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이었어요.

우리는 처음에 그 말을 믿지 않았어요. 남편이랑 나는 나치 일당은 무슨 일이건 저지를 자들이라고 늘 말해왔는데도 말이에요. 그런데도 우리는 그 얘기만큼은 믿지 않았어요. 군사적으로 볼 때 불필요한 데다 부적절한 일이었으니까요. 남편은 전직 군사史학자예요. 그래서 그런 문제에 대한 이해력이 좋아요. 남편은 그런 말에 넘어가지 말라고, 그런 이야기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했어요. 그 인간들이 그 정도까지 막갈 수는 없다고요! 그러다 반년쯤 후에 우리는 결국 그 얘기를 믿게 됐어요. 증거가 있었으니까요. 충격이 정말로 컸어요. 우리는 그 사건 전에는 “그래, 사람에게는 누구나 적敵이 있게 마련이지” 하고 말했어요. 그건 전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사람이 적을 가져서는 안 되는 이유가 뭔가요? 그런데 이건 달랐어요. 정말이지 거대한 심연이 열린 것만 같았어요. 우리는 어느 시점이 되면 정치적으로 만사에 대한 보상책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다른 만사에 대한 보상책도 그럭저럭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이 사건의 경우는 아니었어요. 이건 절대로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에요. 단순히 희생자의 규모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에요. 그런 짓을 자행한 방법, 시신 훼손 등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그와 관련해서 자세히 언급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이건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에요. 거기서 우리가 용납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어요.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그걸 용납할 수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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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페인트 창비청소년문학 89
이희영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평점 :
판매중지


"과학 시간에 마찰에 대해 배운 적이 있어요. 마찰은 서로 접촉하는 물질들 사이에 작용하는 힘인데, 언제나 운동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만 생겨난대요."
"미안, 나 그쪽은 약해."
하나가 항복하듯 두 손을 들었다.
"사람의 마음과 마음 사이에도 분명 마찰이 있을 거예요."
너무 가까우면 부딪치는 가족처럼 말이다.
"마찰의 원리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가급적 적게 부딪치겠지?"
"이론과 현실은 엄연히 다를 텐데요?"
나와 하나가 동시에 웃었다. 바람이 불어와 우리 둘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하나의 미소는 편안해 보였고, 자신의 글을 쓰려고 마음먹은 삶 또한 당당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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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30 1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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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가끔 나는 우리 사회가 동성애적인 움들을 위한 거대한 운동장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서로 장난치고 시합하고 싸우고, 서로시로 존경하고, 시로를 키워주는 운동장 말이에요. 반면 맨움은집 안에 갇혀 지내거나, 가장 더러운 직업을 떠맡거나, 팔루리아로 보내지죠. 움들이 아름다운 요트와 움 전용 클럽과 회사에서,
스포츠 경기장에서 그들의 신성한 자매애를 추구하고 그것에 집착하는 동안에 말이에요. 그래서 신체적으로 동성애자인 것과정신적으로만 동성에자인 것 사이에는 별 차이가 없다구요. 왜냐하면 내게는 움들이 서로 사랑하고 맨움을 경멸하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모두 동성애로 보이기 때문이에요. 그들은 자신의몸을 사랑하고 가꾸고 움이란 성(性)의 명예와 미덕을 찬미하면서도 맨움이 조금이라도 동성애자 티를 내면 즉시 우리를 적대시하고 변태라고 부르죠.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이 아주당연하게 여기는 그런 모든 즐거움, 그러니까 원하는 곳에 갈 수있고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자유를 아주 조금이나마 맛보겠다는 것뿐인데도요. 우리가 서로에게 최소한의 호감을 보이거나조금이라도 함께 시간을 보내면 마지 우리 스스로 즐기는 것이그들의 게임을 망치는 것처럼 곧장 우리를 비난하죠. 그러니까그들은 기대한 움 동성애를 그들 사이에서 즐기면서도 ‘우리‘는백 피센트 이성애자로 남아 있길 요구하는 거예요. 맨움들 간에는 서로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어야 할 뿐만 아니라, 수천 개의아늑하고 작은 집 안으로 뿔뿔이 흩어져 있어야 하죠. 그리고 그곳에서 감자를 요리하면서 그들이 집에 언제 돌아올까 생각하는것을 행복해하고, 혹시 그들이 집에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몸이 굳어버리죠. 감자를 요리할 수 있는 아늑하고 작은가정을 갖기 전까지, 우리는 그 감자들을 요리할 수 있는 그런곳‘을 갖지 못하면 어쩌나 두려움에 떨고, 그러다 운 좋게도 가정을 갖게 되면 동성애자가 아닌 척 위장하는 수천 가지의 자잘한 알리바이를 마련하고 포장해야만 하겠죠. 이따금, 탄생 궁전과 월경 축제와 스포츠 경기에서 그들의 영광을 함께 나누기 위해, 그들과 함께하는 외출이 허용되죠. 그것이 나를 역겹게 만들어요. 그것이 바로 사회가 동성애자인 움을 경멸과 혐오로 대하는 까닭이죠. 왜냐하면 그들은 모든 움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드러냈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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