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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책상 - 꿈꾸는 청춘을 위한 젊은 시인들의 몽상법
김경주 외 지음, 허남준 사진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고등학생 때 나는 시인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 동기는 기억나지 않으나 어릴 적부터 키워 온 어떤 특별함이나 비범함, 비다수에 대한 열망의 발로라

생각하고 있다.

표현하고 싶었고 그걸 넘어서 뽐내고 싶었던 그때에 내가 가능하다고 느낀 것은

외모도 아니고 힘도 아닌 오로지 책뿐이었다.

그러나 책만으로는 부족했으므로 그 광막함에는 내가 점유할 자리가 뚜렷하지 않았으므로

한 번 더 선택한 것은 시였다.

그렇게 나는 이미지를 설정하고 소비하고 또 향유하고 나름의 만족을 얻어 가는 중이었다.

문제였다. 이런 유의 기원이 꿈꾸는 '시인'이란 본질로 나아감에 있어 두터운 거품으로 쌓이는지 너무나 무감했던 것이다.

 

설익은 이해로, 시는 어려운 혹은 흔하지 않은 어휘의 적당한 배치였고

지금도 이해도 오해도 되지 않고

감응도 감흥도 없는 시라면 그렇게 느껴진다.

 

어느샌가 시야는 교과서와 교사가 가르쳐 준 그 밖으로 나 있었고

같은 것으로 호명되는 것들의 서로 전혀 다른 현란함으로 인해

그리고 못 할 말의 서슴없는 향연으로 인해 나는 참계기를 맞게 되었다.

 

시인이 되려면 젊어야 했고 젊은 시를 읽어야 했는데

젊은 시를 읽는 도중에 발견한 시인의 책상이다.

반 이상이 내가 알고 있는 인물이었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종이를 넘길 수 있었다.

 

나는 사람의 내면을 읽는 것에 구미가 돈다.

관심 있는 분야의 전문가라는 사람의 에세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오은을 읽고 행복해졌다.

그의 글을 따라가며 자연스레 그려지는 그림에 동화되었다.

내가 그와 식당에 딸린 방을 공유하고 있는 까닭이었는지 모르지만

문득 천진해졌고 깔깔대는 표정의 나를 조금 더디게 인식했다.

진솔하고 담담한 그의 책상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이 시작으로 책이 내내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선입견이 들었다.

 

박성준을 읽고 아쉬워졌다.

그의 책상은 책상이 아니라 침대라서 그런 건 아니다.

소문에 의하면 고등학생 때부터 그의 시와 관련된 수상경력이 화려하단다.

젊은 나이에 출판계의 메이저로 불리는 곳에서 등단을 하였다.

어쩐지 난 그 동력이 그의 유년을 휘감는 기구한 온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거다. 한마디로 난 그정도의 것이 없다. 그래서다.

같이 모텔에 가 자살을 하든 시를 쓰든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박성준 시인은 담배를 피운다.

 

김경주를 읽고 심심해졌다.

몇 년 전 기성의 평론가와 시인들이 뽑은 "앞으로 잘나갈 것 같은 젊은 시인 점수 매기기"

에서 압도적인 점수로 1위를 한 인물이다.

요 말에 홀려 복간된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를 비롯해 다수의 저서를 구입해 보았지만 

계속 의문으로 굴려 만든 눈사람 같은 시인이었다.

근데 그의 에세이, 참 심심했다. 천 번은 때려치우고 싶었던 책상? 대수롭지 않았다.

근데 '대수롭지? 대수롭잖아..'하는 것 같았다.

이상하고 이상하게 성의 없이 쓴 원고 같았다.

그리고 김경주 시인도 담배를 태운다.

 

서효인을 읽고 친근해졌다.

아주 좁은 공간에서 글을 짜내는 시인이었다.

이 시인부터 형식의 변화가 시작 되는데 나쁘지 않았다.

시인으로 추측되는 화자 말고 여러 화자가 있는데

시인으로 추측되는 화자 말고는 관심이 적었다.

"여기에 여자를 데려와 잘 수는 없겠군."

왠지 나는 남자를 데려와 자 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었다.

그는 끽연하는지 모르겠다.

 

박진성을 읽고 조용해졌다.

그뿐이다.

 

김승일을 읽기 전, 팬심이었다.

얼마 전 그의 시집 에듀케이션을 기분 좋게 읽은 터였다.

그는 어른스럽지 않다.

자신의 지인들의 실명(그렇게 믿고 있다)을 밝혀가며 쓸데없이 구체적으로 

발화하고 있었다.

엄마와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나는 귀여웠다 그가.

김승일 시인은 담배를 피울까?

 

이이체를 읽고 짜증스러워졌다.

그는 나와 나이가 가장 유사하고

살아 온 곳도 가장 유사한 시인이다.

그런데 난 그와 혹은 그의 글과 절대불통했다.

저어 위의 이해도 오해도 없고

감응도 감흥도 없는 시가 그리고 글이

바로 이이체다.

짜증스러워야 할 정당성과 합리성은 없다.

근데 그렇다.

 

유희경을 읽고 그리워졌다.

그정도다.

 

최정진을 읽고 재미있어졌다.

그를 좀 더 알고 싶은 마음은 생겼다.

그래, 시가 '좋다'에서 끝나면 좋지 못한 듯도 하다.

 

황인찬을 읽고 설렜다.

느닷없이 설레게 한다.

 

 

 

내 책상은 아직 시인의 책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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