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의 지구를 위한 세 가지 이야기
움베르토 에코 지음, 에우제니오 카르미 그림, 김운찬 옮김 / 꿈꾸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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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이자 기호학자, 그리고 소설가이기도 한 움베르토 에코의 동화 '움베르토 에코의 지구를 위한 세 가지 이야기'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겪고 있는 고통,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잘못된 행동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져있다. 제목에 나온 것처럼 이 책은 총 세 개의 동화, '폭탄과 장군', '지구인 화성인 우주인', '뉴 행성의 난쟁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동화는 전쟁, 혐오, 환경오염을 주제로 전개된다.

어렸을 때는 집안의 모든 책장들, 커다랗고 짙은 밤색 나무로 만든 책장들이 동화책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동생과 나는 잠들기 전 부모님이 읽어주시는 동화책 시간이 너무 좋아 졸린 눈을 비벼가며 그 짧은 동화가 끝나기 전까지 잠들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유년시절 동화책은 우리에게 포근하고 따뜻한 엄마, 아빠의 목소리가 덧입혀진 행복 그 자체였다. 아이들이 금방 자라나듯 우리 자매 또한 쑥쑥 자라나면서 동화책이 가득 들어차있던 책장은 갖가지 위인전과 한국문학전집, 세계문학전집으로 채워졌다. 그렇게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되면서 동화책은 어느새 우리 마음 깊숙한 어느 곳에 추억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렇게 성인이 된 지금 다시 읽게 된 동화책은 어렸을 때, 그 때의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마냥 행복하고 평화롭게만 느껴졌던 동화 속 세계는 순백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어린이의 눈을 통해서만 볼 수 있었던 것이었다. 우리의 세상은 눈부시게 찬란하기도 하지만 수많은 폭력과 혐오, 다툼과 오염으로 뒤덮여 있기도 하다. 기쁨과 찬란함, 슬픔과 고통이 공존하는 복잡미묘한 우리의 삶은 동화 속에서 희망적으로 그려진다. 현재 지구는 동화에서 그리는 것처럼 희망적이지만은 않다. 여전히 우리는 서로를 죽이기도, 혐오하기도, 이기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동화에 담긴 작가의 바람처럼 모두가 함께 공존하는 평화로운 세계를 열망하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함께 모여 연대한다면 미약하지만 오래 지속되는 잔잔한 불씨가 피어오를 것이라 확신한다. 서로가 내뿜는 작은 온기들이 모여 커다란 불꽃을 만들어 내리라 확신한다.

코로나가 창궐하는 우울한 시기에 이 책을 읽게 되어 생각이 많아진다. 사람들은 코로나로 인해 동양인에 대한 증오와 혐오가 이전보다 심해질 것이라 예상한다. 나 또한 친구들과 만나면 하게 되는 이야기가 이와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예전처럼 해외를 갈 수 있을까?', '혹시 폭행을 당하거나 위협을 받진 않을까?' 하는 이야기들.

코로나 시대 이전에도 혐오는 분명 존재했다. 몇년 전 해외에 체류할 때 받았던 수많은 인종차별들을 떠올려보면 아직도 분노와 수치심으로 인해 얼굴에 열이 몰린다. 그때에도 분명 두려움과 분노를 느꼈지만 앞으로 느끼게 될 불안과 공포에 대해 생각하면 아득해지는 느낌이다. 그렇기에 움베르토 에코 작가의 이야기가 더욱 마음에 와닿았다.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고, 피부색과 생김새가 다르다고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라는, 서로를 사랑할 수 없는 건 아니라는 그런 따뜻하기 그지없는 이야기가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느껴졌다.

동화는 소설보다 짧을 수밖에 없다. 아직 읽는 게 서툴고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는 짧고 쉽게 쓰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장의 길이와 감동은 비례하지 않는다. 사랑으로 꽉꽉 눌러 농축된 언어들이 동화 속에 가득 담겨져 있다. 그렇기에 동화는 어른들에게도 왠지모를 위안과 감동을 선사한다. 그렇기에 움베르토 에코의 지구를 위한 세 가지 이야기는 현대를 살아가는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꼭 필요한 동화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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