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니 미첼 - 삶을 노래하다 현대 예술의 거장
데이비드 야프 지음, 이경준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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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탄치 않은 인생의 풍파를 뚫고 진주처럼 빛나는 노래를 만들어낸 조니 미첼의 이야기.

 

20세기 최고의 싱어송라이터, 시대를 앞선 아티스트, 내면에서 울려오는 소리를 이 세계의 언어로 그려낸 음유시인. 그녀의 지인들의 인터뷰를 모아 생생하게 재구성한 조니 미첼의 전기 <조니 미첼(삶을 노래하다)>. 평소 가게에서 사서 먹기만 했던 과일을 그것들의 산지에서 만나는 느낌이랄까. 조니 미첼의 아름다운 노래들이 어떤 토양에서 솟아났는지, 그 열매들이 어떻게 생긴 가지들에 매달려 있었는지를 보게 되리라.

 

말 수레를 보고 자란 마지막 세대인 조니 미첼은 캐나다 중부 시골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학창시절부터 남다른 창의력과 독창적인 표현방식을 보여주었지만 그것이 온전히 이해받거나 인정받지는 못하였고 그저 마음속에 간직해둔 채 훗날 꽃피울 것을 기약할 뿐이었다. 어쩌면 예술가적 소질보다도 뛰어난 운동능력을 장기로 내세우는 편이 나았던 조니는 10살 무렵 소아마비를 겪으면서 일찍이 절망의 늪을 경험해야만 했다. 의료진들의 비관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강한 의지로 신체를 단련하며 소아마비를 극복하는데 성공한다. 인생의 난관에 봉착했을 때 불굴의 의지로 정면돌파하는 특유의 기질은 이 시기에 다져진 것이리라. 고독의 터널을 지나면서 이룬 내면의 성숙이 그녀를 예술가의 삶으로 이끌었다.

 

또 한 번의 시련은 20대 초반에 찾아왔는데, 혼자 낳은 딸을 가난으로 인해 입양시키게 된다. 슬픔을 가슴에 묻어둔 채 조니 미첼은 뉴욕으로 건너가 본격적인 가수생활을 시작한다. 악보도 볼 수 없었고 일반적인 작법을 따르지도 않았으며 악기 연주법도 독학으로 깨우친 변칙적인 방식이었지만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순수한 에너지, 길들여지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의 노래는 수많은 음악가들을 감복시켰다. 레너드 코언, 밥 딜런, 데이비드 크로스비, 그레이엄 내쉬, 조앤 바에즈 등 당시 시대정신을 이끌던 포크가수들은 물론 자코 패스토리어스, 래리 칼튼, 팻 메시니, 찰스 밍거스, 허비 행콕과 같은 재즈 뮤지션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내로라 하는 뮤지션들이 때로는 동료로, 때로는 연인으로 그의 여정에 등장한다. 공통점이라면 하나같이 그녀의 음반을 열심히 듣고 있었던 팬이었고 기회가 되면 그녀와 함께 작업하기를 원했다는 것.

 

팝음악사의 전설 같은 장면들이 그녀의 삶을 스쳐 지나간다. 작가가 수집한 풍부한 인터뷰 자료와 세심한 배치는 읽는 이로 하여금 그 시절을 함께 살면서 호흡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토록 생생하게 전달되고 있는 시대적 분위기와 대비되는, 지나칠 만큼 침착한 조니 미첼의 삶을 보게 된다. 외부적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늘 자기 자신의 기준에 따라 전진해온 그녀의 삶이 조용히 드러난다. 우리는 그녀가 어느 시점에서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떻게 다음에 내딛을 걸음을 준비했는가를 이해하게 되었다.

시대가 만들어주는 후광 효과로 반짝 주목받는 스타가 아닌, 내면의 기준으로 세월의 숲을 헤치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갔던 한 예술가의 삶. 고독과 자유 사이에서 끝까지 비틀거리지 않고 당당히 서 있었던 조니 미첼의 모습. 이 책은 그 위대한 정신의 현현을 시공간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번역의 훌륭함은 우리가 그것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할 때 비로소 이룩된다. 잘 포장된 도로를 달릴 때 별다른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의식의 흐름을 방해한다면 대번 알아차렸을 것이다. 옮긴이 이경준의 매끄러운 언어는 이렇다 할 걸림 없이 조니 미첼의 세계로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평소 여기저기서 불완전한 번역을 끌어 모아 누더기처럼 만들어두었던 조니 미첼의 노랫말을 가장 명쾌한 우리말로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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