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페이크 32 - 최후의 심판, 완결
후지히코 호소노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얼마 전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 위작 논란도 그렇고, 미술계만큼 진짜 가짜 논란이 심한 곳도 없을 것이다. 진짜와 가짜라는 것에 집착하는 이유 중 하나는 진짜라면 어마어마한 가격에 팔리고 가짜라면 종이값도 건지기 힘들어서가 아닌가 싶다. 어느 tv프로에서 미술품이 재테크 수단으로 소개된 적도 있고...어느 순간 미술품의 가치는 작품 자체의 아름다움에서 '얼마짜리인가'로 바뀐 듯 하다. 억! 소리 나는 미술품에 나같은 사람은 왠지 더 멀어지는 기분이다. 소위 있는 사람들의 과시용 장신구가 되어버린 느낌이랄까? 

여기 예술을 돈으로만 환산하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은 후지타 레이지.
그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박사 소리를 들었던 뛰어난 복안가이면서 심미안을 가진 인물로, 모종의 사건으로 메트로폴리탄에서 나와 지금은 도쿄에서 갤러리 페이크라는 수상한 화랑을 운영하고 있다. 겉으로는 복제화를 파는 평범한 화랑처럼 보이지만 뒤로는 각종 어둠의 경로로 들어온 미술품을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팔아치우고 있어 미술계에서는 돈만 아는 사기꾼으로 악평이 자자하다. 

분명 후지타는 사기꾼이 맞다. 그것도 참으로 희한한 사기꾼. 1권에 보면 모네의 볏짚이 나온다.(원문이 그런가본데, 볏짚보단 밀짚이나 노적가리가 낫지 않을까 싶다.) 예술의 '예'자도 모르면서 단순히 돈이 되니 미술품을 정치헌금으로 받아먹는 국회의원에겐 그에 맞는 복제화를 비싼 가격에 팔아치워버리고, 그의 화랑을 찾아와 진품 볏짚을 보며 '이름도 모르지만, 이 그림쟁이 선생은 분명 농부의 마음을 알 거요' 라고 말하던 경비원 아저씨에겐 복제화라며 진짜 볏짚을 거저 주다시피 하는 가격으로 팔아치우니깐 말이다. 얼마 후 그 국회의원의 부정 스캔들이 tv뉴스를 장식할 때 tv속 국회의원과 집안에서 조용히 차를 마시며 그림을 감상하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대조가 되었다. 

체력 부실에 가끔은 실수도 하고 사기치면서도 뻔뻔한 태도는 정의로운(?) 전형적인 주인공 이미지랑 거리가 좀 있지만, 오히려 이 점이  후지타 레이지라는 인물에 대한 호감도를 올려주는 것 같다. 겉으로 깨끗한 척 하면서 뒤로는 구린 짓을 하는 사람들보단(그런 사람들이 제법 나온다.) 겉으론 구린 인간이란 평가를 받고 있어도 사실은 그 누구보다 깨끗하고 예술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후지타가 백만배는 더 낫다. 

미술계의 각종 비리와 위선에 대한 고발. 그림과 화가에 얽힌 사연 그리고 간단한 미술 상식들이 등장을 한다. 처음엔 그림 위주로 가더니 뒤로 가면 마야 문명이나 바빌론 이야기, 건축물, 보석, 시계나 오래된 장난감, 벽화 등 여러 영역에 걸쳐 광범위하게 소재를 끌어다 썼다. 우리나라의 청자와 백자도 나온다. 지루하지 않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겸사 겸사 간단한 상식들도 얻을 수 있어 괜찮은 만화다.  

이러한 주제의 만화들이 그렇듯 자잘한 에피소드 위주로 진행되다 보니, 전체적인 줄거리가 약한 편이다. 후지타와 사라의 러브라인을 좀 살려줬으면 했는데 조금 흐지부지된 경향이 있고, 단순 소재인 줄 알았더니 나름 전체 줄거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모나리자 관련 에피소드가 좀 약했다.

사실 이런 종류의 만화는 네버엔딩 스토리가 되기 쉽상인데, 소재가 고갈이 된건지 작가가 32권으로 완결을 내버려 아쉽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선 언제 이런 만화가 나올것인가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일단 허영만 선생님의 식객 정도만 알고 있는 수준이라...;;)

이 책의 단점이라면 첫째 그림체가 이쁘지 않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명화나 조각들이 등장하니 오히려 이 편이 나으려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가끔은 작가가 발로 그렸나 싶을 정도로 엉망인 그림체도 보인다. 각 편마다 좀 들쑥날쑥한 경향이 있는데...그림체야 내용이 좋으니 넘어갈 수 있다.  

오역이라고 할까 번역이 매끄럽지 않다는 게 두번째 단점이다. 듀러(뒤러)나 펠메일의 터번을 두른 소녀(아마도 베르메르의 진주귀걸이 소녀)처럼 이쪽으론 문외한인 내가 척-보기에도 이상한데? 하는 느낌이 드는 것들이 많았다. 아무래도 일본어를 그대로 옮긴 모양인데, 이런식으로 전문 분야에 관련된 만화를 번역하게 된다면 한번 정도는 확인 작업을 해줘야하는게 당연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번쯤 검색을 해봤다면 이렇게는 안됐을텐데 말이다. 해적판도 아니고 정식한국어판이라면서 성의 없는 번역이 눈에 좀 거슬렸다.

세번째는 어쩔 수 없는 단점이라고 할까. '일본이 최고~'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소재들이 많다는 것. 작가가 일본인이니 당연한건지도 모른다. 

미술이라는 건 어려워보인다. '감상'이라고 하면 보이는대로 느끼면 되는건데, 언젠가부터 작가가 누구인지 그림이 얼마짜린지 평론가는 뭐라고 말했는지...남들이 다 멋진 작품이라고 고개를 끄덕거리니 나도 덩달아 그런가보다 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던 것 같다. '감상'하는 건 나 자신인데 화가의 명성과 비평가의 권위, 다른 사람들의 평가라는 것에 휘둘려 제대로 된 감상을 못 했던 것이다. 일단은 잘못된 나의 감상 태도에 대해서 반성을 했다. 미술이라고 하면 왠지 거창하고 어려워보여 다가가기 힘들었는데, <갤러리 페이크> 덕분에 미술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미술에 대한 거리 좁히기 관점에선 괜찮은 만화책이라고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