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배틀러 - Novel Engine
보르자 지음, SALT 그림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일단, 소재 자체는 신선!

 

학교를 배경으로 소설을 쓰면 실체화되고,

 

두 명 이상이 소설을 쓰면 서로의 내용이 충돌,

 

이것이 '배틀'이 되는 노벨 배틀!

 

 

또한 국산 라노벨을 읽어본 게 이것 포함해서 겨우 두 권인데,

 

과연 한국인이 썼다는 느낌이 강하게 나고

 

중간 중간에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거 아시죠?'

 

'이자식 안 되겠어. 빨리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같은 한국 인터넷 커뮤니티 좀 돌아다닌 사람은 누구나 들어봤을 드립들이 나오고, 

 

'스포츠 토토' '부활(부 활동)''한화가 또 발림' 같은 말도 나오니 

 

이게 진정한 국산 장르소설이구나 싶더라 ㅋㅋ

 

특히 본인은 인터넷 소설도 안 읽고 국산 소설은 읽더라도 순문학 계열만 읽다보니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더욱 새롭고 즐거웠다 ㅋㅋ

 

 

스토리도 제법 탄탄하고 길고 깊은 묘사 덕분에

 

해피엔딩이 다가올 땐 괜히 온 몸이 전율하기까지 했다...만,

 

그게 이 작품이 대단한 덕인지, 본인의 눈높이가 낮은 탓인지 모르니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일단, 난 재밌었다.

 

 

또한 주제나 메시지도 깊고,

 

어떻게 보면 굉장히 흔한 메시지이기도 한데

 

이 작품은 그 메시지가 작품 전체를 아우르면서

(심지어 작가 후기에도 되뇌면서)

 

강조되고 또 강조되기 때문에 확실히 임팩트가 강하다.

 

 

게다가 그 흔해빠진 뽕빨, 하렘이 안 나오는 게 정말 좋았다.

 

주연 인물이 남자 주인공, 같은 반 여학생 두 명, 여 선생님인데

 

아마 일본에서 이걸 썼다면 이 쯤에서 커플링이 있거나

 

넘어져서 실수로 가슴 만졌다든지 하는 뻔한 게 나올 법도 한데,

 

이 작품은 그게 없다. 진지하게 스토리, 주제에 대한 이야기만 한다.

 

그래서 좋다. 매우 좋다.

 

 

 

다만 이토록 만족한 작품이거늘,

 

단점이 아주 없지는 않은데, 일단 내가 불만이었던 점은 두 가지다.

 

 

첫 째는, 주인공 가족에 대한 묘사가 너무 없다.

 

물론 이야기 진행은 학교에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외 상황은 전혀 관계없을지 몰라도,

 

주인공의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은 얼추 서술에 가끔 언급되는 수준이고

 

집안 풍경이라든가 집에 돌아가는 과정 같은 게 자세히 다뤄지지 않는다.

 

마치 거대한 무대가 있는데, 이 무대 배경 그림에 학교만 있는 느낌.

 

그래서 학교 외 장소는 절대 연출할 수 없는 느낌...

 

(아니면 이 책 내용 자체도, 학교를 배경으로 쓴 하나의 노벨 배틀용 소설이라거나

뭐 그런 건가?)

 

그래도 이 점은 뭐...

 

스토리에 몰입하다보니 오히려 주인공 가족에 대해 관심 자체가 생기지 않아서

 

나중엔 신경쓰지 않게 됐다.

 

 

진짜 문제점, 두 번째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바로...

 

 

 

 

 

 

'서술'.

 

 

 

 

이 작품은 고등학교 남학생인 주인공의 1인칭 시점이다.

 

그 외 시점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2장, 3장이 시작될 때 다른 학생이 노트에 쓴 소설의 발췌문이 살짝 나오면서

 

불길함을 암시하는 연출이 나오긴 하지만, 그 뿐이다.

 

주인공이 모르는 장소에서 일어나는 일, 행동이 묘사되지 않는다.

