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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에 관하여 - 숭고하고 위대한 문학작품에 대한 단상들
샤를 단치 지음, 임명주 옮김 / 미디어윌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왜 책을 읽는가>에 이어 두 번째로 읽은 샤를 단치의 책이다. 이번에는 위대한 문학 작품, 걸작에 관한 이야기다. 약간 차가운 듯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말투, 단호한 어조, 거침없는 발언이 그의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이 책에서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아포리즘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요즘들어 좋은 책, 특히 위대한 문학 작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상황이라 이러한 류의 책들은 눈에 띄는대로 사서 읽고 있다. 이 책은 좋은 책을 가르는 기준을 제시해 주었다기보다(물론 그런 측면도 무시할 수 없지만) 용기를 주었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었다. 특히 독자로서, 좋은 독자라면 걸작을 부정할 수는 있지만,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며 등을 두드려 주는 듯했다.
˝좋은 독자는 세상에서 가장 덜 종교적인 존재다. 그는 자신의 쾌락을 증가시키기 위해, 아니 자신의 존재를 확장하기 위해 자유롭게 평가한다.˝ -22
이 책에서 주로 언급하는 내용은 걸작이 갖추어야 할 공통점이라기보다 걸작들의 특징을 역추적해나갔다고 하는 편이 이 책의 특징을 더 잘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 특징들은 모든 작품에 적용되지 않는다. 걸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걸작에 공통점이 없다는 것이 걸작 하나하나를 절대적으로 보이게 한다. 서로 전혀 닮지 않았다.(…) 걸작은 평범함과의 단절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30
요즘 문학을 통해 아이들에게 사상을, 통계를, 사회를, 도덕을 가르치려 한다는 비판도 무척 와닿는 부분이다. 문학과 예술의 나라 프랑스도 美보다 저런 측면에 초점을 맞춰 문학교육을 하고 있다고 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감각과 미적 감수성에 대한 중요성을 간과한 대가로 지금 우리가 치르고 있는 대가들을 생각하면 교육에서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또 좋은 작품에는 표면상 주제와 실제 주제가 있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이것을 파악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다. 독서토론 모임이나 청소년들에게도 책을 더 새롭고 깊이 있게 읽는 방법으로 유용할 것 같다.
˝우리는 문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상을 가르친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문학으로 도덕, 사회, 통계, 사상을 가르친다. 토론의 주제가 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게다가 특별히 괴로운 것이면 무엇이든 가르친다. 미학은 벌을 받고 칠판 밑으로 치워진다.˝-168
˝감각의 지식이 포함되지 않은 지식은 아무 것도 아니다.˝-171
˝<마담 보바리>의 표면상 주제는 엠마 보바리의 인생이고 실제 주제는 독서의 영향이다. 책 때문에 타락하는 일은 없으니, 엠마가 좋지 못한 책을 읽어서 타락한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책과 지혜롭지 못한 머리가 만나 안타까운 흥분 효과를 만든 것이다.(…) <돈키호테>는 기사소설에 대한 비평이며 독서가 불안정한 뇌에 미치는 위험에 대한 분석이다.(…)걸작에는 주제가 없다. 형식만 있을 뿐이다.˝ -71~72
샤를 단치는 이 책에서 걸작과 걸작 비슷한 것들, 그리고 걸작으로 알려져 있으나 자신은 훌륭하게 평가하지 않는 작품들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나 <피네건의 경야>,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두고 의문을 제기한 부분은 좀 충격적이기도 하다. 그가 지적하는 부분들 중 몇몇은 그 작품을 걸작이라 평하는 이유에 속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걸작을 쓰거나 읽으려고 하기보다 걸작으로 살라, 걸작으로 살기보다 걸작이 되라는 말로 이책은 마무리된다. 우선 읽고 쓰는 것부터라도 제대로 할 수 있었으면…
˝걸작은 현실과 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 걸작은 그들의 장소, 시간, 그리고 우리에게서 나온다. 인간에게는 비범한 능력이 있다고 걸작은 말한다.˝-33
˝걸작은 그 시대에 색깔을 입혀준다. 걸작은 과거에 재능을 부여한 현재다.˝-47
˝걸작은 나태함에 폭탄을 설치하는 무정부주의자다.˝-63
˝걸작은 출간 전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출간과 동시에 즉각적으로 세상의 중심에 서게 되고 우주의 중력은 걸작으로 옮겨간다. (…) 걸작은 이기적일수록 이타적이게 된다. 걸작에게는 비밀로 하자. 덕성과 미학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할 수 있으니까.˝-68~69
˝걸작이 되려면 의도된 형식이 있어야 한다. 미리 결정된 형식이 아니라 말하고 싶어 하는 것에 가장 적합한 형식을 말한다.˝-85
˝사람들은 글을 쓰는 책임이 얼마나 큰지 상상하지 못한다. 영원성과 마주하는 것이다. 영원한 암흑 속에 작은 돌 하나 던지는 느낌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들보다 별반 나을 것이 없는. 적어도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91
˝문학은 고귀하지만 민주적인 언어로 만들어진다. 문학에서 사람을 분리시키면 문학은 공허해진다. 고급 창작물인 걸작은 매우 서민적이다. 그런데 서민들은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점이 안타깝다.˝-107
˝중요한 것은 이성이 아니라 진지함이다. 볼테르와 보마르셰는 진지한 사람들이었다. 걸작은 진지하다. 밝고 명랑하고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진지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143
˝위대한 작가들은 다른 위대한 작가들을 만났을 때 모두 실패하지 않는가? 위대한 작가는 행성이다. 행성은 다른 행성에게 할 말이 없다. 작은 별인 자신들의 위성에게만 할 말이 있다.˝-182
˝걸작 이전의 삶은 지금과 다르다. 걸작과 함께하는 삶은 완전히 다른 삶이다.˝-186
˝걸작은 걸작을 사랑하게 한다. 걸작은 걸작의 작가를 사랑하게 한다. 걸작은 새로운 영토의 정복자이고 우리 영토를 넓혀준다. 협소한 곳에서 벗어나게 하고, 덜 편협하게 하고, 덜 경직되게 하고, 덜 메마르게 하고, 덜 무미건조하게 한다. 책을 읽는 사람은 광대하다.˝-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