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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고화질] [라르고] 저의 아빠가 되어주세요
오가와 치세 지음 / ㈜조은세상 / 2021년 2월
평점 :
안경, 중년, 유사가족 좋아! 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다가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혈연이 아닌 가족을 '유사'가족이라고 칭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동의하지 않지만 일단 장르 안에서 그렇게 통칭하므로...)
유사가족이 좋은 이유가 뭘까. 진짜 가족에게는 이미 상처받고 상처줘서 울퉁불퉁한 마음을, 유사가족과는 깨끗하게 다시 시작할 수 있어서? 아무런 관계 없는 남이라도 서로를 아끼는 마음만은 혈연보다도 진하다는 걸 느끼고 싶어서? 진짜 가족에겐 못해주고 못받았던 것을 할 수 있어서? 한번도 가족이 없었던 사람들이 모여서라도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서?
어떤 소망을 비추고 있든, 가족이라는 타이틀을 얻을만한 관계는 "누군가를 아주아주 특별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할 것이다. 다른 수많은 사람들보다 특정한 당신을 특별히 여기는, 사랑하는 마음. 작가님은 그 마음을 그리고 싶었던 게 아닐까. 부성애로도, 동성애로도 정의되기 이전의 그 마음을.
혈연가족에게 부채를 느끼는 두 사람이 만나 새로운 가족이 되기로 계약한다. 하루키가 하이다와 '이상적인 부자관계'를 연출하며 서로 즐길 때는 나도 마냥 흐뭇하게만 봤다. 하이다에게 응석을 부리고, 어릴적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며 잔뜩 들떠있는 하루키가 귀여운만큼이나, 하이다도 하루키에게 애정을 베풀며 들뜬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 메인 주인공 둘 다 귀한 안경캐야! 신난 아저씨 귀여워!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나까지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저렇게 상냥한 사람이 있다면 참 좋겠다, 그런 감상을 느꼈다.
이상적이고 흐뭇해 보이는 두 사람의 관계는 겉보기로는 부자관계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연인에게 부모의 역할도 바라는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했다. 현실에도 자주 보이는 경우다. 정도가 다를 뿐 모든 연인관계에 어느 정도는 그런 사랑을 요구할 것이다. 연인이든 부모든 어쨌든 사랑이라는 것은 상대를 포용하고 지지하는 속성이 있으니까. '내 불평을 받아줘, 무조건 나를 긍정해줘, 내가 하고싶은 걸 하게 해줘,' 하루키가 바라던 것은 그런 것이었다. 하루키가 하이다와 두 사람만의 시간을 방해받아 화내는 모습은 더욱 연인에 대한 독점욕과 가까워진다.
하루키는 엄마의 사랑은 받았지만 아빠의 사랑은 늘 고팠다. 아이는 사랑을 받아도 받아도 늘 모자라기만 한 서글픈 위치에 있었다. 가족과 멀어지게 된 뒤에는, 사랑을 받아본 기억이 있기에 그것이 상실된 것이 더 슬프고, 내가 없어도 행복할 가족이 두렵고 원망스럽고, 다 내 탓인것만 같았다. 가족과 관계를 되찾고 싶지만 부모와 마주할 용기는 없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도망쳐 버리고, 듣지도 묻지도 말하지도 않는 방어적인 태도를 보인다. '부모의 인정 따위가 뭐가 중요하냐, 나는 내 인생을 살면 되지,' 라고 결국 끊어내지는 못하는 미련이 있다. 그래서 '이제야 과거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졌다, 진짜 이상의 부자지간이 될 수 있을 거다'라고 생각하던 바로 그 밤에 친부를 다시 떠올린다.
한편 하이다는 친자식에게 못해줬을 일들을 하루키에게 하며 치유된다. 아빠가 되어달라는 다소 황당했을 하루키의 요청을 듣고도 다시 하루키를 찾아간 이유는, 위태로워 보이는 청년에게 '의지할 수 있는 아빠'가 되어보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불평을 받아줄게, 어리광을 받아줄게, 위로해줄게, 무슨 말을 하든 다 귀담아 들어줄게,' 하지만 진짜 부모의 일은 그것보다 더 힘들고 악역을 맡아야 할 때도 있다. 그래도 내가 충분히 베풀지 못했던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 보고 싶다는 마음일테다.
사랑을 받고 싶은 사람과 사랑을 주고 싶은 사람이 만나면 이 사랑은 어떤 사랑으로 결론이 날까. 가장 깨지지 않는 관계- 친구나 가족, 이제야 손에 넣은 이상적인 아버지를 가장하지만 이대로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까? 하루키는 하이다를 그냥 가족으로만 여길 수는 없을텐데. 사랑으로 변하지 말기를 기도하지만 이미 변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끝나기 때문에. 사랑의 단맛만을 즐기고자 하는 마음이 과연 궁극적으로는 행복해지는 길일까 의문에 빠지면서도,
잠시라도 그런 시간을 통해 서로 치유된다면 나쁜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그렇게 두 사람이 치유되는 시간이라면, 그 끝이 어떤 형태이든 의미없는 시간은 아니지 않을까. 결국 두 사람이 서로를 도피처로 삼아 행복을 이뤄내든, 마침내 두 사람이 자신의 진짜 가족과 마주할 용기를 얻을만큼 성장하든.
"세상에는 여러 형태의 사랑이 있지. 그중에서 부모 자식 사이의 사랑만이 아무런 보상도 조건도 없어. 하지만 저도 모르게 이상을 바라고 말지. 상대를 위해서라며 자신의 이상을 요구하거든." 부모의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하지만 부모도 자식에게 자신의 이상을 요구한다. 자식도 부모에게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요구한다. 차라리 남이라면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을텐데, 부모이기에 자식이기에 오히려 더 쉽게 이상을 덧씌운다. 부모자식 간의 관계에서 그런 기대들을 주고받으며 서로 상처가 생기는 것을 작가가 위로하고자 한다고 느꼈다.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부모님의 자식들을, 자식에게 못해준 것만이 남은 부모들을 애틋하게 바라봐주는 시선을 느꼈다.
다음권이 나온다면 하이다씨의 입장을 듣고싶다. 정말 궁금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