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스님이 되고 싶다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199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비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세상은 넓은데 그 중에서 우리는 왜 이런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가라고.
선진국은 어떻게 마련되어 있고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노라고..
그들의 나라는 장밋빛 꿈으로 가득 차서 현실 생활은 이상과 다르지 않다고..
행복을 즐기며 꿈을 꾸는 듯 살아가는 그런 나라 같이..묘사하지는 않아도 항시 그런 투의 비교를 한다.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사회현상에 대하여도 선진국은 어쩌고를 말하며 도표나 학자들의 비평을 섞어가며 우리의 현실과 비교를 한다.
그런데 그들의 비평을 듣다 보면
그래서?” “그 다음에는?” 그런데?’ 라는 미적지근한 해답에 대한 의문이 일고는 한다.
그들의 비평에는 비판만 있고 근원적인 자기 성찰이 없는 것 같아 보인다.
비교의 대상은 배경이 충분한데 우리는 그 배경이 빈약하다는 생각이다.
비교의 대상으로 언급되는 나라들.
미국 영국 일본 등 여러모로 가진 것이 많은 나라들인데
그들이 가진 것 중에서 경제력과 군사력을 빼면 그들만이 가진 것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이 있을까?
사회적인 측면에서의 의식구조.
민주주의 구조에 의한 정치적 배려(?)
좌우간 그런 것들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무형의 구조 아닌가?
그럼 그런 것들은 우리에게도 있지 않나?...라고 생각해보면 위 비평가들에 대한 의문처럼 뭔가 찝찝한 것이 있다.
근대 세계적 격동의 역사에서 결코 소외되었다고 생각되지 않는 우리의 역사적 시간 흐름을 본다면 그들과 비교해서 짧은 시간을 가진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현실 구현 .. 뭐 그런 것 아닐까?
시작이 어디서부터 틀어 졌는지는 앞으로 얼마나 더 후대에서 가르쳐줄지 모르지만, 뭐 그런 개념을 도입한 시점이 그리 먼 시간이 아니므로 그 잘못은 우리 시대의 인물에게 있지 않을까?

그런 민주주의를 도입하면서 서양의 그들이 그 이념의 기초로 삼은 정신이 우리에게 뒷받침되어 있지 아니어서 였을가??
자유를 향한 인류의 욕망은 본능적인 것이다 라고 말 할 수는 있더라도 개인적인 것과 국가적인 욕구는 그 실천적인 면에서 다를 것이므로 시점에서의 지식인들이나 지도자들이 그 민주이념도입에서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적 의식을 잘 끼워 맞추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이념 실천은
순전히 내 생각에서는 과거의 수용이 아니라 과거의 배척에서 시작되었고
그래서 마치 탄탄한 기반을 찾아 더 무른 흑들을 걷어내지 못한 채로 기둥을 세워 지반침하가 일어난 건물처럼 지금 흔들리는 것 같다.

과거가 비록 잘못했다 하더라도 본의가 아니었을 테고, 그나마 외세를 수용하는 방법에서 선택이 조금 어긋났다 손 치더라도, 또 세계적인 흐름이 어쩔 수 없었다 치더라도 그런 과거를 모조리 무시해서는 안되었지 않았을까?

국가의 독립을 위해서 였다고는 하지만 멀리 남의 나라에서 하소연만하고 처분만 바라던 그가, 단지 그들과 말이 통한다고 해서 그들의 힘과 모의에 의하여 세워진 그가,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전쟁으로 부서진 나라를 다시 만드는 과정에서 돈이면 다이루어진다는 의식을 심어 준 사람. 과정과 목적 의식은 알 것 없고 오직 정복하면 다인 것이라고 심어준 두 사람. 그리고 일생의 자기 성취욕구 만 채운 것 같은 사람들. 그 후 희망만 가지고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는 것을 느끼게 해준 사람. 지금 그런 것 모두 다 이승에서의 일이니 자신과는 관계없고 오직 신에게 선택 받은 것이라 믿고 자신의 교만만을 내두르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저마다 스스로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구멍에 단추를 집어 넣는 바람에 이제는 어찌 해볼 도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그런데 그런 것은 , 그런 잘못이라면 잘못인 과거는 그렇다 쳐도 수 천년 동안 지속되어 온 우리의 정신은 어디로 가게 놓아둔 자들은 누구일까?
위정자일까?
나는 그들만의 탓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K형.

