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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다를 닮아서 ㅣ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반수연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평점 :
반수연은 믿고 보는 소설가이다. 그것이 소설이건, 산문이건, 페이스북의 소위 잡문이건, 반수연이라는 작가가 무언가를 썼다면 일단은 울고 웃을 준비를 해야 한다. 책 머리의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부끄러운 이야기까지 다 써 버렸다고 말한다. 가난하고 벗어나고 싶던 바닷가 도시의 어린 시절, 이방인으로 살며 서럽고 뻘쭘했던 순간들, 부끄럽다면 부끄러울 수도 있겠으나 작가는 그 부끄럽고 서럽고 슬픈 와중에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웃을 여지를 찾는다. 그것은 어쩌면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도 어린 딸에게 마지막 순간에 설탕 바른 붕어빵을 남겨주신 아버지의 유산인지 모르겠다. 가장 어두운 순간에 한줄기 빛이 되는 웃음을 찾는 방법.
읽고 보니, 부끄러울 일은 아닌데 작가가 부끄럽다 한 이유는 알겠다. 반수연 작가가 그냥 아는 사람 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언젠가는 작가가 될) 말이 전부인 사람이 다른 말을 쓰는 곳으로 옮겨갔으니 그 이민 생활의 어려움을 말해 뭐 하겠는가. 여기에 물리적인 어려움과, 불안, 바로 작가가 평생을 끌어 안고 살아 온 불안이라 했다. 사실 다른 이민자들이 흔히 털어 놓는 굴욕이나 낯뜨거운 순간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은 간략하게 '참 없이도 살았다' 수준으로 표현될 뿐이다. 하지만 작가는 차분한 목소리를 잃지 않고 조곤조곤 지난 일을 읊어줄 뿐인데, 어느 순간 읽는 나는 눈물을 참고 있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수 있는 어려움을 온 몸으로 겪어 낸 이민자의 넉넉한 통으로 ' 다 살아 냈다.' '다 살아지더라' 라고 속삭여주는 것 같은 책이었다.
나는 바닷가 소도시의 시장통에서 자라지 않았고, 캐나다로 무작정 이민을 가지도 않았지만, 매 순간마다 이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였다. 시장통의 선술집 뒷방이나, 아름답고 광활한 자연의 밴쿠버 교외나, 그냥 서울 어느 동네나, 사는 건 모두 서러운 순간 순간과, 그 사이 사이 아름답게 반짝이는 순간들로 짜여져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작가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힘든거 다 안다. 힘들지, 어쨰 안 힘들겠나. 하지만 돌아서면 저기 잠시 웃을 일이 하나 또 기다린다. 또 그 힘으로 힘든거 버티는 거다.'
"아이는 그 말뜻을 알았을까. 두려움에 짓눌리지 않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는 것이 인생이라는 걸 아이는 어떻게 알았을까. 소소하고 다정한 것들이 모여 바위를 들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걸 나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은데."
"아이는 그 말뜻을 알았을까. 두려움에 짓눌리지 않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는 것이 인생이라는 걸 아이는 어떻게 알았을까. 소소하고 다정한 것들이 모여 바위를 들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걸 나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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