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성장 개념어 사전 - 무소유가 죽음이 아니듯, 탈성장도 종말이 아니다
자코모 달리사.페데리코 데마리아.요르고스 칼리스 엮음, 강이현 옮김 / 그물코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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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스미스(1723~1790)와 케인즈(1883~1946) 사이를 이은 가장 위대한 경제학자 두 사람을 꼽으라면 리카도(1772~1823)와 마셜(1842~1924)을 고르게 될 것이다. 허나 맬서스(1766~1834)를 빠뜨리기가 어쩐지 아쉽다. 오늘날 대학의 경제학부에서 마셜의 한계이론이나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을 건너뛰고 미시나 국제경제학을 가르치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그에 비해 맬서스는 쿠즈네츠와 나란히 거시경제교재 토픽란에 간략히 소개되는 수준에 그칠 터이다. 그러나 맬서스는 현대 사상계에 강력한 상속자를 둘이나 두고 있는 숨은 거인이다. 다윈의 생존경쟁과 케인즈의 유효수요 개념들은 맬서스로부터 전래한다.
우울한 예언자 맬서스는 사는 동안 정력적인 리카도에게 한 수 접혔고 죽어서는 쿠즈네츠의 낙관론에 밀렸다. 그렇다고 해서 맬서스의 인구론이 반증되었다고 오판해서는 안 된다. 생산 증가가 인구 증가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맬서스의 예견에 대해서 쿠즈네츠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혁신도 잦아져 생산을 발맞춰왔다고 경험적인 반론을 폈다. 앞으로도 때마침 혁신이 꼭 일어나줄 거라고 이론적으로 보증한 것이 아니다. 더구나 제본스의 역설에 따르면 신기술이 자원 이용의 효율성을 높여줄 때마다 자원이 절약되기는커녕 총소비는 오히려 증가해온 것이 그동안 세상사의 이치였다. 그러니 부존자원 고갈에 허덕이게 될 머잖은 장래엔 맬서스가 경제학의 '본좌'로 돌아올지도 모른다.
맬서스의 어두운 비전을 피하는 방법은 쿠즈네츠 식의 영원한 혁신이라는 도박과, 탈성장(degrowth)이라는 정반대의 대안밖에 없다. 탈성장은 인구를 줄이고 생활방식을 바꿈으로써 생태계와 공생하는 경제로 나아가는 방법이다. 탈성장이 가능한지, 인류가 탈성장을 주체적으로 원하게 될지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마침 이 대안의 이론적 뿌리, 개념적 핵심, 실천의 레시피와 사례를 담은 책이 번역되어 나왔다. <탈성장 개념어 사전>(달리사, 데마리아, 칼리스 엮음, 강이현 옮김, 그물코, 2018)이다. 월가를 점령하는 것 외에도 수많은 대안 기획들을 담았다. 진보파뿐만 아니라 보수파도 읽고 싶어질 책이다. 우리 존재의 집을 도박에 맡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투쟁적 강령이 아닌 이성적 목소리로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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