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의 맛 철학
정수임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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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어려운 것, 철학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 심오한 그 무엇으로 우리에게 선입견을 갖게 하는 학문이지요.
철학이라고 하면 고매한 철학자들의 머리 아픈 이론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열일곱의 맛 철학>을 읽다 보면 철학은 어쩌면 어려운 게 아니고 '우리도 늘상 하고 있는 아주 자연스러운 생각'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어요.
무언가를 보고 듣고 그에 대해 자신만의 생각을 정리해보는 것만으로도 철학에 가까워지는 게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책이 바로 <열일곱의 맛 철학 >이었답니다.
 



맛 철학이라는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이 책은 철학의 이야기를 음식으로 시작해요.
열일곱 살의 청소년이 블로그에 글을 올린다는 재미있는 발상으로 시작하는데요.
우연하게 글쓰기 동아리에 들어간 풍미는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먹는 이야기로 글을 한번 써보라는 국어샘의 권유로 블로그를 개설하고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사실 저도 블로그를 하고 글을 쓰지만 글이라는 것이 잘 쓰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쓴다는 것 자체는 어려운 게 아니죠.  한번 두 번 쓰다 보면 기록의 묘미를 느낄 수 있고 또 쓰기가 반복이 되면 실력도 조금씩 향상되구요.
글을 쓰다 보면 저절로 '생각'이라는 것을 더 하게 되고 그것이 이 책처럼 철학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책이 가장 말하고 싶은 건 철학이라는 것이 나와는 무관한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인 듯해요.
철학은 철학자만이 할 수 있는 거라는 큰 틀을 깨고 누구나 철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게 아닐까 싶네요.
17살 풍미가 가장 좋아하는 먹거리를 가지고 글을 쓰기 시작하는데 그 글에서 철학이라는 것이 시작되고 있거든요. 철학이 뭔지는 잘 모르지만 삶과 죽음의 문제와 밀접하다는 것과 그것이 먹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먹거리와 철학의 연결고리를 찾은 거죠.
맛으로 즐거움을 주던 한 식빵 가게가 프랜차이즈에 밀려 문을 닫게 되는데 이것을 통해서 자본주의와 생태계 피라미드,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데요.
글을 쓰지 않았다면 문 닫는 식빵 가게를 통해 더 이상 맛있는 식빵을 못 먹겠구나 하는 아쉬움으로 끝나지 않았을까요? 자본주의, 생태계 피라미드, 그리고 나에 대해서 생각의 연결고리가 이어지지는 않았겠지요.
철학의 시작은 사고이겠지만 그것을 더 깊이 있게 만들어 주고 이어지게 하는 건 글쓰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풍미의 글에 깊이를 더해주고 생각의 폭을 넓혀주는 쉼 샘의 한 스푼~
풍미의 글에 딱 한 스푼만 얹겠다는 선생님의 글이지만 풍미의 글에서 시작된 철학의 씨앗이 열매로 정리되는 느낌이 들게 합니다.
 


풍미가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는데 그 글에 자신을 아는듯한 누군가가 덧글을 달기 시작합니다. 사실 블로그가 사적인 공간이면서도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간이기도 하지요. 처음에 저도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나를 아는 사람은 내 글을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 생각, 내 글 솜씨를 오픈하는 게 영 부끄럽더라구요. 풍미가 느끼는 감정에 저 역시 공감을 했기에 이 글을 읽으면서 더 몰입을 했던 것 같아요. 매운 떡볶이를 먹으며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해소해보고자 했던 풍미는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감정의 실체가 부끄러움이었다는 깨닫게 되고 자신이 글을 쓴다는 게 부끄러워해야 할 일인가로 생각이 이어집니다.
 부끄러워하는 일도 때로는 필요한 것이며 과연 부끄러워하면 뭐가 좋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데요.
벌써부터 쉼 샘이 어떤 코멘트를 달아주실지 궁금해지더군요.
 

