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이디스 워턴 지음, 김욱동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첫사랑과 결혼한 사람들이 있다.

그게 문자 그대로의 첫사랑인지, 아니면 옛사랑을 비밀에 묻었다는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첫사랑과 결혼한 사람들...

7년을 만나고 결혼에 골인해 결실을 맺은 사람들.

나도 아마 조금쯤은 질투어린 시선으로 보기도 했을거야.

어째서 저런 인연을 곱게 이어 결혼까지 했냐고.

남편과 학창시절의 추억까지 조곤조곤 나눌 수 있어 행복하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아마 <여름>을 읽고난다면, 생각이 달라질걸.

 

서머 로맨스라 부르기엔

너무 투명하고 아름답고 가슴을 묵직하게 내려앉게 만들어 차마 그렇게 부르기 힘들지만. -

 

어쨌든 그런 서머 로맨스라면, 이루지 못했다 해도 좋지 않은 것 아닌가 하고.

아니, 이루지 못한 아련한 사랑의 추억이 있기에 오히려 남들보다 더 자랑스러워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이디스 워턴은 감정의 물결을 잔잔하게 그려낸다.

 

채리티 로열은 결국 후견인과 결혼했다.

허나, 그녀에게는 단 한번의 여름날같은 사랑이 있었다.

 

답답한 마을에 구원처럼 나타난 루시어스

그와 함께 마차를 타고 나가 도심에서 처음 본 휘황찬란한 불빛들

그 낯섦의 설렘이 첫사랑의 설렘으로 전이되고 서로 불지르며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아득함. 그건 마치 서울에 처음 올라온 대학생 새내기가 선배와 함께 처음 명동을 거닐며 명동의 설렘을 사랑의 설렘으로 치환해버리는 것과 같겠지만.

그러나, 어찌 사랑이 새로운 세계와 함께 오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랑으로 인해 채리티는 전에 없던 세계에 눈을 뜨며

기쁨이 뭔지 알게 되고

그걸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맛보았다는 것만으로도 후회하지 않게 될 것이다.

물론 그 달콤함은 먹어서는 안될 열매를 먹은 자에게 쓰라림을 남길 수도 있겠지만...

채리티는 과감히 인생을 '살아보는' 쪽을 택했고, 겪어볼 수 있는 일은 '겪어보는' 쪽을 택했다.

그렇게 용감하게 자신을 던지는 게 청춘의 삶이고 사랑이니까.

 

결국 루시어스는 약혼자에게로, 채리티는 후견인에게로 돌아간다.

 

특히 채리티가 돈 많고(그닥 많진 않을지라도) 안정적인 후견인을 마지막으로 택했다는 것, 택할 수 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약간의 아쉬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설은 혁명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소설은 섣불리 강요하고 설득하기 전에 당신의 마음을 그려내고, 당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예술이니까.

 

로라가 집을 뛰쳐나가는 것도 좋지만,

채리티가 마지막으로 현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이면서 그 쓰라림을 마음 속에 간직한 채 꾹 입을 다무는 것도 이유 있는 일이다. 그 가슴아픔과 꿋꿋함은 누구든 경험해 봤으리라.

순도 100%였던 첫사랑이 현실에 안주해 어딘가로 떠나갈 때...

 

그러나 어쩌면 채리티의 사랑은 거기서 끝났기에 완성됐다.

로미오와 줄리엣도 살아있었더라면 지지고볶고 부부싸움 하며 살았으리라 말하는 사람들이 있잖은가.

 

그 여름,

숨막히는 여름...

별이 흐르는 투명한 여름...

 

그 기억 안에서

낯선 이방인을 사랑한 채리티의 기억 속에서

루시어스와의 순간은 영원하게 각인될테니까.

 

그걸로도, 삶을 살아가는 일평생의 이유는 충분할테니까.

 

마음 한구석이 아려오는, 탐나는 서머 로맨스.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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