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과 광기의 암호를 해독하다
리처드 레티에리 지음, 변익상 옮김 / 애플씨드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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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들은 누구나 공룡에 심취하는 ‘공룡기’를 지난다는 말이 있는데, 크고 강한 것에 대한 무의식적 욕망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른이 된 우리는 어쩌면 ‘그알기’를 기나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수많은 사건들에 대해 심층 분석해 보여주는 ‘그것이 알고 싶다’는 오랫동안 사랑을 받고 있고, 개인적으로도 매주 거르지않고 시청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프로파일러, 사이코패스, 가스라이팅 같은 단어들을 익히게 되고, 인간의 악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다. 이런 현상은 누구나 마음속에 악에 대한 충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이 책은 범죄심리학자인 작가가 다양한 범죄자들을 상담하고 분석한 사례 들을 통해 인간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충동과 광기가 어떻게 끔찍한 범죄로 표출되어지는가 하는 다양한 경로 들을 추적하고, 더불어 여성에게 더 가혹한 사법 체계와 법을 집행하는 자들이 저지르는 범죄 문제까지를 짚어보고 있다. 여기서 작가가 주목하고 있는 것이 ‘다이모닉’이라는 개념인데, 그리스어로 인간을 지배하는 힘을 의미한다는 이 말은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도덕적이든 비도덕적이든, 어디로든 나아가는 힘을 이야기한다. 이 힘은 때론 끔찍한 범죄의 형태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숭고한 업적으로 드러나기도 하는 것이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의 1부는 위에서 말한 ‘다이모닉’ 개념과 과거의 삶이 현재를 규정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언급한다. 그리고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2부에서는 실제 작가가 상담했던 범죄 사례들이 다양하게 소개되고 있는데, 범죄가 이루어지는 순간에 범인이 법적, 도덕적 선택과 판단이 가능한 상태였는가가 양형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여러 심리 도구들을 이용해서 그 부분을 추적하는 과정이 소개되기도 하는데, 과연 인간의 심리적, 정신적 부분에 대한 명확한 진단과 평가가 그런 검사 도구들로 가능할지 의문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사이코패스이거나 정신질환 등으로 도덕적 판단이 불가능한 이들을 단순히 격리의 대상으로 볼 것인가, 처벌의 대상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도 정말 어려운 부분인 것 같았다. 내용의 서술이 매우 구체적이고 사실적이어서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내가 마치 법정의 배심원 석에 앉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마지막 3부는 어떤 사람이, 어떻게 범죄자가 되는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누구라도, 언제라도 악의 방향으로 폭주할 수 있는 힘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러한 충동이 실행되지는 않는다. 당연히 범죄 유전자가 따로 있다는 아무런 증거는 없고, 작가는 환경, 교육수준, 애착의 경험, 약물의 영향이나 강렬한 감정적 경험, 만성적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 등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좋은 환경과 행운이 따른다고 해서 악의적인 생각이나 사악한 충동으로부터 완전히 보호받을 수는 없다는 점 또한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도덕적 품성, 절제,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 들 역시 어느 정도의 훈련이 필요한 일일 것이다.

 

사실 범죄자들의 이면을 들여다보면서 그 파렴치함에 치를 떨기도 하지만, 조금만 운이 좋았더라면 혹은 누구라도 의지할 사람이 있었더라면 등의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경우도 많이 있다. 심지어 ‘나라도 저런 상황에 몰린다면..’하는 끔찍한 상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정말이지 "야만인과 문명인, 성인과 죄인, 어리석은 것과 숭고한 것의 질적 차이가 크면서도 모호하다"는 책 속의 문장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서로가 서로의 善함을 북돋아주며 사는 사회는 그저 유토피아인 것일까, 지금의 우리는 조금씩이라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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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편안한 죽음 을유세계문학전집 111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강초롱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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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어떻게 산 몸에서 죽은 몸이 되는가,를 촘촘히 보여준다. 그리고 현대식 병원에서의 죽음은 산 자의 죽음이라기보다 다만 한 ‘환자‘의 죽음일 뿐이라는 것이 깊은 슬픔을 안겨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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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도서관 1
자넷 스케슬린 찰스 지음, 우진하 옮김 / 하빌리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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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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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야기는 반짝일 거야
마달레나 모니스 지음, 오진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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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서니와 괴물의 묘약
잭 메기트-필립스 지음, 이사벨 폴라트 그림, 김선희 옮김 / 다산어린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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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 이즈 타이완 (2020~2021년 전면 개정판) - 타이베이, 타이중, 까오숑, 타이난, 타이동 외 33개 도시 완벽 가이드 (휴대용 대형지도 및 지하철 노선도 증정) 디스 이즈 여행 가이드북
신서희 지음 / TERRA(테라출판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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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한 때'라는 말이 있는데, 얼마전부터 나의 여행 취향? 관심도? 를 생각할 때마다 이 말을 떠올리곤 한다. 꽤 오랫동안 먼 곳으로의, 긴 여행이 보다 멋지게 보였고 그런 곳들에 시선이 닿아 있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여행' 자체에 대한 조급증도 훨씬 덜해졌고, 가깝고 편안한 곳이나 국내 여행에 더 관심이 간다. 단순한 변덕일 수도 있겠고 찾아보면 열가지 쯤 이유를 대볼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내게 새롭게 부상한 여행지라고 하면 '타이완'이다.

