벗어나 현실에서도 동일한 공간으로 살아가게 되는 현실이 오더라도, 인간이 살아가는 반경이 지구라는 행성을 벗어나는 경우가 오기 전까지는, 어느 장소에서건 일정한 범위에 속한 사람들끼리는 같은 관습과 인습 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지구사가 있다고 주장하려면 우리는 공동체라는 생각을 공유해야 할까? 아니면 지구에 사는 여러 민족의 개별 역사를 하나하나 연구하고 기록하는 것으로 충분할까? (중략) 가장 최근에는 지구화라 부르는 긴장된 경제, 문화, 사회 교류가 증명하듯, 국가 공동체 가운데 주변 국가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받지 않고 자국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나라는 한 곳도 없다. 우리 문화가 조만간 하나의 세계문화로 녹아 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소비와 일의 형태가 비슷해지더라도 다양성의 많은 요소는 계속 유지될게 분명하다.

 (지구화 시대의 지구사)

 그렇다면 지구화-Global’이라는 말은 특정 세력이 인류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과거 수만 년 전에 선을 그어서 자유로움을 강제한 것처럼 이제는 개인의 행동을 그들의 욕망에 의하여 움직여지도록 문화나 종교를 이용하여 선동하려는 의도는 아닐까?

어느 장소에 살고 있는 집단은 그들만의 전통이랄 수 있는 고유문화가 있을 텐데 그 전통은 좁아지는 인류의 생활로 인해 지구화라는 이름으로 자연적인 흐름이던 인위적인 개입으로서든 변화를 맞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할 때, 시간이 지나면 환경에 의하여 변화한다고 하여 전통이 아니라고 한다고 하여도 집단무의식심리에 의한 욕구의 표현을 통해 관습으로 나타나는 문화적 현상은 보존해야만 하는 것일까?

아니면 보존이 아니라 그냥 사라지든지 말든지 무관심 속에 놔둬야 하는 것일까?

내 생각에는 여러 현실적 상황변화에 의한 국제정치상황에 대처해야 하는 이유로도

우리의 민족문화는 보존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잊혀진, 또는 사라져가고 있는 문화를 살려내야 한다고 본다. 일본에 이은 중국의 경제대국화는 앞으로도 한참 지속될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 속에서 우리나라가 MIST수준에서 벗어나 동아시아에서 경제적으로 중국과 맞먹는 수준이 된다 하더라도 중국이 우리보다 위에 있는 수준이 지속된다면 그들의 소위동북공정은 지속발전 될 것이라고 생각되며 그것을 막으려면 자본이 아닌 문화로 지울 수 없는, 어느 한 문화에 속해질 수 없는 독자적 문화가 세계 속에서 인정 받아 전쟁이 나더라도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마치 세계 대전 속에서도 보존되어온 에펠 탑이나 콜로세움처럼 세계적 문화유산으로 보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미국이 언젠가처럼 선을 그어 일본으로 후퇴한다거나 중국이 돈으로 세계를 매수하여 경계선을 수정한다고 하여도 문화적 자산은 남을 것 아닐까?

2006년에 100 민족화상징을 발표했는데 그 상징들이 우리나라 전체를 대표하는 순수성 있는 민족의식만으로, 즉 정치색을 배제한 전통문화로, 대표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숫자적으로 100개를 맞추려는 강박심리에 의한 것 같은, 억지스러워 보이는 여러 상징들 중에서도 오일장, 두레, 강릉단오제, , 미륵, , 농악, 아리랑 등의 무형문화 가치가 더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형태가 있는 것은 빼앗길 수도 있으나 형태 없이 민족의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문화는 민족의 모습이, 현실이, 상황이 바뀐다고 하여도 수 천 년이 지나도록 보존되어 온 것처럼 남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문화는 시대가 한참 지났어도 어느 때 저절로 이어지는 그래서 누가 돌보지 않아도 저절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세태를 만드는 것을 과거에 집착하는 편협성을 가진 생각이라고, 미래를 생각하는 진취적인 생각이 아니라고 몰아세우는 것은 그 역시 서양의 종교적 전통주의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쓴 유흥준교수가 전통이란 한 나라의 고유문화가 아니라 주변국과의 교류에서 만들어진다고 하며 우리 것만을 고집하는 것은 옳은 보존방식이 아니라고 말한 것을 들었다. 그런데 그것은 문화의 물리적 형태에 더 많은 비중을 둔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어느 시대이든 그 문화가 보여지는 현실은 과거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할 때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정신은 주변국이나 타 공간과의 교류에서가 아니라 같은 공간에서의 정신이 만들어내는 것 아닐까?

 

가령 유럽 문화의 상징이 전쟁 통에도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부산스럽게 변하기는 했어도 그리스의 정신과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같은 정신문화를 공유해온 결과로 인한 것 아닐까 한다. 2001년도에 아프카니스탄의 탈레반 세력이 수천 년 동안 보존 되어온 바미안의 타종교문화를 파괴한 것은

그들이 수 차례의 중동전쟁으로 인해 자신들의 문화를 이교도로부터 보존하려면 접촉하지 말아야 한다는 피해의식이 깊어져 타 문명과 교류하지 않으려 했기에 폐쇄성이 깊어졌기 때문에 정신문화적 아이덴티티가 고립되어 그런 것이 아닐까?
그들 이슬람의 조상들은 지금의 그들과 달리 타 문화나 종교도 같은 개념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무슬림(복종하는 사람)이고, 이슬람(복종하는 개인적 행위)이라고 했다는데 그들이 그렇게 세계에서 스스로 고립되고자 한 것과 같은 결과가 된 것은 과학의 발달에 따른 세상의 교류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근본주의, 문자주의에 물들어 있어서 그랬던 것 아닐까 한다.

