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피난소
가키야 미우 지음, 김난주 옮김 / 왼쪽주머니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카키야 미우의 <후회병동>을 워낙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이번 작품도 기대가 컸는데 역시 예상은 적중했다.

책장을 열자마자, 빨아들이는 흡입력은 히가시노 게이고 못지않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에서 지진이 일어났고, 원전사고까지 이어졌다.

당시, 뉴스 영상에서 보던 피해의 참상은 아직도 기억에서 잊히질 않는다. 집의 형상은 온데간데없고 널려있는 집기들 속에서 망연자실해 있던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연재해의 무서움을 체감했다.

우리나라도 불과 3년 전, 2년 전 경주, 포항에서 지진이 일어났고 수능 시험일도 연기할 정도로 피해가 있었다.

아마 그 점이, 우리나라도 지진으로부터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이 이 책을 만나게 해준 거 같다.

있으나 마나인 한량인 남편을 둔 50대 여성 쓰바키하라 후쿠코

호시탐탐 그녀를 쥐락펴락하려는 시아버지와 능글능글한 시아주버니 사이에서 전전긍긍하는 6개월 아기를 둔 우루시야마 도오노

폭력적인 남편과 이혼하고 엄마와 가게를 꾸려 12살짜리 아들을 키우는 야마노 나기사

세 사람은 지진이 일어나 해일이 닥치면서 각자 간신히 살아남아 피난소로 가게 된다. 살아남기까지의 과정이 손에 땀을 쥐게 하지만 살았다고 해서 문제가 끝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집과 일터를 잃은 그들...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한 그녀들과 피난소 생활을 하면서 나타나는 각종 문제들은 (작가가 말하고 싶던) 읽는 이로 하여금 혀를 내두르게 된다.

누구나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하지 않고 피난민이 될 수도 있기에 그녀들과 한마음이 되어 더욱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다. 책은 매체로나 잠깐 접하던 피난소의 생활이 구체적으로 나오고 의식하지 않았던 문제들이 자연재해라는 특수 상황 속에서 주머니 속 바늘처럼 솟아오르는 걸 보여준다.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세 명의 여자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진행되는데 읽으면서 지금 내 옆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인듯한 착각이 들 정도의 몰입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가 실제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고 현지에도 찾아가 자료 조사를 했다고 한다.

책의 내용도 좋았지만 걱정부자인 내게, 결말까지도 맘에 들었던 책 <여자들의 피난소>,가키야 미우의 다른 작품도 더 찾아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여기 있는 여자들은 평소 뒤에서는 자기 의견을 말하지만, 앞에서는 입을 조개처럼 꼭 다물고 있다. 물론 자신도 그렇다. 그게 처세술이기 때문이다.

p.154~155

"아니다, 그러지 마라. 나중에 내가 무슨 소리를 듣게. 게다가 여자 신분으로 그렇게 나서는 사람, 여기에는 없어."

p.183

나기사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 견딜 수가 없었다. '가족이나 다름없다' '한마음으로 협조하자'고 떠벌리면서, 강간을 묵인하려 하고 있다. 게다가 그 근거 없는 위협은 무엇인가. '화합을 해친다'라는 한마디가 나오면 사람들은 모두 조용해진다. 그리고 개인의 권리 감각을 점차 잃어 간다.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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