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루돌프 슈타이너를 만나다 - 베를린 노동자학교 재직 시절 1899~1904
요한나 뮈케 외 지음, 여상훈 옮김 / 한국인지학출판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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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루돌프 슈타이너를 만나다>

- 베를린 노동자학교 재직 시절, 1900~1904


슈타이너의 원전이 하나둘씩 계속 번역돼 나오면서 가장 반가웠던 책은 <자서전>이었다. 슈타이너의 강연이나 저서를 읽으면 빈 틈을 느끼기 어려워 인간적이라는 느낌은 별로 받지 못했다. 마치 모든 걸 알고 있고 지적으로 완벽한 사람 같아서 약간의 두려움조차 있었다. 그러나 그의 자서전을 읽으며 그 역시 상처를 받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깊이 느끼는 한 인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교사 루돌프 슈타이너를 만나다>는 더욱 인간적인 슈타이너를 만날 수 있는 책이었다. 한국에서 슈타이너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기도 하지만 종종 그의 이름을 검색해 보면 신비주의자도 이런 신비주의자가 없다. 김지하 선생과 타카하시 이와오 선생의 공이 큰데, 그들에 의하면 슈타이너는 서양의 대신비가로서 한민족이 성배의 민족임을 예언했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그런 일도 없었거니와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것일까... 이런 분위기는 발도르프교육의 수용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 듯하다. 인지학이라는 게 뭔가 구름 위에 있는 것 같고, 믿기만 해도 건강해질 것 같고, 아무리 공부해도 알 수 없는 진리인 것 같고... 분명한 건 슈타이너가 이런 모습을 바라지는 않았을 거라는 점이다. 그는 유물론자가 아니었지만 신비주의자도 아니었다.

베를린 시절의 슈타이너는 노동자들의 정신적 욕구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역사를 통해 인류를 이끌어가는 정신적인 힘은 아직 그들의 영혼에 떠오르지 않았다."(7) 역사의 주체로 깨어나기 시작한 프롤레타리아에게 주어진 정신적 자극은 유물론적 역사관뿐이었다. 사적 유물론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대중의 정신적 욕구를 채우기에는 그것이 너무 거칠고 부분적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슈타이너는 베를린의 노동자학교에 역사 교사로 초청받았고 금세 인기를 끌면서 역사뿐 아니라 자연과학과 문학 등에 대해서도 가르쳤다.

이 책의 저자 중 한 명인 요한나 뮈케는 노동자학교의 서기로 일했으며 오랜 세월 가까이에서 슈타이너를 경험한 사람이다. 결원이 된 역사 교사를 뽑는 과정에서 그는 우연히 슈타이너를 소개받는다. 당시까지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슈타이너는 첫 번째 강연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모든 질문에 더할 나위 없이 선선히, 열성적으로 대답했고, 학생들이 제기하는 모든 이의에 친절하게 귀를 기울이고 객관적으로 반박했다."(21) "슈타이너 박사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호의와 헌신적인 노력으로 모든 학생들에게 관심을 기울였다."(25) 추측해 보건데, 슈타이너가 뛰어난 교사였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뮈케는 슈타이너의 인간적인 면모에 매력을 느낀다. "그가 얼마나 큰 인물이었는지 더 잘 전달할 사람은 많겠지만, 그가 얼마나 선한 인간이었는지는 일상의 아주 작은 일에 이르기까지 그가 보인 그 숨길 수 없는 선함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만이 잘 안다."(45) 뮈케는 사회삼원론 운동에도 동참하는 것으로 보이며, 슈타이너가 숨지기 직전 병상에 누워 있을 때도 교류를 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 제3부의 저자인 알빈 알프레트 루돌프의 글이 가장 좋았다. 읽다 보면 그가 대단히 섬세하고 솔직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흥미진진한 소설을 읽는 듯 생생하고 사실적인 묘사가 가득하다. 어디에서도 접할 수 없는 슈타이너에 대한 그의 진솔한 이야기를 몇 개 옮기고 싶다.

