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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세트] [BL] 아귀 (총3권/완결)
이순정 / 고렘팩토리 / 2024년 10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 없이 사랑을 말하는 이야기
살기 위해선 인육이라도 먹어야 하는데, 그 인육을 먹어도 결국 괴물이 되어 죽게 되는 운명밖에 기다리지 않는 세상에서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야할 이유가 뭐일지 생각하게 된다
그냥 무작정 본능이 시키는대로, 죽기는 싫으니까 당장 살고 싶어서 사람을 잡아 먹는 인간들. 그런 식으로 살아남았지만 막상 죽을 때가 되니 후련해보이던 조연을 보니 더욱 마음이 복잡하다.
사람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왜 사는 걸까.
동생과 자신만은 절대 인육을 먹지 않겠다고 신념을 지키며 살아온 형에게 사랑이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겠지. 비록 자신이 죽은 뒤에 수가 살아남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서 수가 무력감을 느끼고 생존법도 모르게 됐지만, 동생을 지키며 버텨온게 단지 관성만이었을까.
수도 그저 보호만 받는 처지에서 벗어나 '비상식량'이라도 역할과 결말이 정해지니 오히려 생기를 얻는데 그게 인상적이었다. 공이 수에게 준 것, 그래서 호감과 의존이 시작되게 한 것. 수가 그 뒤로 성장하기 시작하니 마냥 순하지만 않고 행동력도 좋고 영리해.
처음부터 끝까지 수한테만 잘해주면서 이것도 저것도 다 해주겠다고 공수표를 날리는데, 알죠, 폐허가 된 세계에서 그런 말 할때마다 눈물 버튼인거.
재앙 이전을 아예 몰랐던 수와 달리, 공은 재앙 이전의 '좋은 것'이 뭔지 알기에, 식인하여 살아남는 자기 존재를 비하하고 여타 식인하는 사람들도 하찮게 여기지만, 그렇기에 수에게 더 호기심이 생기고 눈길이 가고 마침내는 사랑하게 됐다. 자신이 원하는게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말로 입밖으로 낼줄 몰라 답답해 하면서도 행동은 사랑이던 사람..
결국 나를 잡아먹더라도 살아달라고 서로 바랄만큼. 그렇게라도 살아남길 바란다, 생존하길, 잘 살길 바란다는 마음. 산다는게 뭘까요 정말.
둘은 서로에게 사랑임을 알았다지만 이 세계에는 희망이 한톨도 보이지 않는데, 정말 평화로운 세계의 에이유 외전이 꼭 필요하다. 지금은 행복하다지만 얼마나 생존하겠냐고ㅠㅠ 가장 큰 공동체라는 여자교도소 거기도 언젠가 붕괴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인데.
지금 내가 누워있는 이 방이 있는 그대로 낡고 먼지쌓인 폐허가 되는 상상을 가끔 하는데 그런 느낌이 구현된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