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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ㅣ 현암사 동양고전
안동림 역주 / 현암사 / 1999년 6월
평점 :
『벽암록』의 몇 가지 번역본을 읽으면서 평소에 떠올리던 이런저런 생각을 적어본다.
우리의 평소 먹고 마시고 자는 등의 행위에 담긴 진정한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역대 선사들을 둘러쌓던 세계와 지금 우리의 세계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들의 일상과 우리의 일상에서 외면의 모습도 결코 다를 바가 없다. 물론 우리는 한문의 지식을 바탕으로 선사들의 오도송과 비슷한 문자적 표현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정신세계는 그들과 엄청난 간극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내면과 자아를 어떻게 가꾸고 다듬어야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와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의 세계를 여는 문고리를 잡을 수 있을까?
한편, 불자로서 불교의 본령이 지혜와 자비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자아의 가장 깊은 내면에서 분명히 보고 느꼈으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깨침의 세계. 마치 벙어리가 아름답고 찬란한 세계를 꿈꾸었으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처럼… 그러나 그 깨침의 세계가 어떠하든 개인적인 자기 만족의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참다운 지혜가 정말 소중한 것이지만 자비 없는 지혜는 얼마나 공허한 것인가!
진정한 깨침의 참주인공은 십우도(十牛圖, 선 수행의 단계를 소를 찾아 나서는 것에 비유한 그림) 마지막 단계인 입전수수(入廛垂手)처럼 저잣거리 속에서 중생과 하나가 될 것이다. 입전수수는 아홉 단계의 과정을 거치며 지혜의 깨침을 이룬 수행자가 큰 포대를 메고 사람들이 많은 곳을 향해 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 때 큰 포대는 중생들에게 베풀어줄 복과 덕을 담은 것으로, 불교의 궁극적인 뜻이 자비와 중생제도에 있음을 상징한다. 설사 우리의 삶이 수행과 지혜의 깨우침은 부족하다 하더라도, 불자로서의 일상은 끊임없는 자비행의 실천이 되어야 할 것이다.
대적할 짐승이 없는 백수의 왕 사자도 몸 속의 작은 기생충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우리는 내부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번뇌의 씨앗을 깨어있는 마음으로 항상 경계해야 한다. 길가의 돌, 풀 한 포기, 이름 모를 들꽃, 나무 한 그루, 흐르는 물, 크고 작은 산과 들, 푸른 하늘 이 모든 것들이 시절 인연 따라 무심히 펼쳐지는 대자연의 말없는 무정설법이다. 유정인 사람은 분별적인 의식을 통해 자연을 취사선택 하려지만 무정인 자연은 그냥 그대로 자신을 온전하게 펼쳐놓을 뿐이다. 이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자연과 온전히 하나 되는 삶으로 전환해야 한다. 화려한 자태를 미련없이 다 던져버리고는 흙으로 뿌리로 다시 돌아가는 낙엽은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의 참다운 수행 자세를 일깨워준다. ‘평상심시도’는 바로 이러한 명상과 성찰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시간의 흐름은 바로 의식의 흐름이다. 『금강경』은 과거 현재 미래가 결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현전(現前)에 펼쳐지는 오직 찰나의 순간에 늘 깨어 있어야 한다. 『화엄경』의 ‘무량원겁즉일념 일념즉시무량겁(無量遠劫卽一念 一念卽時無量劫)’은 무량한 시공은 한 마음에 들어있고, 한 생각 속에 무량한 시공이 들어있다는 도리를 일깨우고 있다. 일념을 놓치지 않고 늘 자신을 바르게 살피며, 집착에서 벗어나 자신을 끊임없이 향상시키는 것이 수행의 기본자세이다. 부처의 마음은 오면 비춰주고 가면 흔적을 지워버리는 거울과 같다. 수행은 맑고 밝은 거울이 되려고 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 맑아진 마음을 생활 속에서 온전하게 실천하며 지혜롭게 펼쳐야 할 것이다.
현실의 순간순간에 진실하고 정당한 삶을 이어가려는 노력과 실천이 정말 소중하다고 느끼며, 『벽암록』의 내용이 이러한 마음의 전환에 좋은 기연이 되기를 바라며, 무엇보다도 지혜와 자비의 마음을 끊임없이 가슴 속에 담아가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