이를 테면 코란은 무함마드보다 먼저 계시를 받은 예언자들이 있었다고 단언하면서, 특히 유대인과 기독교인을 가리켜 책의 사람들이라 했다. -중략- 이 같은 관용은 나중에 스페인 아랍왕조, 북아프리카 파티마 왕조, 중동 오스만 재국의 정치에도 나타나, 이슬람이 아닌 다른 종교를 믿는 개인과 집단에게도 자치를 최대한 인정했다. 인도 무굴 제국의 악바르Akbar, 1542~1605 황제는 당시 종교우익에게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인도의 여러 종교 전통에 관용을 베풀면서, 그 곳 무슬림 전통대로 힌두교도와 불교도까지 책의 사람들범주에 포함시켰다.-중략- 비로서 평화중재자였던 당시 동료가 사용한 무슬림이란 말은 그때까지 자신이 알고 있던 단어와는 다른 뜻이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파티마(이슬람교)는 엘리자베스(기독교)를 하나의 공동된 신에 복종하는 동료로 생각했고, 그래서 기독교 신자인 그녀를 영적 동료로 한껏 포용한 것이다.

(하버드 교양강의 종교문맹 극복하기. 274~275)

 하지만 그들이 바미안의 이교도 상징물을 파괴했다고 해서 그 상징이 보유한 정신은 아직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처럼 무형의 문화를 보존하고 전통으로 계승시켜야 한다고 본다. 유흥준 교수의 답사기중에서 서양의 철학자의 한국 방문에 우리나라의 학자들이 이런저런 말을 하는 것을 두고 그 논쟁의 당사자인 하버마스(Jürgen Habermas, 1929~)가 했다는 말이 생각난다.

한국 사회에는 불교가 갖고 있는 도덕적 순수성과 유교가 지닌 공동체 지향적 윤리의 전통이 있습니다. 이것을 결합시킨다면 한국사회는 새로운 문화적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국 학자들은 왜 이런 것에 대해 좀더 깊이 있고 진지한 연구 작업을 진행하지 않고 (하버마스를 연구하고)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3. 66p)

우리 역사의 어느 부분에서 외래의 문명이 무조건 좋다는 식으로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는지는 대충 짐작이 가긴 하지만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웠다는 이유 외에 정신문화를 지켜야 하는 학자나 교육을 담당하는 자들의 선비문화’(민족문화 상징의 79번째)가 누군가 또는 어떤 강압적 세력에 의해서 지워져 버렸기 때문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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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로서 관직에 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나, 관직을 목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관직을 통해서 자신의 뜻을 펴고 신념을 실현하는 기회를 얻는 것이다. 관직에 나가면 상관을 받들어야 하고 더구나 가장 높은 권위인 임금을 섬겼다.그리고 아래로 백성을 돌보아야 하는 책임을 졌다.

선비는 임금과 신하라는 관계에서 무조건적인 복종과 충성을 바치지는 않았다. 선비는 임금과의 사이에서 의리로 관계를 맺기 때문에, 의리가 없으면 신하 노릇을 하지 않는 것이 도리였다. 바로 여기에 선비로서 관직에 나간 경우와 직업인으로서 나간 경우의 차이가 드러난다.

, 선비는 관직에 나가서도 그 직책의 성격과 임금의 역할에 대해서 언제나 성찰하며, 임금의 잘못이 있으면 간언하여 잘못을 바로 잡으려 하고, 바른 도리가 실현될 가능성이 없거나 맡은 바 직책이 도리에 합당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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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어떤 사람이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을 펴낸 적이 있고 그 책을 그 저자와 같은 심정을 이해한다는 생각으로 제목만 보고 사서 읽은 적이 있는데, 내용은 거대한 학자를 대하는 논리적인 자세가 좀 많이 부족했던 책이라고 기억한다. 그런데 그런 책이 그 시절에 출판되었다는 것은 사회가 그런 생각에 동조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 아닐까 한다.

그가 바란 것은 어차피 자본주의의 이념에 속해 있는 상황에서 어느 강대국의 힘에 의하여 국가의 존립을 기대야 한다면 그런 케케묵은 유교적 이념은 버려 버리고 강대국의 속국을 넘어 강대국으로의 편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와 같은 생각들은 하버마스가 모르겠다고 한 이유중의 하나라고 생각되는데 우리 민족의 전통이랄 수 있는 그 심성을 철학이라는 표상으로 논의하는 것은 그나마 긍정적으로 보고 그것을 심성에서 꺼내서 제자리를 찾아 주고자 논의하는 것은 종교적인 가면을 둘러쓴 제국주의자들과의 부정적 투쟁 심을 피하고자 해서 아닐까 한다. 마치 술자리에서 종교이야기와 정치, 군대이야기를 하면 싸움이 나기 때문에 피하려고 한다는 속설처럼 말이다.

 

한때 전통을 주장하면 그것은 서양을 반대한다는 의미로 생각해서 공산주의자라고 몰아세우는 어떤 시기를 너무 길게 지내왔고, 지금의 현실로도 그와 같은 표상이 존재하고 있기에 마음껏 논의하지 못해서 더 움츠러드는 우리의 전통문화 현실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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