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의 세계사 - 서양이 은폐한 '세계상품' 인삼을 찾아서
설혜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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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의 세계사》 내용은 크게 2가지 흐름으로 전개된다. 첫째는 인삼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던 어느 세계체제의 역사를 추적해나간 것이다. 둘째는 하나의 세계체제에서 중심축이 될만큼 중요했던 인삼에 대한 연구가 왜 약리학적 분야에 한정되고, 인문학적 연구는 덜 진행되었는가를 밝혀내는 것이다. 두번째 주제는 첫번째 주제의 흐름에 부속된 면모가 있기 때문에 칼로 베듯 나누긴 어렵긴 하지만.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스벤 베커트의 《면화의 제국: 자본주의의 새로운 역사》(김지혜 옮김, 주경철 감수, 2018)을 생각했다. 하나의 상품을 중심으로 여러가지 세계체제가 존재했고, 그것이 차츰 서구를 중심으로 한 단일한 세계체제로 통합되어 가는 과정을 추적했다는 점에서 두 책의 전개는 상당히 비슷하다. 폭넓은 범위의 사료를 탁월하게 분석했다는 점도 마찬가지이고. 물론 한쪽은 인삼을, 한쪽은 면화를 주제로 삼은 만큼 차이도 있다. 두 책의 부제를 보면 그 점이 잘 보인다. 인삼은 ‘은폐’되었지만, 면화는 ‘자본주의의 역사’가 되었다.


책은 서문과 결론, 그리고 4개의 부로 나누어서 전개된다. 서문의 내용은 인삼에 대한 연구사를 간략하게 정리하고 이후의 내용을 요약한 뒤 연구 방법론을 제시한다. 결론은 앞의 내용을 종합하여 세계체제론에서 가지는 의의를 제시하며 인삼의 역사학적 연구가 더욱 진행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1부의 내용은 인삼을 중심으로 17세기부터 18세기까지의 동서양의 지적교류를 검토해보았다. 1장은 인삼이 유럽에 소개되는 과정을, 2장은 유럽에서 학술적 인삼연구가 시작되는 과정을 다루었다. 3장은 북아메리카 인삼(화기삼)의 발견을, 4장은 인삼이 서구에서의 의학적 활용으로 활용된 사례를 검토한다.


2부의 내용은 인삼을 중심으로 돌아간 세계체제의 전모를 추적한다. 1장은 서구가 본격적으로 동아시아에 진입하기 이전에 인삼의 무역을 다룬다. 2장은 동인도회사의 인삼 무역을, 3장은 미국의 인삼 무역을 다룬다. 4장은 인삼을 통해 19세기 동아시아 정세를 들여다본다. 책을 읽으면서 2부의 내용이 가장 흥미로웠다. 1장에서는 누르하치의 세력 팽창에 인삼 교역이 기여한 바가 제시된다. 3장은 미국의 경제적 팽창에 있어서 인삼의 중요성이 다루어지고, 4장은 러시아의 남하와 인삼의 연관성이 제시된다.


3부는 세계체제가 서구를 중심으로 통합되고 재편되면서 인삼이 주변부로 밀려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1장은 중국의 인삼 음용, 2장은 유럽의 인삼 음용을 문헌에 나타난 사례를 위주로 다룬다. 인삼의 위기는 3장부터 시작된다. 3장은 18세기 말 약전이 차츰 표준화되는 과정에서 인삼의 효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여기에는 인삼의 유효성분 추출이 어려웠던 점도 있지만, 경제적 이유로 화기삼과 고려인삼을 동일시했던 서구의 탐욕도 작용했다. 4장은 인삼이 전문화되고 객관화가 진행된 서구 의학으로 더디게 진입하는 과정을 다룬다. 이 과정에서는 토복령의 예(매독 치료에 기여했으나 아메리칸 사르사 때문에 잊혀짐)를 통해, 인삼의 위기를 초래했던 유효성분 추출의 어려움이 오히려 얼마간 이점으로 작용했음을 보여준 점이 흥미롭다. 5장은 야생삼이 드물어진 이후 인삼의 재배 시도와 그 결과부터 현대 인삼 산업의 현황까지 다룬다.


4부는 서구 문화 속 인삼을 다룬다. 1장은 유비와 대립화라는 틀을 사용해 서구 문화 속 인삼의 취급을 다룬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인삼은 서구에서 그다지 낯선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나 서구 세계가 다른 세계들을 압도하게 되면서 인삼은 차츰 동양의 미개함, 사치와 방탕 등을 상징하는 존재로 변화한다. 2장은 19세기 이후 서구 세계에서 인삼이 결코 포섭되지 않는 존재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3장은 동서양의 심마니에 대해 다루고, 4장은 앞서 언급한 이유로 결코 온전한 서구가 될 수 없는 인삼의 이미지가 심마니에 대한 대중의 인식에까지 영향을 주었음을 보여준다.


이상 책의 내용을 읽고 나면 정말 대단한 책을 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앞서 언급했지만, 정말 다양한 사료를 활용해 철저히 이에 입각해서 내용을 전개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요즘 과거 서구 역사학이 한문 사료를 취급하는 것을 보고 좀 환상이 많이 깨진 상태였는데, (저자인 설혜심 교수는 서양사 전공) 기본적으로 한국 사학계가 한문 사료는 잘 다루다 보니 그런 단점은 보이지 않았다. 물론 서양사 전공자답게 서구권 사료의 활용은 뭐라 말할 필요도 없겠다. 그리고 무거운 역사책이긴 하지만, 중간중간 재미있는 문장이 좀 있기 때문에 읽는 것이 버겁지만은 않았다. 이건 인삼이 정력제로 사용된 역사가 깊은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은 많지 않았다. 일단 다루는 자료가 광범위하다 보니 정말 다양한 단위가 등장한다. 물론 대체로 각주를 통해 각 단위에 대한 설명이 간략하게 제시되지만, 책의 앞머리에 인삼과 관련되어 자주 쓰이는 단위는 표로 정리하여 제시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화폐 단위의 경우에는 설명도 잘 안 달려있어서 아쉬웠다. 또, 인삼이 책을 읽다보면 인삼이 ‘세계상품’이라는 점은 납득이 가는데, 그 교역 규모가 얼마인지는 잘 감이 오지 않았다. 19세기 이전이야 자료가 적을테니 그러려니 했지만(있어도 크게 신뢰하지 않았을 것이다), 20세기 이후로는 좀 더 많은 수치가 제시되었어도 좋았을 것 같다. 마찬가지로, 구한말 재정에서 인삼 관련 수익이 중요했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비중이었는지 분명히 제시된 느낌은 들지 않는다. 도판이나 표가 꽤 많이 첨부되어 있는데, 이를 따로 정리한 목록이 제시되지 않은 것도 아쉽다(노파심에 언급하자면, 각주, 참고문헌, 찾아보기는 잘 정리되어 있다).


마무리 하자면, 《인삼의 세계사》는 정말 흥미로운 책이다. 되짚어 생각해보니, 인삼이 익숙한 존재이긴 한데 아는게 쥐뿔도 없었다. 정말 다양한 사료를 분석하고 이에 근거해 묵직하게 진행해 나간 점도 좋았다. 중간중간 재미있는 내용도 많았고.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의 서양사 연구도 대단한 수준이라는 점을 배웠다.


* 본 서평은 부흥 카페 서평 이벤트에 응하여 작성되었습니다.


* 2020년 3월 5일 책 수령. 7일에 읽기 시작해 11일에 일독 완료. 12일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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