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믿음
헤르만 헤세 지음, 강민경 옮김 / 로만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해로 아이들이 모두 성인이 되고 내 곁을 떠나고 나서 알수 없는 이상한 마음 때문에 이리저리 흔들릴 때가 많았다. 그래서 책을 예전보다 더 읽고 있는데 유독 '본질'이라는 말이 나오면 눈길을 멈추게 된다. 사십춘기도 훨씬 지난 지금 결국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되기 때문인 것 같다. 우연한 기회에 헤세의 <나의 믿음>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는데 평소 가지고 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정답은 아닐지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을 가지며 책장을 펼쳤다.

헤세는 독실한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나서 종교적인 분위기에서 자라났다. 하지만 헤세는 기독교 뿐만 아니라 불교, 힌두교, 가톨릭등의 종교들과 공자, 노자 등 동양철학에도 심취했고 그와 관련된 글도 계속 쓰면서 살았다. <데미안> 그리고 <유리알 유희>같은 작품을 읽으면서 나는 그의 종교와 신에 대한 방대한 지식과 그것을 해석하는 방식에 놀라곤 했다. 어떻게 동서양의 거의 모든 종교와 사상에 대해 이렇게 통달할 수 있을까. 불교에 심취했던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그는 불교신자였을까? 신에 대한 경외와 회의가 동시에 느껴지는 그의 글을 볼 때면 헤르만 헤세의 개인적인 신앙이나 종교적 신념에 대해 궁금증을 가진적도 많았다. <나의 믿음> 책을 읽고 나면 그 궁금증이 해소될거란 기대도 있었다.

<<나, 즉 '자아'란 추구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유럽의 지식 세계를 제외한, 유럽 밖에서는 이미 3세기 경부터 그'나'라는 것이 인간이 각자 느끼는 바에 다른 존재가 아니라 모든 영혼의 가장 내면에 있는 근본적인 개념이라고 여겼습니다. 인도인은 이를 '아트만'이라고 부릅니다. 초월적이고 절대 변하지 않는 자아'라는 뜻이지요.>>

내가 책을 읽고 마음 공부를 하고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나의 '본질'을 찾기 위해서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본질'이라는 말을 헤세가 잘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초월적이고 절대 변하지 않는 자아'의 모습과 가장 가깝게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저는 시대와 자신에게 절망했어도 제자리를 지킬 것이고, 혼자가 되거나 비웃음을 산다 하더라도 삶과 삶이 주는 의미에 대한 경외심을 절대 버리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하면 세상이, 혹은 삶이 더 나아지리라는 어떤 희망을 가졌기 때문은 아닙니다. 제가 신을 경외하기에, 신에게 헌신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이기에 그렇습니다.>>

헤세는 특정 종교에 안착하지는 않았지만 신에 대한 경외심만을 잃지 않으려고 했다. 형식적인 것에 얽매이는 건 싫어했지만 그는 분명 종교적인 성향의 사람이었다.

<<제 믿음은 말로 가볍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표현하고자 한다면 이렇게 할 수 있겠지요.
"무의미해 보이더라도 결국 삶에는 의미가 있다.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것을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면 기꺼이 그럴 준비가 되어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믿음'은 내가 처음 생각했던 '종교'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그는 특정한 종교나 종파에 소속된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사실이 그가 신을 부정한다거나 자신의 영혼의 고양을 위해서 종교적인 활동을 하지 않고 살았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다.

끝날 것 같지 않던 기나긴 육아의 시간이 '마침내' 끝나고 갱년기의 한복판에 서 있는 나는 아직도 산다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을 때가 많다. 삶이라는 것이 그 의미를 찾아 헤매는 과정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평생 우울증에 시달리고 수많은 종교와 사상을 연구하고 실제로 신봉하기도 했던 헤세는 말한다. '결국 삶에는 의미가 있다'고. 그 말이 반가웠다. 이리저리 흔들리더라도 궁극적으로는 나도 삶을 긍정하고 싶었던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