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죽는다는 것 - 어떻게 존엄하고 품위 있게 이별할 것인가
김형숙 지음 / 뜨인돌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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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 받아야할 환자들, 진정으로 배려하라

 

- 김형숙,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 뜨인돌, 2012

10101 강연주

 

 

한정되어 있는 책속의 공간 도시, 도시에 사는 이들 대부분은 병원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는다.

이 책은 우리가 살다보면 맞이하게 되는 죽음을 다룬 책이라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그 중 유난히 눈에 뛰었던, 책 표지의 다 시든 장미 한 송이, 이 장미 한 송이는 도시의 건물들을 받히고 있을 수 있을 만큼 거대하지만, 너무 시들었다. ‘이 장미의 시듦은 병원 속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감당하는 데에 있어 어려움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추측해 보았고, 또, ‘장미의 크기는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한 누군가와 그 누군가의 주변 사람들의 큰 아픔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대부분 부정적인 생각 밖에 들 지 않는 것 같다. 그나마 부정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던 부분은 책 표지의 바탕색, 한 점의 때도 묻지 않은 하얀 색이었고, 왠지 그 하얀색은 이 책이 그만큼 깨끗하고, 거짓 없는 투명한 책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비록 선생님의 추천 도서 중 나의 진로인 간호사와 관련이 있어 보이는 책이 이 책 한 권뿐이라 이 책을 고르게 되었지만, 이 책의 바탕색이 현실적인 간호사로서의 삶을 알려 줄 것 같아 기대가 되었다.

 

 

죽음은 맞닥뜨려야 하지만, 제대로 된 이별은 맞이하지는 못하는 환자들

 

 

내가 간호사가 되고 싶은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이 아파하는 것과 아픈 사람들의 주변사람들도 아파하는 걸 차마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중환자실에서는 애초에 애도나 이별이 불가능한지도 모른다.’라는 말이 너무나 충격적이었고, 제대로 이별도 하지 못하는 현실이 있다는 게 너무 슬프게 다가왔다. 또, 중환자실 의료진들이 환자들과 그 환자들의 주변사람들이 이별할 수 있도록 도울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 가족과 제대로 작별인사도 못한 채 환자들이 떠나가는 사실이 너무 슬펐다. 이 내용들은 죽어가는 이들이 제대로 이별조차 못하는 현실적인 상황을 일깨워 주는 내용들 이었다.

나는 이제껏 간호사가 환자의 치료를 도와 환자의 쾌유를 돕는 직업이라고 만 생각해 왔다. 하지만 간호사는 환자의 버팀목, 친구, 보호자가 될 수도 있고. 또, 죽어가는 이들의 옆에서 이별을 도와줄 수도 있는 직업이었다. 아니, 죽어가는 이들의 옆에서 이별을 도와주어야 하는 직업이었다.

사실 나의 어머니는 간호사이시다. 그래서 예전에 한번 어머니가 일하시는 응급실에 어머니를 뵈러 간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우연히 눈을 부릅뜨고, 온몸이 파랗게 물든 한 남성분이 실려 오는 것을 본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어린나이의 내가 충격을 받을까봐 황급히 눈을 가리셨다. 하지만 그때 나는 열린 두 귀로 그 남성분의 따님이 다른 간호사분들에게 매달리며 우는 소리를 들었다. 당시에는 그저 어리둥절하며, 그 환자분이 삶과 이별하신지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때의 상황이 이해가 간다. 그 남성분은 가족과 이별할 틈도 없이 이별을 맞이하셨고, 그 환자분의 따님을 비롯한 가족들은 환자분을 떠나보냈다는 것이 믿기지 않고, 떠나보낼 수 없는 심정이셨다는 것을.

