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모든 것의 시작 - 우리 시대에 인문교양은 왜 필요한가?
서경식.노마 필드.가토 슈이치 지음, 이목 옮김 / 노마드북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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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심심찮게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을 보고 듣게 된다. 전통적으로 학문의 전당인 대학에서조차 인문학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아예 인문학 관련학과를 폐지하는 학교가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 그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이공계 등에 비해 취업에 불리하기 때문이다.

지난 6, 한남대 철학과 학생들로 이뤄진 철학과 폐지 비상대책위원회27일 대전 대덕구 오정동 한남대 본관 앞에서 철학의 죽음장례식을 가졌다. 철학과 답게 니이체의 신을 죽었다라는 명제를 빌려와 철학은 죽었다라는 펼침막을 걸고 간단한 몸짓으로 학교의 방침에 반대하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한남대는 독일어문학과와 함께 철학과를 폐과하기로 결정했다. 같은 대전지역에 있는 대전대도 지난해 철학과를 폐지하고 올해부터 신입생을 뽑지 않았다. 대전대 관계자는 “2, 3년 전부터 자체 검토를 하고 컨설팅도 받아본 결과 신입생 모집이 어렵고 취업률도 떨어져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각 대학에서 어학 관련 학과도 수난을 겪고 있다. 배재대는 국문학과를 한국어문학과로 바꿨다. 한국에 정착하는 이주민1백만 명을 넘는 시대에 맞게 문학을 공부하는 학과가 아니라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과로 바꿨다. 배재대는 프랑스어문화학과와 독일어문화학과를 폐과했고, 목원대는 독일어문화학과와 프랑스어문화학과를 국제문화학과로 통폐합했다. 건양대도 2005년 국문학과를 문학영상학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지난해 완전 폐지했다.

 

1995년 김영삼정부는 일정 기준만 충족하면 마음대로 대학을 설립할 수 있게 했다. 그러자 대학 수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진 뒤 잠시 주춤했지만 2년이 지나면서붙터는 대학과 대학생 수는 다시 증가하였다. 1998년 김대중정부는 전문대도 대학명칭을 쓸 수 있게 했다. 정권 말기인 2002년에는 국 공립대 등록금도 대학 자율에 맡겼다. 대학설립 기준을 대폭 완하함으로써 1995년부터 2005년까지, 10년 새 80여개 대학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다. 2010년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 대학 가운데 상당수는 교원확보율 최소화조차 충족하지 못할 만큼 부실화가 심각했다.

이 과정에서 2000년엔 대학생 수가 2829천명, 대학 수는 4년제 대학만 190개가 됐다. 2005년에는 사이버대학, 특수목적대학 등을 합해 대학 수가 430개가 넘었고 2010년에는 4년제 대학만 200, 학생이 255만 명을 넘었다. 대학 진학률은 80퍼센트를 넘겼다.

최근에는 학교 경영 상태가 극도로 악화되어 최악의 경우 학교문을 닫게 되는 대학이 점차 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대학선진화위원회가 2009년 말 가려낸 부실 대학 대상을 보면 4년제 일반대학과 전문대(2~3년제) 10여 곳이 그러하다고 하였다. 이런 실정에서 대학이 살아남기 위해 실용성을 내세운 학과를 선호하는 것은 정해진 과정일 수 밖에 없다.

 

이 책의 공저자인 카토 슈이치가 지적한 말은 한국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인문교양을 사지로 내모는 또 한 가지 이유는 미국이나 유럽, 일본 같은 소위 민주주의적이고 선진적인 공업국가의 일반인들이게 고등교육이 보급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나타난 아주 커다란 사회현상이다. 어느 나라건 그 전까지는 대학 졸업자는 소수였다.

이러한 고등교육의 대중화는 교양주의를 무너뜨리게끔 작동한다. 음풍농월하는 한가로운 인문교양보다는 구체적인 직업과 직결된 실용적 능력을 연마하려는 욕구가 강해지기 때문이며, 이는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다.‘

 

대학이 아예 기술자 양성소로 되게 하는 데에는 교육정책을 수립하는 교육관료들이 누구보다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선다.

2017학년도부터 시행될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 공청회가 지난 6월에 열렸는데, 교육부가 사전에 지정한 토론자들은 간소화 방안 중 2017년 수능 개편 방안으로 현행 골격을 유지하는 1, ·이과별로 교차해 탐구 과목을 선택하는 2, ·이과 구분을 완전히 없애 모든 학생이 공통으로 국어·수학·영어·사회·과학·한국사 시험을 치르는 3안에 대한 의견 제시에 집중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정책본부장이 공개한 고교 교원 723명 대상 설문조사에서 1안 지지율은 26.1%, 2안이 35.7%, 3안이 36.4%로 수능의 변화를 원하는 쪽에 선 교원이 3분의2를 넘었다. ·이과 완전 융합안인 3안 지지자인 박성현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은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성공 배경으로 인문학적 기반이 함께 어우러진 기술을 지적하는 융·복합 시대에 문·이과 분리 교육은 부적절하다고 설명했다.

 

곧 이 시대 고등교육이 스티브 잡스를 전형으로 삼아 아예 인문학을 묻어버리고자 하는 것이다.

대학이 인문학보다 실용성을 내세우다보니 지식인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교양교육도 점차 설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교양을 뜻하는 영어 컬져(culture)의 원뜻은 '경작(耕作)'이고, 독일어의 빌둥(Bildung)'형성'이라는 뜻임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여기에는 인간정신을 개발하여 풍부한 것으로 만들고 완전한 인격을 형성해 간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역시 공저자인 노마 필드는 교양의 일환으로서 비판적 인식을 거론했다. 비판적 인식이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상을 정확히 포착하는 능력즉 비판적 사고를 말한다. 더 정확하게 말해, 비판적 사고는 어떤 사태에 처했을 때 감정 또는 편견에 사로잡히거나 권위에 맹종하지 않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분석·평가·분류하는 사고과정. , 객관적 증거에 비추어 사태를 비교·검토하고 인과관계를 명백히 하여 여기서 얻어진 판단에 따라 결론을 맺거나 행동하는 과정을 말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교양은 사실 비판적 사고를 빗댄 말이다. 이 책의 공저자인 서경식은 힘주어 말한다.

 

실제로 우리는 자신이 사는 시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사실 우리는 자신이 있는 곳에 틀어박혀 안쪽만 바라본다. 외부에서 잔혹한 살육이 자행되고 있건 기아에 허덕이고 있건 간에, 나의 내부만 들여다보며 살아간다. 이건 반전된 낙관주의optimism 이다.‘(이 책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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