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들이 사는 나라 - 1964년 칼데콧 상 수상작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6
모리스 샌닥 지음, 강무홍 옮김 / 시공주니어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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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밥과 아이들이 살던 나라

모리스 샌닥,『괴물들이 사는 나라』, 시공주니어, 1994년.


 우리는 늘 재미있게 놀다가도 저녁밥 먹을 시간이 되면 집에 돌아왔다. 엄마와 싸웠어도 따뜻한 저녁밥만큼은 마음을 허문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속 맥스 또한 그렇다. 그날 밤 맥스는 늑대 옷을 입고 온갖 장난을 쳤다. 결국 엄마에게 혼난 맥스는 오히려 반항을 하여 방에 갇힌다. 혼자 있던 맥스의 방엔 나무와 풀이 자라기 시작하여, 맥스의 세상 전체가 된다. 맥스는 맥스 호를 타고 바다로 나아가 꼬박 일 년쯤 항해를 한끝에 괴물 나라에 도착한다. 무서운 괴물들 사이에서도 맥스는 마법으로 ‘괴물 중의 괴물’이 된다. 그곳의 왕이 되어 괴물소동을 벌이던 맥스는 어느덧 쓸쓸함에 돌아가고 싶어 한다. 괴물들은 맥스를 붙잡았지만 배를 타고 시간을 거슬러 방으로 돌아간다. 돌아온 맥스에겐 따뜻한 저녁밥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책의 저자 모리스 샌닥은 뉴욕 시 빈민가 브루클린에서 폴란드계 유태인 이민 3세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병약했던 탓에 어린 시절을 고독하게 보내던 샌닥이 아이들을 보는 시각은 조금 다르다. 아이는 순수하고 고민이 없다는 여느 어른들의 시각과 달리 샌닥은 그 나이대의 감정과 고통을 그린다. 미국에서 1963년 출판된 『괴물들이 사는 나라』또한 기존 그림책과 다르게 엄마에게 반항을 하는 등의 모습이 폭력적이라는 이유로 금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1964년 칼데콧 상을 수상하며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명작 반열에 오르게 된다. 이 외에도 『깊은 밤 부엌에서』, 『꼬마 곰』등을 발표하고, 1970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받았다.

 전체적으로 색의 채도와 명도가 낮고, 형태와 명암이 펜 선으로 표현되어 있다. 초반 작은 프레임 안에 갇혀 있던 맥스는 괴물 나라와 그곳에서 돌아온 후에는 프레임에 갇혀 있지 않다. 초승달로 떠있던 달도 맥스가 행복하거나 즐거울 때면 환한 보름달로 뜬다. 방에 아이를 가둔 엄마와 “그럼, 내가 엄마를 잡아먹어 버릴 거야!”라고 반항하는 아이는 이 책이 나오기 이전의 그림책들과 큰 차이를 보여준다. 현실의 육아와 아이들의 분노를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이 각광받은 것에는 이 이유뿐 만이 아니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단순히 분노로 만들어진 환상의 세계가 아닌, 맥스의 자아 성장 공간이다. 이 책의 원제는 ‘Where the wild things are’이다. 괴물이라는 명칭 없이 길들여지지 않은 어떤 것들이 있는 곳이다. 엄마가 맥스에게 괴물 딱지라고 불렀던 것처럼 원작에서도 wild things로 맥스를 지칭하면서 둘이 같은 존재임을 말한다. 누구도 놀아주지 않는 맥스는 엄마에게 혼나자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낸다. 그리고 맥스는 방에서 괴물 나라로 떠나 길들여지지 않은 어떤 것들을 만나며 그것들을 길들이고 통제한다. 때문에 괴물 나라는 맥스의 분노와 갈등 해결 역할을 한다. 하지만 분노의 감정을 통제한 맥스는 외로움과 쓸쓸함이 찾아온다. 거친 자아와 오래 있기보다 부모의 사랑을 받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맥스는 방으로 다시 돌아온다. 따뜻한 저녁밥 냄새에 모든 아이가 돌아오듯 말이다.

 마냥 상냥한 부모와 누구보다 말을 잘 듣는 아이는 현실에 적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한 번쯤은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모든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자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이도 사람이기 때문에 분노와 쓸쓸함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다. 부정적 감정을 담은 이 책은 어른들에게는 다소 당황스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아이들의 솔직한 감정을 지우지 않고 그것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 제시한다. 아이가 어른과 다른 이유는 부정적 감정을 못 느끼는 것이 아닌 그것에 대해 정리할 줄 아는 능력이 다 자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과정을 다루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자란 과정을 쉽게 잊어버려 아이를 자라지 않는 무언가로 보기 쉽지만, 아이들은 언제까지나 부모의 행동 지시 아래에 있지 않고 독립적으로 생각하며 자라난다. 스스로 생각하는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언제나 따뜻한 저녁밥 같은 따뜻한 관심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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