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 개정판
김훈 지음, 문봉선 그림 / 학고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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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남한산성'에서의 인조의 태도는 옳은 것인가? 

 

 남한산성은 1636년 겨울, 즉 인조 14년에 일어났던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책이다. 인조와 신하들이 남한산성으로 피난을 가있는 동안 신하들은 의견을 하나로 모으지 못하고, 특히 청과 화친할 것을 주장하는 이조판서 최명길과(주화파) 청과 싸울 것을 주장하는 예조판서 김상헌의(척화파) 대립이 계속된다. 이러한 신하들 사이에서 인조는 결단력이 없는 무능한 모습을 보인다.

 

  나는 인조의 이러한 우유부단함이 삼전도의 굴욕이라는 치욕의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이 책 내에서 그려진 조정의 상황은 신하들이 서로의 의견을 내세우다가 언성을 높이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인조는 결국 유의미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신하들을 돌려보내는 것이 대부분이다. 또 책에서는 인조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여러 번 볼 수 있다. 물론 왕도 사람이기 때문에 비통한 마음에 울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나라를 책임져야 하는 임금이 국가의 생사가 걸린 상황에 갈팡질팡한 모습을 보이고, 눈물을 여러 번 보인다면 임금의 위상은 자연히 낮아질 것이다. 칸과 용골대가 이미 조선을 업신여기고 있는 상황에서 군사와 백성들까지 무능한 조정을 하찮게 생각하고 조롱하였기 때문에, 그 상황에서 최선의 결말을 맞이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내가 척화와 주화의 옳고 그름을 논하면서 인조가 그 둘 중 어느 한쪽을 반드시 선택했어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또한 그 둘 중 무엇을 선택했더라면 더 나은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고 한탄하는 것도 의미 없는 일일 것이다. 어찌 됐든 그때의 인조의 선택과 행동이 현재의 역사를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조의 다른 결정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조가 일찍이 청과 화친의 길을 열었어도 충분히 치욕을 당할 수 있고, 맞서 싸우기를 선택하면 아예 나라가 풍비박산 나는 등 삼전도의 굴욕과 같거나 그 이상으로 나쁜 결과를 낳았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위의 이야기들은 비생산적이고 내 논점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조의 태도이다. 국가의 안위가 통째로 걸려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인조가 주화, 척화처럼 중대한 일 뿐 아니라 신하들이 상대적으로 작은 다른 문제들(군사들의 의식주 문제 등등)을 물으러 왔을 때에도 문제에 대한 답을 내리기를 회피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인조의 이러한 행동은 보호해줄 수 없는 책임회피이고, 삼전도의 치욕에 대한 책임을 인조에게 돌리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또 친명배금 정책을 펼친 인조는 언제 성벽이 함락될지 모르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명나라를 위한 춤을 추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칸과 용골대가 그 모습을 지켜볼 만큼 성에 근접해있는 상황에서, 명에게 예를 갖추기보다는 국가를 위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 우선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러한 인조의 행동을 보았을 때. 당시 인조는 무능한 왕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도 뉴스를 보면 국회에서 여러 국회의원들이 서로에게 언성을 높이고 삿대질을 하며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00명의 국회의원들이 뜻을 하나로 모으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병자호란 당시 나라의 앞날이 걸린 일을 논할 때도 신하들은 자신의 의견만을 내세우기에 급급했다. 그 의견들이 나라를 걱정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결국 제대로 화친을 맺지도, 제대로 저항하지도 못한 채 청에게 굴복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지도자의 능력은 중요하다. 인조처럼 옳은 선택은커녕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지도자는 결국 몰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 현재 코로나가 확산되고 있는 이 상황에, 지도자들이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하고 책임을 회피하며 결정을 미루었다면 지금처럼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코로나의 확산을 잘 막아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남한산성의 저자 김훈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무능한 지도자의 위험성에 대해 말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삼전도의 굴욕은 우리나라의 씻을 수 없는 치욕적인 역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치부를 꺼내어 책을 쓴 것은 다시는 이러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우리나라에 또 그때와 같은 위험이 닥치지 아니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김훈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무능한 지도자의 위험성, 그리고 현명한 지도자의 필요성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며 경각심을 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현명한 지도자가 되기란 쉽지 않다. 지도자도 결국 사람이기 때문에 충분히 도망치고 싶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들이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삼전도의 굴욕과 같은 상황을 다시 겪게 될 수도 있다. 꼭 정치 세계에서의 지도자만을 한정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분야에서든 이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인조의 무능한 지도자로서의 모습을 바탕으로 진정한 지도자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통해 본인이 속한 분야에서 현명하고 결단력 있는, 진정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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