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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관람 : 런던 내셔널 갤러리 시공아트 7
호먼 포터턴 지음, 김숙 옮김 / 시공사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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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단순히 보기만 하는 것이 때로는 아주 큰 즐거움이다. 사람의 감각 중에서 가장 차원이 낮다고 하는 시각이 사실은 가장 큰 기쁨을 가져다 주는것이라고 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것 같다. 특별히 미술작품 감상의 경우에 이 말이 딱 맞는다는 것을 때때로 체험한다. 훌륭한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오로지 시각만으로도 최상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미술관 관람-런던 내셔널 갤러리>는 대영박물관, 테이트 갤러리와 함께 영국의 대표적인 미술관으로 꼽히는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대한 안내서이다. 이 책은 내셔널 갤러리의 간략한 성장사를 시작으로,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작품의 보존처리 기술에 대한 안내를 사진과 함께 실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이어 소장 작품중 약 350여점을 철처하리 만큼 객관적인 배경설명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런던을 방문하는 사람들, 특히 관광객들이라면 런던 내쇼날 갤러리를 잠깐이라도 들렀을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유럽여행중에 짧게나마 런던을 구경하면서 잠시 시간을 쪼개어 내쇼날 갤러리에도 들렀었다. 일행과 함께 움직이는터라 나 혼자만의 여유로운 감상은 절대 아니었지만 수박 겉핥기 식의 명화 순례는 한 셈이었다. 서양미술에 왠만한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친숙한 명화들을 눈맞춤 한 정도였긴 하지만 말이다. 루벤스의 파리스의 심판,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 보티첼리의 비너스와 마르스, 렘브란트의 냇가에서 목욕하는 여인등등이 우선 떠오르는데, 역시 명성에 걸맞는 걸작들이었다는 기억이 난다.

미술관에서 직접 작품을 보는 것은 알고 있던 작품이라도 색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기도 하고, 전혀 새로운 작품중에서 특별히 마음에 와닿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또한 장점인것 같다. 내쇼날 갤러리에서도 역시 나는 내 마음을 움직이는 몇 작품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폴 들라로슈의 제인 그레이의 사형집행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 작품은 헨리 7세의 증손자인 제인 그레이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신교도였던 어린 왕 에드워드 6세가 서거하자 왕위계승자로 임명되어, 1553년여왕임을 선포하고 단 9일간 군림하였다가, 로마 카톨릭교도인 메리 1세의 세력에 밀려 반역죄로 몰려 사형을 선고받고 1554년 17세의 나이로 런던 탑에서 처형당하는 장면을 그린것이다.

그녀는 타고난 미모와 특별히 뛰어난 지성으로 유명하였으며, 자신의 죽음을 경건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246cmX297cm의 굉장히 큰 그림 앞에서 나는 한동안 그녀의 모습에 눈길을 뗄 수 없었다. 어두침침한 런던탑안에서 그녀의 순결하고 하얗다 못해 투명하기까지 한 피부와 새틴 드레스만이 유독 빛을 발하고 있다. 두 눈을 가리운채 처형당하기 직전까지도 너무 침착하고 위엄있는 태도는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자신의 기막힌 운명을 어떻게 그 어린 나이에 자연스럽게 순응하며 받아들일 수 있는지.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옆의 하녀가 절망한 나머지 기절하고 있을 뿐이다. 한 화가의 손을 통해 그려진 그녀가 겪은 비극적인 역사의 한 자락이 아름다운 작품으로 탄생해 그해 여름 여행 내내 기억 속을 맴돌고 있었다. 그런데 잊고 지냈던 그때의 충격적인 놀람과 뒤를 이은 애잔한 감동이 이 책 속의 그 작품을 다시 보게된 순간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것 같았다.그녀는 여전히 그림 속에서 아름다운 죽음을 맞고 있었다..

많은 명작들을 감상하는 즐거움 속에서 한편으로 내내 아쉬웠던 것은 도판의 크기와 색채에 관한 것이었다. 350여점이나 되는 많은 작품들을 제한된 지면에 소개하려니 도판의 크기가 터무니없이 작은 것들이 많았는데다, 이중 또 많은 작품들이 흑백도판이었으니 더 안타까웠다. 실물의 감동에 몇천분의 1이나마 느끼고 싶은 심정임에도 형편상 이 책으로나마 만족해야한다는 사실이 속상하다. 내가 언제 또 내셔널 갤러리에 가볼 수 있을런지, 괜히 그때 더 세심히 살펴보지 못한 나를 탓해본다. 그래,또 다시 훗날을 기약해야 하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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