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
마리나 칸타쿠지노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용서는 온전히 나를 위한 행위로 남아야 한다
_마리나 칸타쿠지노,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

* 책 내에는 트리거를 불러일으킬 생존자들의 피해묘사가 서술되어 있으니 독서 시 주의 바랍니다.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는 옴니버스식 구성의 책으로 피해자들의 이야기, 가해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용서프로젝트를 설립한 마리나 칸타쿠지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자신의 겪었던 사건에 대한 서술 뒤에 용서와 참회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 책에는 종종 가해자의 배경과 속내를 과도하게 이해하는 생존자들의 기록이 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라며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쥐어준다.
사람이 악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해하고 누구나 그 상황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우리는 상황과 행동을 미워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을 미워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책의 내용이 틀린 말이 아니다. 상황은 행동을 만든다. 

그것을 악인과 별개의 것으로 볼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선택만 존재한다. 


다만, 내가 아쉬운 것은 생존자는 지워지고 가해자에 대한 연민만 남아있다는 것이다.
용서로 인해 타인을 이해하는 것과 타인을 이해하기 때문에 용서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용서하기 위해 타인의 이해가 먼저 필요하다면 모든 과거가 생존자의 몫으로만 남게된다.
이는 생존자의 숨통을 조르는 행위 밖에 되지 않는다. 

생존자들은 그럴 만한 이유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살아남는 것에 집중해야한다. 

용서는 온전히 나를 위한 행위로 남아야한다.





용서는 신뢰와 다르다. 누군가를 용서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꼭 신뢰할 필요는 없다.
P 66, <나는 그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

용서는 승인이 아니다. 용서했다고 해서 가해자가 한 행동에 동의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P 78, <상처 떠나보내기>


내가 생각하는 용서는 위의 구절과 닮아있다.

용서는 가해자를 신뢰하고, 가해자의 행위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겪어왔던 고통에서 벗어나 내 삶을 영유하는 방법을 되찾는 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이해로 고통을 생존자의의 것으로만 만들어선 안된다.

타인을 이해하는 것에 힘을 쓸 것이 아니라 
자신이 왜 이러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는 가에 대한 이해와 과거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것에 힘을 써야한다.


내가 아무리 그들을 증오해도 그들은 그 사실을 알 수가 없고, 결국 고통받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P 47, <내 본질과 존재 자체를 건드릴 수는 없다>


그리고 그 힘은 위와 같은 깨달음으로부터 온다.

내가 오랜 시간 겪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 또한 아무리 그 사람을 미워하고 저주한다고 한 들, 부정적인 생각 속에 빠져있는 건 나뿐이라는 깨달음 덕분이었다.






/ 책에서 말하는 내용에 무한정 고개를 끄덕일 순 없지만, 이 책이 가이드 역할을 해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마리나 칸타쿠지노는 책에서 “용서라는 것은 개개인의 시선을 통해 보게 되는 것이다, 각자가 처한 상황이나 내용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사람마다 용서에 대한 반응이나 그에 대한 정의가 다르더라도 모두 유효하고 타당하다는 것이 내 입장이다.”라고 말한다.
‘옳고’, ‘그름’과 같은 흑백논리로써 용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탐색’과 ‘대화’로써 용서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용서프로젝트의 참여자들은 가해자들을 행위와 분리시키고 그들이 가진 이야기를 읽어낸다. 
그리고 가해자를 행위와 분리시킴으로써 용서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다.

다시 말하자면, 삶을 되찾기 위해 가해자를 용서하는 용기가 필요한 이들에게 괜찮은 용서의 가이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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