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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주테이의 박쥐들 - 국회에 기생하는 변절자와 기회주의자
이동형 지음 / 왕의서재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서울 여의도에는 ‘윤중로’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봄이 되면 이곳은 벚꽃이 활짝 펴 축제를 연다. ‘윤중’이라는 학교 이름도 있고 얼마 전에는 국회 주관으로 외국 손님을 맞이하는 한옥을 지으면서 ‘윤중재’라는 이름을 붙이려다가 ‘사랑재’로 고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윤중’이라는 단어는 우리말에도 한자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윤중(輪中)이라는 단어는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바로 ‘わ-じゅう(輪中, 와주)’라고 하는 일본어가 그 기원이라고 한다. 가마쿠라 막부 말기, 비만 오면 물이 넘치는 저지대에 거주하는 농민들을 위해 인공 제방을 쌓았고, 이를 와주테이(輪中堤)라고 불렀던 것이다. 현재는 우리말로 순화해 권장하고 있지만 아직도 일본어인 ‘윤중’을 그대로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와주테이의 박쥐들>이라는 책을 처음 봤을 때 굳이 이 일본어인 ‘와주테이’를 타이틀로 삼았다는 것이 의아했다. 그러나 이 책의 머리말을 읽으며 그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윤중제’가 있는 여의도는 우리나라의 정치를 상징하는 곳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여의도의 대표적인 변절자와 기회주의자들을 ‘와주테이의 박쥐들’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정치판 이면의 어두운 곳에 숨어 흡혈을 하고 있는 ‘와주테이의 박쥐들’은 ‘윤중’이라는 말과 함께 한시라도 빨리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와주테이의 박쥐들’이라는 타이틀과 표지를 보면 마치 한 편의 스릴 있는 추리 소설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추리 소설보다 더 스릴 있는 ‘정치’ 도서다. 현재 권력자라고 할 수 있는 현역 정치인들을 정조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김문수, 이재오, 심재철 등 과거 민주화 투사 혹은 정의로운 사람으로 생각되다가 권력과 돈을 쫒아 변절한 자, 또는 홍준표, 김진표 등 대표적인 기회주의자 수식어를 듣고 있는 사람들을 총망라해 비평한다. 단순히 저자의 주장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들이 과거 어떤 사상과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부터 ‘변절’이라고 부르는 변화를 보여준 사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까지 방대한 자료와 꼼꼼한 분석으로 알기 쉽게 말하고 있다.
지금이야 ‘119 관등성명’ 사건으로 권위주의와 정치인 희화화의 대명사가 된 김문수도 과거 젊은 시절에는 공장에 노동자로 입사해 사회주의 혁명을 부르짖던 극좌파였다. 그런 그가 1996년 노동자를 거리로 내모는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거수기 역할을 하면서 본격적인 변절을 알린다. 이제 그는 노동운동을 하던 시기를 “너무 어려 뭐가 뭔지 잘 몰랐던” 시절이라고 말한다. 이 일련의 행적을 이 책에서는 수많은 인터뷰와 기고글 등을 통해 낱낱이 분석하고 비평한다.
이렇게만 들으면 젊은 사람들이 읽기에는 재미없는 정치서적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동형 저자의 전작 <영원한 라이벌 김대중 VS 김영삼>처럼 직설적이고 통쾌한 문체로 쓰여 있어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온라인 커뮤니티 ‘도시탈출’에서 오랜 시간 인기리에 연재를 해 온 저자답게 친숙한 문체와 신랄한 비평에 가슴 한구석이 시원해지기까지 한다.
재밌는 것은 이 책에서 저자가 언급했던 예언들이 맞아떨어져 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 3부 중 ‘전여옥에게 바란다’ 편에서 저자는 전여옥이 이번 새누리당 공천장을 손에 넣지 못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리고 그는 절대 그냥 물러나지 않을 것이며, 어떻게 해서든 새로운 줄을 찾아내서 그 대열에 합류하거나 다른 말로 갈아타든가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현재 전여옥은 실제로 이 말대로 새누리당을 탈당해 다른 말에 올라탔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렇게 저자의 예언 아닌 예언들을 실제와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다.
이제 곧 봄이다. 4월이 되면 올해도 여의도에서는 흐드러진 벚꽃과 함께 축제가 열릴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여의도에서 ‘와주테이의 박쥐들’을 보고 싶지 않다. ‘모든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는 말이 있다. 다가오는 총선, 우리 국민들이 제대로 알고 제대로 된 정치인을 국회로 보내야만 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와주테이의 박쥐들>은 다가오는 총선에 대비해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용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