몇 해 전 언니, 동생과 함께 패캐지로 잠깐 다녀온 일이 있는데 그 때 아쉬움이 많이 남기도 했었고 (단체 여행에서 사적인 기억을 챙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책의 차례와 첫문장만 읽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 여기저기서 타이완 여행에 대한 호의적인 기사들을 접해서이기도 한 것 같다.

물론 다양한 방식으로 타이완 여행 관련 자료와 정보를 모을 수도 있겠지만, 내게 뭔가 일목요연하고 정리된 느낌을 주는 매체는 당연히 종이책이다. 단언컨데 아날로그보다 디지털이 더 익숙해지는 일은 적어도 나의 '이번 생'엔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그렇게 고르게된 책이 <디스 이즈 타이완 THIN IS TAIWAN>이다.

표지 안쪽을 딱 넘기는 순간 '주요 도시간 소요시간' 표가 있는 것을 보고 무조건 마음에 들었다. 어느 가이드북이나 다양한 형식으로 이런 종류의 정보가 실려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짜임새있게 한 페이지에 정리되어 있어서 타이완 전국에 대한 큰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그리고 휴대하고 다닐 수 있는 대형 지도도 있다. 실제 여행지에서 가장 활약하는건 아무래도 구글신이겠지만, 이런 커다란 종이지도야 말로 여행자의 스타일일에 빠져선 안되는 부분이니까.

본문 내용은 대부분의 가이드북처럼 지역별로 가봐야 할 곳을 소개하고 있고, 요즈음 식도락 여행을 즐기는 여행자들이 많다는 것을 생각해서인지 타이완 음식과 음식점 소개에 꽤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음식점마나 꽤 여러개의 추천 메뉴를 맛과 주재료와 더불어 소개할 뿐 아니라 대부분 사진도 덧붙여져 있어서 그 낯선 이름에도 불구하고 쉽게 주문하고 먹어볼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추천 일정과 더불어 '타이완으로 떠나기 전 꼭 알아야 할 10가지' 라는 파트에서는 인터넷 사용이나 숙소 예약 등의 팁과 상황별 필수 회화 뿐 아니라 기차 예약 A to Z, 주소 읽는 법까지 꼼꼼히 실려 있다. 타이완은 주소 읽는 방법이 매우 규칙적이면서도 간단하기 때문에 오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도 주소만 보여주면 금세 어느 쪽이지 정확히 알려준다고 한다. 이렇듯 흥미로운면서도 유용한 소소한 정보들을 읽는 것도 이 책의 맛 중 하나인 것 같다.

거의 600 페이지에 달하는데다, 페이지마다 충실하고 빡빡하게 내용을 담고 있다보니 작고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까지도 꼼꼼히 소개되어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작고 소박한 마을의 풍경, 아기자기한 골목길 사진들을 넘겨보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가벼워지기도 했다.

당장 떠나게 되지는 않겠지만, 이 책은 분명 나의 타이완 여행을 추진시켜 주는 큰 에너지가 될 것 같다. 다양한 타이완 관련 가이드 북 중에서 고민하고 있다면, 언젠가 타이완 여행을 꿈꾸고 있다면, 이 책을 조심스레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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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트 콜렉터
캠론 라이트 지음, 이정민 옮김 / 카멜레온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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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ed on 다큐멘터리 영화 <승리의 강>

캄보디아 프놈펜 외곽의 쓰레기 매립장, 스퉁 민체이. 우리로 말하자면 지금은 없어진 '난지도' 정도 되는 곳일 것이다. 그 곳에서 있었던 실제 인물과 사건을 배경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곳, 절망만이 가득할 것 같은 곳에서 '미래를 꽃피운 기적같은' 이야기, 그 기적은 글과 문학에서 시작된다.