"슈타이너 박사는 위엄이 깃든 날씬한 몸을 곧게 세우고 방 한가운데에서 우리를 맞았다. 수척하고 곧은 자세에다가 날렵하게 재단된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콧수염은 자르지 않았지만 그의 몸처럼 좀 빈약했다. 코안경을 걸쳤고, 검고 긴 머리는 단정하게 뒤로 빗어넘겼다. 가슴팍의 옷깃에는 길고 넓은 리본을 달았다."(70)

"루돌프 슈타이너는 비웃는 듯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그 책의 내용 몇 군데를 소개했다. 그러고는 카를 마이는 적어도 수많은 판타지를 제공했고 마를리트는 목에 걸린 생선튀김 동화로 사람들을 열광시켰는데, 이 베를린 소설은 가볍기 짝이 없는 모조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저자는 고료만 받고 미국으로 가버렸다고 했다. 그런데 쓸데없이 인쇄용 잉크만 낭비한 그 사람이 미국으로 가도록 대서양이 가만히 있었는지는 모르겠다는 이야기도 했다."(72)

"마르고 강인해 보이고 군살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의 외형은 잘 훈련된 육상선수처럼 보이지만, 몸가짐은 또 전혀 그런 운동가의 느낌을 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책상물림이라는 분위기는 조금도 풍기지 않았다. 변함없는 검은 정장에 같은 색의 넓적한 실크 밴드를 붙인 모습은 특별한 취향을 짐작하게 하지 않았다. 마르고 금욕적인 얼굴은 늘 사람 좋은 미소를 띠고 있었는데, 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때는 더욱 그랬다."(87-88)

"<자유의 철학>을 써서 주목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우리 가운데 누구도 그 책을 읽지 않았다. 그런 것보다 우리가 아는 것은 그가 로스토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사실이었다. 로스토크 대학이라면 그라이프스발트 대학과 더불어 별로 고생하지 않고도 확실하게 학위를 받으려고 가는 곳이 아닌가."(94-95)

* 오해가 없기 위해 슈타이너가 자서전에 쓴 글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내 인생의 첫 장이 끝나가는 이때 유난히 매혹적인 철학서 한 권을 손에 넣었다. 당시 로스토크에서 철학을 강의하던 하인리히 폰 슈타인의 <플라톤주의의 역사에 관한 일곱 권의 책>이라는 저서였다. 이런 인연으로 나는 박사학위 구두시험을 칠 때 한 번 뵈었을 뿐이지만 나에게는 매우 가치 있는 책의 저자인 이 경애하는 노철학자에게 내 논문을 제출하게 되었다."(자서전, 220-221)

"그는 자주 카를 마르크스의 저작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 그때마다 그의 말에는 그 저작에 대한 깊은 인정이 배어 있었다."(105)

"...... 이 대목에서 슈타이너는 다시 마르크스를 인용했다. "이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는 인식이 그에게 말을 거는 듯했다. 우리의 인식에 의거해서 우리 삶을 형성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가르친 사람은 언제나 슈타이너였다."(133)

"...... 우리는 언제든 루돌프 슈타이너를 방문할 수 있었다. 그는 한 번도 우리 때문에 방해를 받는다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서재, 거실, 식당, 서고 그리고 아마도 자신의 침실까지 모두 하나로 합쳐진 그의 소박한 집에서 갖는 커피 타임은 우리에게는 정신으로 충만한 담소와 격려의 시간이자 문예의 세계로 들어가는 기회였다."(144)

"나는 그가 빵 한 조각만으로 한 끼를 해결하는 모습을 너무나 자주 보았다. 그리고 그는 채식을 했다. 어떤 특별한 원칙이 있어서가 아니라는 것을 빈 사투리로 말한 적이 있다. "채식하는 사람은 동물의 사체를 먹지 않습니다. 그걸 보면 그냥 구역질이 나기 때문이에요." 그에게 소시지는 사체를 다져 사체의 창자에 넣은 것이었다."(152)

알빈 알프레트 루돌프가 들려주는 슈타이너는 요한나 뮈케가 묘사한 것보다 적나라해 보인다. 덕분에 인간 슈타이너의 모습도 더 가깝게 다가오는 듯하다.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슈타이너는 노동자학교를 떠난 뒤 영국으로 건너가 애니 베전트를 만나고 온다. 그리고 막 신지학 운동에 가담하여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솔직히 이 부분을 읽으며 약간 충격을 받았다. 노동자학교의 교사를 그만두고 신지학협회 독일지부 사무총장이 된 슈타이너의 달라진 모습이 너무나 생경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물론 이후 슈타이너는 신지학협회를 떠나 자기만의 길을 걷는다. 그는 인지학이라는 사상을 만들고, 괴테아눔을 세우며, 사회삼원론 운동과 함께 발도르프학교의 문을 연다. 이 책은 그러한 그의 인생길 한 고비를 다루고 있다.

발도르프교육에 대해 공부하는 분들에게 특히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역사적 과제 또는 시대적 과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대결하면서 자기만의 과제를 풀어가는 슈타이너의 구체적이고 생생한 모습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집번역위의 위원장이기도 한 여상훈 선생님의 번역 또한 훌륭하다. 많은 독자에게 여운이 꽤 오래 남는 책으로 기억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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