어머니는 내가 간호사가 되고싶다고 말씀 드렸을 때, 두 가지를 얘기해 주셨다. 첫 번째로는 병원에서 환자분들이 아픈 곳이 다 나아서 나가실 때 간호사로서의 보람을 느끼신다고, 두 번째로는 환자분들이 돌아가실 때도 많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아마 중환자실에서 일 해본 경험이 많으신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문득 겁이 났다. 내가 과연 중환자실의 간호사로서 일한다면, 잘 할 수 있을지, 환자가 보호자의 의지가 아닌 환자의 의지에 바탕을 둔 이별을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지, 즉 환자 자신이 이별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지를 말이다.

환자의 의지를 의료진의 판단보다 더 우선 시해야 한다.

 

 

이 책의 주인공은 딱히 한 사람으로 정해져 있지는 않았지만, 아마 52세의 심부전증 환자인 한 남매의 아버지가 아닐까 싶다. 그 남매의 아버지가 이 책에서 큰 분량을 차지하지는 않았지만, 친척도 없이 남겨질 남매를 두고 떠날 수 없었던 한 아버지의 마음이 절실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 이 52세의 환자분은 글쓴이의 마음처럼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로 침대에 기대어 계신 분이었지만, 만만치 않은 내공과 함부로 대할 수없는 위엄이 느껴지시는 분이었고, 인품을 확인해주듯 면회객들도 많은 분이셨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이 환자분의 가장 큰 인품은 자신의 자식들이 자신이 없어도 잘 살 수 있기를 바라며, 아버지로서의 마지막 한마디를 전하려 하는 마음이 아닐까싶다.

하지만 글쓴이인 김형숙씨를 비롯한 여러 의료진 분들은 중환자실에서의 많은 경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분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근육 이완제와 수면제 양을 계속 늘려 그 환자의 힘이 없어 약하게 까딱거리던 손가락을 멈추게 하였다.

만약 내가 그 많은 의료진중 한명이었다면? 어떻게든 그 분의 손가락이 무슨 말을 전하려 하는지 알아내려 애썼을 것이지, 약물을 투여하여 그 손가락을 멈추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와중에도 놀라운 건 수면제 양이 계속 늘어가는 상황에서도 글쓴이의 손바닥 안에서 손가락을 계속 움직이시는 52세의 심부전증 환자분의 마음이었다. 이 환자분은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찬분이신 것 같다.

사실 나는 어릴 적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셨고, 지금도 맞벌이를 하고 계신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는 못 받아 온 것 같다. 그래서 인지 책속에서 나의 아버지와 실제로 동일한 나이로 나오는 52세 환자분이 자식들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전하기를 더 응원했는지도 모른다. 또, 책속의 환자의 치료만을 중요시 여겼던 중환자실 의료진들을 더 탓했는지도 모른다.

 

'도대체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거지? 그때 멈추어야 했던 거야. 그때 기도삽관을 할 게 아니라 남매를 불러야 했던거야!'

 

-p123

 

솔직히 나는 위의 내용처럼 글쓴이, 김형숙씨가 뒤늦게 환자분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자신이 했던 행동을 후회하는 것처럼, 같이 52세 심부전증 환자분 치료를 도왔던 다른 의료진 분들도 후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는 '의료 집착적 행위'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 단어는 치료 불가능한 환자의 생명을 삶의 질에 대한 고려 없이 무의미 하게 연장하려는 행위를 말한다. 아마 52세 환자분을 둘러싼 의료진분들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한 생명을 구해보려는 행동과 의료 집착적 행위사이의 불분명한 경계에서 서 있던 게 아닐까 싶다.

언젠가는 두 행위사이의 경계가 분명해지길 바란다.

 

환자들은 각자 자기가 원하는 존엄하고 품위 있는 이별이 있다. 그것을 배려해라.