스물아홉의 상 리는 스퉁 민체이에서 남편 기 림, 어린 아들 니사이와 살고있다. 그런 곳에서 아이까지 키우며 살다니, 쯧쯧 절로 혀가 차질 일이지만 놀랍게도 막상 상 리 자신은 그렇게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실 어렵게 사는 일과 불행하게 사는 일이 늘 똑같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는 이 세계를 비참하다거나 기쁨이라곤 전혀 없는 삭막한 곳으로 묘사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쓰레기 더미라는 지독한 배경과 역경 속에서도 지극히 정상적이고 감동적인 하루하루가 이어진다고 여기는 편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일로써 사는 일이 순탄해지지는 않는다. 고물을 잔뜩 주워 운이 좋다고 여겼던 날, 남편은 폭력배들에게 돈을 뺏기고 다친채 들어오고, 아이의 설사병은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돈도 없고 쌀도 없고, 있는 거라곤 아픈 아이와 머리를 꿰맨 남편뿐인 나는 생각할 게 너무 많다."

그 날 상 리는 집세를 받으러 온 '렌트 콜렉터' 소피프 신이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걸 알게된다. 그리고 늘 술에 취해 있고, 악착같이 집세를 거둬가는 그녀에게 일주일에 술 한 병을 주기로 하고 글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녀가 단순히 글을 읽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프놈펜 국립대학 문학부에서 9년 동안 학생을 가르쳤었다는 것 또한 알게 된다.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쓰레기 더미 속에서 활자를 발견하고, 단어를 발견하고, 마침내 문장을 읽어내려가게 된 상 리. 이제는 한 발 더 나아가 소피프 신에게 '문학'을 가르쳐달라고 한다. '문학'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글을 읽고 문학을 하려는 목적 조차도 확실하지 않았지만 무언가를 알아갈수록 더 목마르고 더 다급해지는 심정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마침내 이솝 이야기의 일화 한 편으로 '문학' 수업이 시작되고, 그런 가운데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쓰레기장에서의 일상과 아픈 사건 사고들이 계속된다.

소피프가 본격적인 문학 수업에 앞서 상 리에게 들려준 말들은 독자로서, 문학을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에 대한 것이었는데 나 역시도 문학 강의를 듣는 기분이 들었다.

"문학은 많은 장난감을 넣어 구운 케이크랑 비슷해. 그러니까 장난감을 모두 찾는다 해도 그것들을 찾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속 빈 강정이나 마찬가지라는 거지. (중략) '그들은 문학에 대해 모든 걸 이해했지만 단 하나, 문학을 즐기는 법만큼은 알지 못했다.'"

이제 상 리는 거의 매일 문학 수업을 받는다. 그렇다고해서 걱정이 없는 건 아니다. 맡긴 아이가 걱정되기도 하고, 이러한 공부가 정말 도움이 될지에 대해서도 여전히 확신이 들지 않는다.

"이해할 수가 없어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어떻게 내 문제에 답을 줄 수 있다는 거죠?"

"그게 바로 자네가 배움을 통해 깨닫게 될 문제야. 우리가 읽는 모든 이야기의 대상과 주제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지."

이처럼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서사를 기본으로 하지만, '문학' 자체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문장들이 많다. 문학부 교수였던 소피프의 강의는 쉽지만 핵심을 찌르는 명강의임이 분명하다.

이들의 수업은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간다. 모비딕을 읽고 선과 악의 문제를 논하고 (비록 축약본을 읽고 나누는 아직은 서툴고 투박한 형태의 토론이지만), 말과 글의 힘에 대해서, 선택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캄보디아판 신데렐라 이야기도 등장하고, '영웅'에 대한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쯤에서 주인공인 사 린의 삶이 변해야하는거 아닌가? 문학적 성장과 더불어 삶이 어떤 형태로든 성장해야 읽는 보람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삶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가 '실화'기반의 소설이란 걸 다시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문학이 아닌, 그 무엇이라도, 그리 간단하고 드라마틱하게 사람과 삶을 바꾸어 놓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런건 '동화적 희망' 같은게 아닐까.

그렇다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문학적 담론과 쓰레기장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생활을 병치시키는 것으로 소설이 끝나는가 하면 당연히 그렇지 않다. 어쩌면 변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이제 상 리는 글을 알기 전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다. 글을 알기 전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할 수도 없다. 제목이 <렌트 콜렉터>인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더 많이 변한 사람은 상 리가 아닌 소피프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에게 정말 아름다운 수업이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야기는 계속 되고, 상 리와 소피프와 이웃들 한 명 한 명의 개인사 뒤에는 어쩔수 없는 슬프고 참혹한 캄보디아 역사의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책 뒤 쪽에 이 책 속에 등장하는 배경지와 인물들의 사진이 실려있다. 조금쯤 억눌려있던 감동이 사진 속 상 리와 니사이와 눈을 맞추는 순간 울컥 솟구쳐 오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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