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소리, 가락을 품다 - 시로 쓰는 한국의 아름다운 소리
송수권 지음 / 열음사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한국 최고 서정시를 쓰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송수권, 그가 명성에 걸맞는 산문집 `소리, 가락을 품다`를 펴냈다. 시력 30년이 아깝지 않은 그의 시어들은 산문에도 고스란히 담겨져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징소리는 저 우주의 신비한 소리를 머금고 핀다. 그것은 우는 소리지만, 인간의 울음을 넘어서는 신명을 담고 있다. 징소리를 듣고 강물도 머리 풀어 울고, 풍물의 빠른 가락이 산하에 잠들어 있던 도깨비불도 일으켜 세운다. 차마 안 잊히는 혼절한 세월의 기억마저 풍물 소리에 녹아 들어가는 것, 징소리의 신명은 이렇게 자연에 내재된 생명의 리듬을 환기한다. 인간적 삶의 억눌린 부분을 해방시켜 우주적 생명으로 이끌어낸다.    -113쪽, <농악 마당 징소리> 중에서


 각박한 도시생활 속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징소리,  산기슭의 물레방아 소리,  연잎에 비 듣는 소리,  봄물꼬에 물넘는 소리, 산골짜기 솔바람 소리에 이르기까지.  제목만 들어도 찡해지는  이야기들이  펼쳐지면 꼬깃꼬깃  가슴 한켠에 숨겨두었던 추억이 우리 앞에 어른거린다.

 

  

우리 방학이 오면 외갓집에 가자

하늘의 푸른 별자리 옮기러 가자

모깃불을 올리고 멍석을 깔고

밀팥죽을 쑤어 먹고 나면

먹물 속 전설처럼 깔려 오는

푸른 하늘 별자리 옮기러 가자

날 새도록 얘기 한 대목씩 풀어 내던

외할머니 부채 바람 따라가자

하늘의 거인, 큰곰 작은곰 형제가

나란히 손잡고 나와 개밥별을 핥고

수레바퀴 자국 성큼성큼 길을 내는

우리는 밀림 속 도둑괭이처럼 울부짖으며

그 큰 수레발자국 따라가 보자.

-본문 163쪽, <외할머니 부채바람 소리> 전문 

 

 

 송수권의 `소리, 가락을 품다`는 잊고 지낸 지난 기억들을 끄집어내 환기시킨다. 그리고 그것이 현재의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 원동력임을 말한다. 시간 가는 대로, 밥벌이를 하기 위해 하루하루 마음을 비워놓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이 책은 머리를 식혀주는 좋은 계기가 될 법 하다. 두 눈으로 책 속에 글자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온 마음을 그곳으로 쏟아내고 나면, 어느새 두 귀에서 소리가 들릴 것이다. 송수권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가락이 담긴 소리.

 살면서 이런 행복 한 번쯤 느낄 수 있다면 괜찮은 장사 아닐까. 어쨌든 우린 옷 한 벌은 건졌으니 말이다. 어느 가수의 구수한 노래에도 담겨있듯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