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들의 나라 대산세계문학총서 179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황선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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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들의 나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 저마다 애를 쓴다. 

그 인물들 중에서 유독 응원하며 마음으로 쓰다듬었던 인물이 바로 아이샤였다. 레몬도 오렌지도 아닌 아이샤. 백인도 유색인도 아닌 아이샤. 모로코에 살고 있지만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아버지의 외모를 빼닮았지만 어머니의 언어인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아이샤, 누구도 그런 그 애에게 <넌 모로코인이다>, <넌 프랑스인이다> 정해주지 않아서 어느 편에도 속하지 못하는 고작 여섯 살의 아이. 


아이샤는 교실 벽에 기대서서 뼛속 뿐만 아니라 마음속까지 스며들어 어루만져 주는 겨울 햇살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느티나무로 둘러싸인 담장 안에서 놀고 있는 여자아이들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모로코 소녀들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서 비밀 이야기를 속닥댔다. 아이샤는 갈색 빛깔의 긴 머리털을 땋은 다음 이마 위에 가느다란 흰 머리띠를 한 그 여자아이들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 아이들 대부분이 기숙사에서 생활하였으며, 금요일마다 아이샤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엄마 마틸드의 고향 알자스만큼이나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카사블랑카, 페스 또는 라바트 등 가족 이 살고 있는 도시로 돌아갔다. 아이샤는 원주민도, 그렇다고 해서 사방치기 놀이를 하고 있는 저 농부, 모험가, 식민 정부의 공무원 딸들로 구성된 유럽 아이들 중 한 명도 아니었다. 자신이 어느 쪽에 속하는지 알 수 없었기에 아이샤는 뜨겁게 달구 어진 교실 벽에 기댄 채 혼자 있었다. 하루가 너무 기네. 너무 길어. 엄마는 언제 올까?이런 생각을 하면서. 


- 본문 p.94


현대 사회에서도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계속된다. 나는 누구인가? 몇 해 전 프랑스 일간지에서 "너희 반에 아시아 아이들이 많니?"하고 아빠가 묻자 초등학교 예비반에 다니는 여섯 살 딸이 <우리 반에는 학생들 뿐이에요. 착하고 상냥한.> 하고 대답한 일화를 다룬 것을 본 적이 있다. 피부색으로 나뉘지 않는 정체성, 종교에 의해 구분되지 않는 정체성, 성별에 의해 차별받지 않는 정체성이야 말로, 타인들의 나라가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공동체 안에 속한 이들이 개개인으로서 고유의 존엄성을 존중받아야 하듯이 타인들의 나라 2부에서는 아이샤를 비롯해 수많은 트라우마와 마주하며 소설 속 지난한 현실을 견디고 있는  마틸드, 아민, 셀마, 무라드, 오마드...가 그들 자신의 나라에 살게 되기를 기원하며 마지막 장을 덮었다.

처음으로 농장을 방문했던 날, 마틸드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네‘하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런 고립된 상황이 불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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