 

철저한 1인칭이다.

 

 

자,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주인공은 고등학생이고,

 

밀리터리 덕후라든가 군에 대한 정보를 안다는 언급이나 설명도 없다.

 

 

그런데 작중 묘사를 보면

 

'탄피를 찾는 군인 심정으로' 라는 심리 묘사가 나오질 않나,

 

권총을 보고 '날아다니는 새도 떨어트릴 45구경이다' 라며 구체적인 생각을 하지 않나,

 

'콘크리트 파편이 크레모아 터지듯 튀었다' 는 식의 묘사까지 나온다...

 

 

또한 주인공은 자징 문학소년, 독서가 취미라고 하지만

 

실제론 1년에 한 권 읽을까 말까 한 녀석이다.

 

그런데 이 무슨,

 

작중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심리를 비유할 때

 

삼국지 인물을 빗댄다. 그리고 그게 무척 절묘하고 자세하다.

 

'삼국지나 무협물이라면 봤지만 나머진 글쎄...'

 

라는 독백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그런 것도 없다...

 

그냥 '자칭 문학소년이지만 사실 책도 제대로 안 보는 소년'이라고 설정해놓고,

 

삼국지 내용은 다 아는 걸로 나온다는 말...

 

 

그리고 작중 국어 선생님이 '한화가 또 발렸다'라면서

 

담배를 물고 혀를 차는 장면이 있다.

 

이 때 주인공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이렇게 생각한다.

 

'...... 야구 이야긴가?'

 

그렇다. 주인공은 야구에 관심이 없다. 그러니 야구에 대해서도 잘 몰라 마땅하다.

 

그런데...

 

'홈런포만 노리고 풀스윙을 일삼는 1할8분대의 개스히터를 보는 것 같다'

 

라는 묘사가 나오질 않나,

 

나중에 6시간 동안 기절했다 깼을 때, 그 6시간을

 

'야구를 9회말까지 보고도 남을 시간'이라고 표현한다...

 

 

정리하자면,

 

미필이고 밀덕도 아닌데 쉽사리 군인 심정을 빗대거나 잘 알고,

 

책은 손도 안 대면서 삼국지 내용은 다 알고,

 

야구에 관심도 없으면서 야구 선수 이름과 특징까지 알고 있는...

 

무척이나 앞뒤 안 맞는 주인공...

 

 

그런데 사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문체로 보나, 군대 * 삼국지 * 야구 비유로 보나, 작가는 중년 남성이다.

 

작가 정보나 작가 후기를 안 보고 그냥 작품만 봐도

 

'이건 아저씨가 썼구나' 하는 게 느껴진다.

 

즉, 작가는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쓰면서

 

자기도 모르게 자기 생각을 그대로 써버린 것.

 

다시 말해 이 소설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이 아니라

 

'1인칭 작가 시점'이다...!!!!!!!

 

 

본편에서 '인물 설정'을 몹시 중요하게 다루면서도

(예 : 학생을 아끼는 인물이라 절대 학생을 해치지 않음)

 

정작 주인공이라는 인물의 설정이 마구 뒤틀린 모순...

 

그게 이 작품의 문제점이다...!

 

 

 

(추가로 악역으로 등장하는 악령 녀석이 '...하아?'라는,

전형적인 일본식 리액션을 말하는 것도 솔직히 아니꼬왔지만,

그다지 신경쓸 부분은 아닌 듯.)

 

 

 

그래도 역시 내용은 마음에 들고

 

주연 캐릭터도 누구 하나 버릴 사람이 없이 구성도 탄탄해서

 

몹시 재밌게 봤다. '1인칭 작가 시점'으로 쓰였다는 게 여전히 맘에 걸리지만

 

그래도 만족. 아마 살면서 처음으로 한국 작가의 팬이 된 것 같다.

 

후속권도 다 찾아보고 이 작가님 다른 작품은 없나 둘러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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