2,000년 동안 우리 민족의 정신을 지배하여 마침내 우리 민족의 성격을 형성시킨 불교의 정신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영혼임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마침내 벼락을 맞아 하느님으로부터 깨닫게 된 진리와 불(佛)의 사상은 결국 너와 나, 둘이 아닌 하나의 진리임을 저는 자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카톨릭적 불교주의자"이기를 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해동의 우리 나라에는 부처로부터 흘러 내려온 불의 등불이 활화산이 되어 2,000년동안 아직도 활활 타오르고 있음을 느꼈으며, 그것을  깨달았을 때 저는 진심으로 제가 이 나라에 태어난 사실에 대해서 깊은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 본문 32쪽 중에서

 
   


 
우리 모두의 스승은 어디로 갔을까?
아니면 언제 변질이 된 것일까?
비단 나만이 갖고 있는 편협한 시각일지는 모르나.. 
꼭 그렇지 많은 아닐 것이라는 , 약간의 자만도 있다.
우리는 지금 인문이 사라진..
철학이 없는..
집집마다 한 구석에 자리하였던 삼신할미가 사라지고 근본 없는 선무당만이 판을 뛰는 형국 이랄까??
스노비즘이 판치는???    
누가 뭐라고 돌을 던질 것인가?
개발이 우선인 시대에 ..전쟁으로 허물어진 집과 헤어진 가족.
그런 아픔을 잊을 수 있는 땀을 필요로 하는 개발시대.
금전적인 풍요가 지식의 풍요보다 우선시 되어 왔던 시대.
누구나 그런 사회적 지위를 갖기 위해 온 재산을 털어 서울로 서울로 올라오던 시대.

국문만 깨치면 되던 시대에서 대학을 나와야 사람 구실한다고 변한..
그래서 전문학교를 모두 대학으로 간판을 바꿔 버린 

그렇게 만들어버린 지금 이전의 정책 입안자들.
그들 스스로가 지금의 이런 현상을 예견치 못한 책임이 있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리빠똥 사장"이라는 70년대에 연재되던 신문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과 같은 인간상과
"똠방 각하"가 숭배하는 완장을 앞서가는 세대로 인정해주던 틀어진 시대.

  [[ 리빠똥 사장 ]]   김 용성 저
   1974년 작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리빠똥 장군'은 판금조치 당함.

   << 리빠똥이란, 오직 잇속과 시류를 따라 똥파리처럼 날아다니는 인간군상을 가리키는 작가 김용성이 만들어낸 조어다  >>

 

 

 

 

 

그렇게 70년대 군부시절부터 이어져 오는 문화는 아직까지 지속되어 오고 있는지,

아니 요즘은 그런 문화를 30여년에 걸쳐 변색되고, 그 변색된 칼라에 온통 분탕 질을 해댄 문화가 무수히 많은 신 개념 '리빠똥'들을 만들어 내었는데 , 최근에는 사라졌을걸 아마?? 도...

 

그렇게 전 시대의 사람들이 만들어 낸 희생자들이 요즈음의 아이들 아닐까?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머리모양을 하고 같은 가방을 메고 다니던 아이들이 낳은

아이들은 개성이라는 사회 속에서 살지만
그들의 부모가 그런 개성에 낯 설어 하는 바람에 모두 같은 모습을 하도록 무의식속에서 요구당하는 것 아닌가 말이지.. 최근 신문에 'K-POP' 이라는 문화가 유럽에서 환영받았다고( 이런 표현은 순전히 우물안 개구리식의 표현이라고 생각하지만,,,..) 뉴스에도 나오곤 하는데.. 그들의 신문은 아이들이 획일적으로 만들어진 상품이랐다지?

그렇게 어쩜 아무 잘못도 없는 아이들이 그저 부모가 가길 원해서 갔고,
달리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은 다르다고
줄기차게 가르쳐온 자들의 욕심에 의해서 움직였을 뿐인데
이제 와서 " 누구나 다 가는 대학에 굳이 왜 가려 하느냐? "고??
저들이 만들어 놓은 수렁에 저들이 밀어서 빠졌을 뿐인데
이제 와서 너들이 알아서 나오라네..
그래 놓고는 대학의 교육의 질이 어떻느니.. 
돈이 비싸니 ...
대학 나와도 갈 곳 없다느니.. 

앵무새 말 배우는 것 같은 작태만 보이며,
좀 배웠다는 자들은 남의 나라와 비교만 하는...... 
대학을 가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책임과 의무는 누구에게 있나?
개성이 존중받고 창의력이 우대 받는 문화는 누구 만드나?
자본주의 생성 동기와 배경 .
봉건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자연스러운 변화과정의 생략.
부와 빈곤의 격차를 좁히고자 하는 노력의 이유.
분배. 사적 이익과 공동의 이익.
기타 등등.

이런 여러가지 이유와 목적.. 이전에 선행되어야 하는 조건이
잠재적 정신의 동일화 아닐까?
획일적이라기보다는 무리에서 각자 존중받는 개인 ..
그런 것이 선행되면
학벌이나 직업의 가치등이 인간 개인에 우선하지 않는다는 평등함 ...
뭐 이런게 자연히 이루어지는 사회 문화.
수천년간 이어져 온 우리의 정신.. 그런게 없지 않나 이거지.
지금 보면 대립과 분열. 상대적인 개념만이 있는 듯하다 이거지.
1등아니면 모두 꼴등.
부자아니면 모두 거지.
"도"아니면 "모"  같이 말이지.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을 모두가 공히 가질 수 있는 그런 정신.
그것은 무엇일까?

최인호님의 글에 있는 그것?
문화적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 종교적 분열 때문?
긍정적인 면도 있겠지만 부정적인 색깔이 더 돋보인다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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