쉼 샘은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인 수오지심에 대해 알려주시네요.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은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악함을 미워하는 마음과 관련되어 있다고 합니다.
도대체 부끄러움이 무엇이길래 맹자가 이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했을까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데요. 일제 강점기의 시인 윤동주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안타까움 속에서 부끄러움을 느꼈으며 대통령을 탄핵시켰던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부끄러움이 현실을 바꾸었음을 알려주셨어요.
우리가 작게 생각했던 부끄러움이 생각보다 큰 힘을 가지고 있으며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시작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네요.
 



아이들이 가장 철학적일 수 있는 순간은 바로 공부와 자신의 꿈에 대해 고민할 때가 아닐까요?
이만큼 살아보니 공부가 세상의 전부는 아니지만 학생 때는 그것이 전부가 되어 버리고 그것이 나를 평가하는 기준과 잣대가 되어 버리니까 말이죠.
냉장고 안 각자의 자리에 박혀있는 31가지 아이스크림이 교실 속의 자신들 같았다는 풍미의 이야기에 큰 공감이 되더군요. 선택받는 아이스크림과 인기 없는 아이스크림. 선택받지 못해서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못 먹을 맛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가장 팔리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맛을 선택한 풍미는 가끔은 다른 기준으로 다른 맛을 먹어어겠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렇게 조금씩 생각을 하기 시작하고 그 생각에 깊이가 더해지면 기준이 달라지는 사람이 되겠지요. 가벼운 사람보다는 묵직한 사람이 될테구요.
이 책의 끝에 풍미가 어떻게 변모해 갈지 참 궁금해지더군요.
 



점점 글에서 풍미가 달라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어요.
글을 쓰다 보면 그동안과는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돌아보게 되고 좀 더 진지해지죠. 그게 풍미의 글에서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집에 의외로 먹을게 제일 없다는 풍미의 깨달음이 주부로서 왜 그리 공감이 되던지요.
그리고 냉장고에 있던 김치와 고추장을 밥에 비벼 김으로 싸먹으면서 외할머니가 해주시던 삼시 세끼가 당연한 것이 아니었으며 정리되지 않은 집을 바라보며 가장 중요하고 사적인 공간인 집이 무관심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요. 외할머니께 전화를 드리고 집을 정리하는 풍미를 보면서 글쓰기와 철학적 사고가 풍미를 변모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답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개인적인 사소한 일들부터 전 국민적으로 화제가 된 일들까지 다양하기도 하고 소소하기도 한 이야기를 음식과 연계하여 풍미만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어요.
17살 고등학교 남학생인 풍미의 생각과 글을 통해 우리는 풍미를 따라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고 쉼 샘의 글을 통해 좀 더 깊이 있는 사고를 하게 됩니다.
철학이란 어려운 것이 아니구나, 누구나 철학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이 책을 읽으면서 글을 쓴다는 것의 힘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저도 블로그에 다양한 글을 쓰지만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하는 일은 드물거든요.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글을 써보고 싶기도 하지만 이내 내 글이 미천해 보여 지워버리고 말아요. 풍미처럼 용기를 내보면 시간이 흐른 후 훨씬 훌륭한 글이 될 텐데 그럴 기회조차 나에게 주지 않았구나 싶어서 아쉬운 마음도 들었답니다.

철학도 좋지만 저는 글쓰기의 힘을 이 책이 더 강하게 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쓴다는 것은 그저 글자를 끄적이는 게 아니라 세상을 더 관심 있게 바라보게 하고 살아있는 언어를 만들어 내며 나만의 가치관을 만들어 내게 하니까요.

이 책 참 재미있습니다.

제가 혼자 읽다 여러 번 킥킥거리니까 13살 딸도 아주 궁금해하더군요.

제가 다 읽고 건네주겠다고 하니 꼭 읽어본다네요.

마음이 풍선처럼 언제 터질지 모를 듯한 불안한 사춘기 딸아이에게도 좋은 메시지를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이는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무슨 생각을 하게 될지 저는 그게 더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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