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 늙는 기분
이소호 지음 / 웨일북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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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나는 이미 서른 다섯을 넘겼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이유로 책에 흥미가 없었다.

먼저, 내가 늙어간다는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그리고 나보다 어린 이가 늙었느니 어쩌느니 하는 글을 읽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나보다 젊고, 책까지 쓴 멋져보이기만 한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펼칠지,

제목과 반대되는 주제들이 가득 할 것이 단박에 보였기때문에

독서를 시작 하기에 거북스러웠다.

그러나 그 생각은 산문집 부분 발췌에서 와르르 무너졌다.

나는 노산이나 잠재적 가임기 여성이라는 비좁은 진단을 훌훌 던져버리고

새 삶을 살고 싶다.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하루라도 빨리 결혼해야 애도 낳고 이상적인 삶을 살지 않겠냐고.

이상적인 삶은 누가 선택한 기준일까.

나는 신체적으로 생리 일수가 약간 줄어든 것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건강하다.

호르몬은 내가 어떻게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그냥 그렇게 흘러가도록 두는 것이다. 이는 가임기 여성의 숙명이다.

생각해본다. 여성은 폐경이라는 것이 있다. 남성은 그렇지 않다.

이 차이 때문에 여성은 늘 나이 듦에 대해서 괴로워해야 한다.

신은 정말로 여성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창조했음이 틀림없다.

-<생리 주기와 우주의 섭리> 중에서

아니, 누가 내 이야기를 여기에 써둔거지? 싶게 내 마음이 글로 술술 풀어져 있었다.

오랜기간 연애를 했고, 결혼한지도 몇 해가 되었지만

아직 아이를 가질 생각을 않고 있는 우리 부부에게

시어머니 아닌 친정엄마가 어찌나 아이에 대해 들들 볶는지,

꽤 괴로운 요즈음인데 정말 나의 마음을 대변하는 글이라,

마음에 턱ㅡ하고 책이 다가왔다.



독서 시작 전, 한권 한권 마음을 담아 썼을 작가의 친필. '프린트겠지~' 하고 넘기다가 뒷면에 잉크자국을 보고 놀랐다.

정말 허투로 읽지 말아야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를 하면 할 수록, 초반의 '허투루 읽지 말아야지'하는 마음을 먹을 필요도 없는

독서였다. 점심 시간을 쪼개가며 하는 며칠의 독서 내 내, 맞아맞아, 내 이야기야 하는

이야기들이 참 많았기 때문이다. 공감가는 부분이 하나 둘 늘어날 수록

그냥 내 또래 친구의 에세이 같았다. 멋진 직업을 가진 독신의.

스스로가 생각하는 자신의 현재를 꾸미거나 감추려 하지 않는 점에서

더 멋져보이는 작가였다. 작가답게 이야기는 또 어찌나 재미있게 하는지,

수다를 듣듯이 정말 술술 귀에 들어왔다.

읽는 게 아니라 수다를 듣고있는 느낌으로 했던 재밌는 독서였다.


 





수 많은 이야기들이 쉴새없이 마음을 두드리고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중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두 페이지를 사진에 담아봤다.

여러 이야기 중에 씁쓸하게 웃으면서 읽었던 '앉아 있는 자의 숙명'과

'소호의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애 없는 애기 엄마'가 참 기억에 남는다.

아마 요즘 내가 가장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어서일 것이다.

직업 특성 상 상반기는 아주아주 바쁘다.

작년보다 나아질 줄 알았는데, 더 심할 때도 있다.

올 해 가장 늦게 퇴근 한 시간은 새벽 4시. 물론 다음날은 정시 출근을 했다.

그런 철야가 한달정도 이어지고,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물론 숨고르기 할 때도 2주는 야근을 한다.)

다시 또 한달의 철야가 이어지고, 또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이 사이클이 3번 반은 돌아야 비로소 한숨 돌릴 수 있다는 거다.

그런 면에서 저 부분이 너무 공감이 되었다...

6시에 퇴근만 해도 너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내가 참 안쓰럽다.

<소호의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도 참 와닿았다.




그러니까 인간 경진이가 이런 삶을 누리려면 일을 해야 한다.

, 그렇다면 이소호는 무슨 일을 해야할까.

이소호는 최대한 빨리 글을 써서 고료를 차곡차곡 모아야 한다.

...

아무도 나에게 시키지 않는데 이렇게 쓰고 있는 것을 보면 틀림이 없다.

그냥 쓰고 싶어서 쓰는 것이다.

왜냐면 경진이의 행복은 소호에게 온전히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호는 늘 시간이 없다. 경진이를 놀게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번 한 주를 12시까지 꼬박 계속 야근 한 이유와 꼭 닮았다.

나에게 주말을 주기 위해서다. 나를 나누어서 이야기 하는 점이 참 와닿고 재미있었다.


그리고 '애 없는 애기 엄마'는 바로 얼마 전에 어딘가에서 난생 처음

'어머님! 여기 이것좀 보고 가세요~'해서 놀랐던 경험이 생각나서 씁쓸했다.

놀라서 여동생에게 얘기 했더니 "언니, 언니 조카가 벌써 여섯살이야"하는 이야기에

입을 닫았다. 왜 정말 여자에게만 가임기가 있는걸까.

호스텔보다 호텔이 좋다는 이야기는 다행히 아직 썩 와닿지는 않는다.

여행을 가서도 숙소에서 많은 시간을 쓰지 않기 때문에.

그래도 언젠가 그렇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자기 상황에 맞춰 모든것을 받아들이고 느낀다.

아마 이 책도 나중에 아이를 갖고 또 다른 상황이 되어서 독서를 하게 되면

또 다른 이야기들이 가장 와닿게 되겠지만 현재로서는 저 두 가지가 가장 와닿았다.

누군가 서른 즈음이나 서른 다섯을 넘기거나, 생물학적 나이와 관계 없이

뭔가 스스로 '늙어간다'는 것이 느껴지는 누군가에게 추천하고 싶은 도서다.

유쾌하기도, 씁쓸하기도 한 재미있는 수다를 실컷 들은 것 같은 재미있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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