 

 

나는 이 책의 글쓴이인 김형숙씨가 이별을 준비하는 환자를 진정으로 배려하는 방법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려고 하셨던 것 같다고 생각한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진정으로 이별을 준비하는 환자를 배려하는 방법은 이 책의 부제목인‘어떻게 존엄하고 품위 있게 이별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만약,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책의 내용만으로 찾아본다면, ‘존엄하고 품위 있는 이별. 즉, 죽음을 맞이할 때는 준비된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맞이하여야 하고, 죽어간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끝날 때까지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해야 한다.’라는 형식적인 답이 될 수 도 있겠지만, 나는 개인마다 존엄하고 품위 있는 이별이 의미하는 것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 테면, 앞서 말했던 52세 심부전증 환자는 자신의 주변인들, 특히 자기의 가족들, 자신의 자식들에게 자신이 떠나도 잘 있으라는 말을 전한 후의 이별이라던 지, 자신의 자식들이 자신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확보한 후의 이별이 될 것이다. 하지만, 글쓴이의 존엄하고 품위 있는 이별은 자신과 자신의 주변사람들도 편안한 마음으로 그 순간을 한가롭게 즐기다 가는 이별일 것 이다. 이처럼 존엄하고 품위 있는 이별이 의미하는 바는 개인차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각기 다른 환자들의 아름다운 이별에 맞추어 이별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론, 부제목이‘우리가 오늘날 죽음을 상상해야 한다는 것은 존엄하고 품위 있는 이별과는 달리 개인마다 다를 것 없이 똑같다’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환자가 되어본 글쓴이

 

'간호사인 나는 친절하다.

"그냥 가만히 계시면 돼요, 환자분. 저희가 돌려드릴게요."

중환자인 나는 그 친절이 무섭다.

"잠깐만요. 내가 돌아누울 수 있어요.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p302

 

글쓴이가 간호사로서의 느낀 점이 줄줄이 나오던 앞 내용과는 달리, 마지막 부분에서는 환자로서 자신이 직접 느낀 환자의 감정과 생각을 드러낸 것이 인상 깊었다. 굳이 마지막 부분에 자신이 중환자가 되어 중환자실에 입원했던 경험을 글로 내놓은 것은 그때 자신이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을 생생하게 전달함으로써 진정으로 환자에 대한 배려는 무엇인지, 환자들의 마음이 어떠할지 등, 그간 힘들었고, 힘든, 힘들 환자들의 속마음을 대변하는 짙은 호소를 느끼게 해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덧붙여 말하자면, 글쓴이의 환자로서의 경험이 진정으로 환자를 배려하는 마음을 알려주고자 하는 글쓴이의 의도를 이끄는 듯하였다. 또, 중환자를 배려하고 존중하기에 준비된 간호사가 될 수 있게 한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간호사로서 중환자실이던, 일반병동이던 그 병동의 환자가 되어보아야만 진정으로 환자를 배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이 책을 읽고 환자를 진정으로 배려하는 마음이 더욱 커지길 바라는 글쓴이의 의도가 나에게 잘 전달된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오늘 죽음을 상상해야 한다.

 

 

나는 처음에 책 표지의 장미는 도시의 건물들을 받힐 수 있을 만큼 크지만 다 시들어 버린 장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도시 속 병원의 존중받고 배려 받아야 할 존엄하고 품위 있는 죽어가는 이들의 이별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또, 책의 바탕색은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거짓 없고, 투명한 현실적인 간호사로서의 삶으로 받아 들 일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특히, 나처럼 간호사를 꿈꾸는 사람들은 아직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은 자신들의 머릿속이라고 받아 들였으면 좋겠다. 너무 과하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의 글쓴이 김형숙씨는 우리가 언젠가는 죽음과 맞이하여 죽어가는 이의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될 것이고, 아니면 손을 청하는 사람이 될 것이므로 그때 고맙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은 놓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죽음을 상상해야 한다는 걸 무엇보다 전달 하고자 하셨기 때문에 전혀 과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 지금의 나의 나이는 죽음과는 먼 나이일 수도 있겠지만, 존엄하고 품위 있게 이별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고, 죽음을 상상해 본다면 삶의 소중함과 죽음에 대한 성찰이 남기 때문이다.

나는 삶의 소중함과 죽음에 대한 성찰로 너무도 당연한 것이지만, 최선을 다해서 오늘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나의 꿈인 간호사를 이루기 위해 더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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